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친구와 가난한 친구,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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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친구가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누군지 몰랐기 때문에 자존감과 자기애가 낮았고 그래서 오만과 허영심이 컸던 내 친구는 어떻게 변하기 시작했을까?
실수> 인정> 자존감 & 자기애 키우기> 점검
가난한 친구의 변화는 이렇게 총 4단계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실수
가난한 친구는 장점과 단점이 확실한 친구였다. 장점은 항상 에너지 넘쳤고 언변이 화려했고 자기 주관이 뚜렷했다. 단점은 어디서나 나댔고 말이 너무 많았고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한 외골수였다. 맞다. 그 친구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 단점으로 변할지 모를 위험성이 항상 공존해 있었다. 분명한 장점일 수 있는 자신의 무기가 스스로를 헤치는 느낌이었다. 칼집이 없는 검을 아이한테 준 꼴이랄까. 그래서 그 친구는 절제할 줄 모르는 자신의 어리숙함 때문에 실수를 참 많이 했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말까지 많으면 말실수를 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많이 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비호감 이미지를 사게 된다. 그래서 가난한 친구는 지인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외로움을 느꼈고 그 외로움 때문에 힘들어하고 술을 찾았다. 그런 공허함을 견디다 못해 술을 마시면 만취를 하곤 했다. 그러면 더 큰 실수를 했다. 가난한 친구는 한동안 실수와 실수의 연속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래서 가난해졌다.
인정
가난한 내 친구, 문뜩 정신을 차려보니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몇 년도 되지 않아 몇 번씩 직장을 옮겼다. 그런데 옮기는 직장마다 항상 불만을 토로했다. 그 친구의 이야기만 들어보면 그 친구의 잘못은 별로 없었고 누구라도 당장 이직을 하는 게 맞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 신기한 건 운이 좋은 건지 능력이 좋은 건지 이직도 곧잘 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가난한 친구는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없었다.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이직을 제안하는 회사가 있는데 자신에게 어떤 잘못이 있단 말인가. 전 직장이나 상사를 실컷 욕하고 다음 회사로 떠나버리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평소에 미성숙한 그의 행동을 보면 나는 알 수 있었다. 의도치 않은 실수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다만 스스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뿐이었다. 그렇게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던 어느 날, 가난한 내 친구는 다시 한번 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런데 퇴사 이유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내가 또 퇴사를 한 이유에 대해서 물었을 때 그가 대답했다.
“이대로 사회생활을 지속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잠시 멈추고 잘못된 걸 바로 잡아야 할 때인 것 같아서 그만뒀어, 회사 생활을 하면서는 변화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는 자신의 삶이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 오롯이 자신의 삶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원치 않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은 알겠지만 반복되는 직장 생활에 행동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불만이 생기고 스트레스를 받고 술을 마시고 후회하는, 실패의 무한궤도에서 쳇바퀴를 돈다. 매년 새해에 달라지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해봐도 관성의 법칙에 의해 3개월을 못 간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그래서 가난한 친구는 근본적인 해결을 하기 위해서 엄청난 용기를 낸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난한 친구는 자발적으로 ‘실업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자존감 & 자기애 키우기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그가 한 일들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차를 마시며, 명상을 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매일 일기를 썼다. 그리고 술과 주변 사람의 연락을 줄였다고 한다. 몸짱이 되기 위해서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글을 쓰기 위해서 책을 읽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었 듯이,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주변 관계를 차단했고, 자신에게 이로운 행동에 집중했다고 한다. 마치 몸에 좋은 보양식을 먹듯, 가난한 친구 자아에 영양분을 줄 수 있는 행동을 천천히 이어갔다.
하면 좋은 것은 누구나 알지만, 사회생활에 치여서 할 수 없다고 핑계 대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3개월쯤 됐을 때, 가난한 친구는 자신의 부족했던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동안 자신의 인생이 왜 힘들고 같은 실수를 반복했는지 스스로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스로가 누군지 모르니 타인과 비교하기 일쑤였고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덕분에 자신의 자아를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자존감이 강해졌다고 한다. 이전과 비교해서 자신을 둘러싼 외부환경으로부터 확실히 영향을 덜 받았고 예전에는 자주 느꼈던 불안감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타인이나 주변 환경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상대에게 큰 관심을 쏟는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떻게 해야 나를 사랑해 줄지 항상 고심한다. 그런데 스스로에게는 평소에 그런 관심을 쏟지 않는다. 무심하다. 사회적 통념과 타인의 시선이나 기대 따위 때문에 자아가 싫어하는 일들을 강압하곤 한다. 그런 삶은 자아를 학대하는 행동이다. 이런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누구도 사랑해 줄리 없다. 심지어 자기 자신 조차도 말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의 시작은 스스로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내 가난한 친구는 34살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다.
어느 정도 자존감과 자애감을 회복하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였다고 한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부가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경제활동을 해야 했다. 언제까지 벌어놓은 돈을 축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 가난한 친구 어떻게 돈을 벌지 막막했다. 그 나이에 적당한 파트타임 돈벌이를 찾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적당한 일자리가 없을까 하고 부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좋은 울림을 받았다고 했다.
부자 친구 왈, “발렛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되지 않아? 나 이번 추석 연휴가 길어서 안 그래도 아르바이트 찾고 있었는데 주차 알바라도 같이하자”
가난한 친구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가난한 친구는 좋은 대학까지 나와서 주차요원 따위(당시 그가 생각하기에)를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보다 더 좋은 학교에 석사 학위까지 있는 친구는 대기업을 다니면서도 추석 연휴에 시간이 많다며 주차 알바를 생각했다. 그가 옳았다. 주차요원이 뭐가 어때서? 주차를 대신해주는 일은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했던 가난한 친구는 다시 한번 반성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가난한 친구는 청담동에 위치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주차 아르바이트를 했고 추석 연휴에는 그의 부자 친구와 함께 가평에 있는 고급 카페에서 발렛파킹을 했다. 자존감이 낮았을 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친구와 함께 진정으로 즐겁게 웃으면서 할 수 있었다.
점검
지금까지 부자 친구와 가난한 친구의 이야기를 4회에 걸쳐서 연재했습니다. 눈치 채신 분들도 있었겠지만 사실 가난한 친구는 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부자 친구는 제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부자 친구와 가난한 친구’는 자존감과 자기애 그리고 개인의 가치 철학의 중요성을 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개인의 인생에 철학과 자존감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제 성장이 완성형이 아닙니다.
이제야 비로소 스스로의 인생의 길에 첫걸음을 땐 듯합니다. 이전과 비교해 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을 한 것도 아니고 제가 가지고 있던 단점들이 눈 녹듯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무수히 많은 단점들이 있고 시간을 낭비할 때도 많습니다. 계획했던 일들을 하지 못해서 반성하는 날도 부지기수입니다. 하지만 확실히 바뀐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능동적인 생활,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겁니다.
저는 올해 1월 1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일기를 쓰고 브런치에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들려주고 싶은 맥주 이야기를 만드는 곳에서 돈을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변화입니다.
이전에는 일과 자신의 관계가 지극히 수동적이었습니다. 사각형 일에 동그라미인 자신을 우겨 맞췄고 돈의 액수로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입니다. 제가 하고 싶고 바라는 인생을 자신의 노력으로 조금씩 만들어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경험을 아직 못해 본 분들에게 제 이야기를 추천합니다. 혹시나 자신의 자아를 분명히 인지하기 어렵거나 또는 알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여전히 제 자아에 귀를 기울입니다. 애인에게 항상 관심을 쏟듯이 자신의 내면에도 언제나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아는 애인처럼 토라져 버립니다. 그러면 반드시 우리의 인생은 외롭고 불안하고 괴로워집니다. 애인과 이별한 것처럼 말이죠. 그런 슬픈일이 발생하기 전에 자신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은 제 각기 다를 것입니다. 누구는 요가를 하는 것으로 다른 이는 산책과 운동으로 자아와 소통을 합니다.
제 경우에는 그것이 글쓰기였습니다. 일기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시간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색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글을 반복해서 읽다보니 스스로를 마치 제3자의 눈으로 바라 보는 것 같은 객관성이 생기더군요. 만약 자신과 소통하는 방법이 어려운 분들이 있다면 차분히 그리고 꾸준히 글을 써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부자 친구와 가난한 친구는 메타포적인 표현입니다. 제목만 보고 이 글을 재테크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오해 하신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저는 부자와 가난이란 단어를 돈에 국한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돈이 많아도 가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자 친구는 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닙니다.
부자 친구는 자신을 포함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애정이 부자처럼 넉넉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친구였던 저는 나 자신과 타인에게 쏟을 애정이 빈곤했었죠.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고 말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고 마음의 곳간이 조금은 넉넉해진 것 같습니다. 가난한 친구가 이제야 비로소 부자가 되는 길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부자 친구가 되어서 가난한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