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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여유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일 뿐이다

뜨거운 차를 식히면서

by 고채윤




스스로 내 가치관이 생기고 명확한 목표가 생길 나이 때쯤 우리 가족은 얼마나 많은 티타임을 가져왔는지 깨닫게 됐다.

숨 쉬는 행위처럼 자연스럽고 삶에 녹아들어 있는 티타임; 지금 돌이켜 보면 살아오면서 내가 했던 모든 중요한 결정 전에는 이 티타임을 거쳤다.


거창한 것도 없다

녹차, 홍차, 허브차 등 날마다 여러 차를 마시며 일상적인 얘기를 서로 주고받는다.

사소한 주제부터 그날 각자 외출하면서 생겼던 에피소드까지 아마 웬만한 얘기는 다 공유했던 것 같다.





이 “차”라는 것은 참 묘한 힘을 갖고 있다.

내가 화가 나거나 긴장된 상태여도 뜨거운 차를 받아 후후 불면서 식히는 과정에 진정이 되고

한 모금 마시고 나면 머리에 올라와 있던 무게중심이 아래로 내려간다.


그럼 신기하게도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좀 더 객관적이고 좀 더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뿐인가?

나도 모르게 업 돼 있는 마음에 여유가 슬며시 들어와 있다.


그럼 우리들은 그제야 주변 사람들 얼굴도 보고 좀 생산성 없는 얘기도 하고

내가 있는 환경을 둘러본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가면 제일 많이 시키는 메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한다.

제일 만만하고 저렴한 이유도 있겠지만 급한 사회를살아가면서 빨리 받아서 빨리 마실 수 있는 음료이기 때문 아닐까?


그럼 대체 우린 언제부터 뜨거운 차를 식힐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우린 이미 어릴 때부터 여유라는 걸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유치원생부터 입시 준비라는 걸 하는 시대인데 여유라는 단어가 가당키나 할까.


맛있는 것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차 한잔 식힐 여유도 해본 사람이 할 줄 안다.

이 여유에는 어떠한 돈도 능력도 필요 없다

그저 부엌에 가서 커피포트에 물만 올리고 간단한 티백만 준비하면 끝이다.


자! 이제 실전이다

이 글을 읽어봤다면 그날 티타임을 가져보자!


차 한잔 준비하고 좋아하는 음악까지 틀어놓고 앉아 있으면

평소 마음 깊은 곳에 있던 내 진짜 생각들이 김 나는 것처럼 올라올지도 모른다









오늘의 스페인어

Una taza de té y calma.
(우나 따사 데 떼 이 깔마)
차 한잔 그리고 평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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