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내는 우리가 가치 있다고 믿는 것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고유의 바이브가 가치 있다고 믿는다. 아내는 해금 아티스트이다. 그녀는 뼛속까지 예술가이다. 그녀가 연주를 하거나 창의력 넘치는 음식을 개발했을 때,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예술가임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반해 사실 나는 예술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나와 그녀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우리 둘 모두 우리의 바이브로 사람들을 취하게 <뽕 맞게> 만드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 음악, 술 그리고 공간으로 사람들을 뽕에 취하게 한다. 조금 순화적으로 표현하자면 사람의 영혼을 흔드는 것이다.
나는 모든 예술 존재의 이유가 사람의 영혼을 흔들기 위함이라고 본다. 사람의 영혼을 흔들고 위로하고 깨우치는 그 과정에서 예술은 가치가 피어난다. 나와 아내는 음악, 음식, 술 그리고 공간으로 사람의 영혼을 흔들 수 있는 기획자가 되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하지만 때론 나도 누군가의 기획에 의해서 나의 영혼이 흔들리고 싶을 때가 있다. 종종 벤치마킹이란 명목으로 서울 술집을 다니다 보면 소름 끼치는 공간에서 뽕을 맞을 때가 있다. 여기 '주인장은 어떤 미친놈일까?' 하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을 간혹 만난다. 어떻게 이런 완성도 있고 새로운 음식과 그에 딱 맞는 인테리어와 음악을 짜 맞춰 놓았을까 하는 감탄을 자아낸다. 감탄 자체가 안주가 되어 연거푸 술을 들이킨다. 감탄과 음주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그 공간 자체에 도취되어 버린다.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내가 거주하는 일산에선 그런 곳을 쉽게 찾지 못했다. 나는 술집이나 식당에서 주인장의 가치관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사랑한다. 하지만 대부분 일산의 술집은 진부하다. 유행하는 음식을 천편일률적으로 내놓는다. 어떤 곳이 장사가 잘되면 인테리어나 음식을 그대로 답습하기 바쁘다. 그렇다고 원조보다 세련되거나 음식이 더 맛나지도 않다. 음악을 틀긴 하는 데 그 음악을 왜 트는지 이유도 없다. 음악 자체를 트는 이유가 없다. 술집엔 응당 음악을 틀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관성적으로 트는 것이다.
무엇보다 술이 다양하지 않다. 술집은 술이 맛있어야 한다. 술을 파는 주인장이 자신이 파는 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술집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유행하고 잘 팔린다는 술을 가져다 놓고 단순히 맛있다며 손님에게 권유한다. 정작 자신들이 파는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종류인지조차 모르고 그냥 판다.
왜 일산에는 술이 중심이고, 가치관을 담은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엄선된 음악으로 공간을 채우는 곳이 드물까?
이런 나의 불만 섞인 오만한 선입견이 일산동구 중앙로 1123 청구코아 상가에 '착각'이란 공간을 만들게 했다.
착각이 위치한 청구코아 상가는 아마 일산 동구에서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 상가일 것이다. 낡고 낡았으며 상가의 상권은 죽었다.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청구코아 상가는 서울부터 파주를 잇는 일산에서 가장 큰 중앙대로변에 위치해 있음에도 세련된 카페나 음식점, 술집이 없다. 밤이 되면 음침한 유령 상가처럼 보인다. 왜 일산에는 을지로나 문래동처럼 세월이 묻은 곳에 젊고 감각적인 상인들이 모이지 않을까...?
나와 아내가 이 상가를 점찍고 다양한 술을 잔으로 마실 수 있고 술 맛나는 분위기에 맞춰 음식과 음악 그리고 공간을 기획했을 때, 주변에 대부분 사람들이 걱정을 했다. 그곳은 안된다. 너무 낡고 죽은 상권이다. 일산 사람들은 그런 공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수요가 없을 것이다. 컨셉 자체가 너무 어렵다. 등등... 안 되는 이유를 수도 없이 던져댔다. 이런 기획이 재밌다고 느끼며 일산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착각인 것일까?
요즈음 서울에서 가장 핫 한 지역인 을지로, 성수동, 문래동은 오랜 시간 동안 세련 된 장소와 거리가 멀었다. 낡은 공장 지대에서 트렌디한 상권이 형성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지역 사람들의 미식과 문화 수준이 높아져서 수요가 생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곳의 가능성을 보고 척박한 상권을 개척하려는 공급자가 많아졌기 때문일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와 같다. 어찌 되었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누군가는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도전했기 때문 일 것이다.
무엇이 맞고 그른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낯설고 불편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은 고사하고 시선을 돌려 다른 것을 바라보려는 시도조차 많은 사람들에겐 귀찮거나 하찮은 일이다.
청구상가처럼 낡고 죽은 상권에서는 을지로처럼 세련된 술집은 모이지 않을 것이다.
초록색 병 소주를 팔지 않고 국산 맥주도 팔지 않으면서 고가의 와인과 위스키 전통 증류주를 위주로 판매하는 술집은 일산에서는 힘들 것이다.
한 잔에 1만 원이 넘는 와인을 잔으로 마시지 않으려 할 것이다.
주인장과 얼굴을 마주 보는 구조를 갖는 바 형식의 술집은 손님들이 꺼려할 것이다.
일산 상권에서는 배를 채울 수 있는 푸짐한 음식을 내어야 한다.
술집에서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손님은 없을 것이다.
부디 이런 생각이 당신의 착각이길 바라며 '착각'을 기획했다.
*정말 다양한 술<와인, 위스키, 전통 증류주, 청주, 사케 등>을 잔으로 마실 수 있는 시스템을 기획했다. 나는 술의 다양성을 사랑한다. 사람도 술도 그 숫자만큼이다 다르고 개성이있다.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나는 좋다. 그런데 그렇게 다양한 술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한 병씩 먹기엔 부담이 된다. 그래서 한 잔씩 다양하게 즐기길 원했다.
*음식은 우리의 창작 요리이다. 양은 많지 않다. 이곳은 식사하는 곳이 아니기에 음식은 안주의 개념으로 제공 된다. 참고 정돈 있을 지언정 적어도 카피를 한 요리는 없다. Creativity & Reevaluation 독창성과 재해석은 예술을 지향하는 사람의 덕목이기 때문이다.
*시간대별로 또 그 날의 분위기나 날씨에 따라서 음악을 다양하게 맞춰서 튼다. 한 곡 한 곡 모두 우리의 셀렉션이다. 주인장인 우리의 바이브가 음악 선곡에서 비물리적으로 보여진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바이브를 느낄 수 있는 소통 창구란 뜻이다.
*수평 반듯한 정문을 기울게 틀었다. 손님이 맨 처음 가게를 방문했을 때 눈과 손이 닿는 곳이기에 착각의 정체성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간판도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달았고 양쪽 벽을 다르게 디자인했다.
가게 위치부터가 모순적인 공간에서 우리가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작은 것들을 위트 있게 틀고 싶었다. 그렇게 작은 시선을 틀면 색다른 것들이 보인다.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것들에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착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의도는 우리의 것일 뿐.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의도야 어찌 됐든 어떻게 바라보든
당신의 '착각' 은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