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영은 진료실에서 상처 부위를 치료받고 있었다. 의사가 머리카락에 떡이 진 채로 굳어버린 피를 닦아내느라 용쓰고 있었다. 입술 사이로 엄살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두피에 앉은 딱지를 떼어내는 것처럼 아팠다. 의사는 찬영의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그의 상처를 촬영했다. 그리고 그에게 직접 사진을 보여줬다. 빨갛게 부어오른 두피가 온통 딱딱한 피로 얼룩져 있었다.
"이거 봐. 꽤 많이 찢어졌죠? 바로 병원 안 오고 뭐 했어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아무리 중요해도 그렇지, 다른 곳도 아니고 머린데. 무더위에 염증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의사는 닦아낸 자리를 소독한 뒤 상처를 유심히 살폈다.
"둔기로 맞았다고 했죠?"
"네, 아마도."
"쇠붙이 같은 거였어요?
찬영은 대답을 망설였다. 실제로 맞은 일이 없었으니 관련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갖은 상상력을 동원해야 했다.
"그런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파상풍 주사도 맞고 가요. 쇠붙이면 녹슬었을 수도 있으니까."
"얼마나 하죠?"
"3만 원 정도."
비싸다. 하지만 안 맞을 수도 없다. 찬영은 후회가 막심했다. 괜히 여기 와서까지 거짓말을 해 가지고는. 의사가 봉합용 스테이플러를 가져와 상처 부위에 댔다. 두피로 금속의 차가운 기운이 서늘하게 전해졌다. 찬영은 움찔하며 잔뜩 긴장했다.
"머리라서 아픈데, 너무 힘주지 말고."
찰칵, 찰칵 소리와 함께 상처에 심이 하나씩 박혔다. 마치 두개골이 정이라도 맞는 것처럼 머리 전체가 울렸다. 찬영은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다치고 나서 머리 감았죠?"
"네? 아…."
찬영은 기억을 더듬었다. 잔뜩 취한 채로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던 장면이 생각났다. 술기운으로 몽롱한 이미지들 속 물과 함께 배수구로 흘러 들어가던 피와 빨갛게 물든 수건, 던져 놓은 옷에 묻어 있던 핏자국이 띄엄띄엄 파편처럼 떠올랐다.
"네, 아마도."
"상처 부위에 물 묻히면 안 돼요. 염증 생겨. 당분간 물로 씻지 말아요."
찬영은 그 뒤로도 한참 이어진 주의사항들을 건성으로 흘려듣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주사를 맞은 뒤 대기실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자니 간호사가 그를 호명했다. 카운터로 다가가니 간호사는 약국 제출용 처방전을 내밀었다.
"61,200원입니다."
찬영은 한숨을 푹 쉬며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파상풍은 얼어 죽을, 내 피 같은 돈. 이걸 어디 청구할 수도 없고. 정말이지 속이 쓰려 죽을 맛이었다. 술이 웬수지. 한 병만 덜 마셨어도 이렇게 의미 없이 돈 낭비를 할 일까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처방전과 영수증을 받아 들고 터덜터덜 병원을 걸어 나왔다.
이른 저녁, 찬영은 신문지 마냥 한껏 구겨진 채로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상처 부위가 베개에 닿지 않도록 머리를 모로 대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세상 무너진 표정이었다. 그는 전날 그에게 이별 통보를 한 정아의 SNS를 넋 나간 상태로 염탐 중이었다. 그녀의 프로필 상태란에는 ‘♡ 연애 중’ 표시와 함께 새 남친으로 보이는 사람과 찍은 커플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헤어진 지 불과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찬영과 헤어지기 전에 이미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눈물이 찬영의 볼을 타고 흘러 베개를 적셨다. 자그마치 6년이었다. 그 세월이 정아에겐 그 정도 가치에 불과했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방문이 벌컥 열렸다. 찬영의 어머니가 진공청소기를 밀며 들어왔다. 그녀는 난장판이 된 방 상태를 보고는 청소기 전원을 껐다. 바닥에는 연인 시절 찍었던 사진들과 정아에게 받은 선물들이 갈가리 찢기고 부서져 널려있었다. 어머니는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이런 썅느므 새끼, 생전 청소 한 번 안 함서…."
그녀는 버럭 역정을 내려다가 그의 상태를 보고는 한숨만 푹 내쉬었다. 어머니는 한없이 우울한 아들을 뒤로하고 방문을 쾅 닫으며 푸념했다.
"저 놈의 자식은 언제 사람 구실을 하려는지. 어휴, 속 터져."
하지만 찬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들어왔다 나간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정아의 타임라인을 도배한 데이트 사진들을 망연자실하게 스크롤하다가 이제는 소리 내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규보에게서였다. 찬영은 급히 눈물을 닦고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야, 너 다쳤다매? 괜찮냐?"
"아… 별 거 아냐."
찬영은 울던 중이었다는 사실을 숨기려 태연한 목소리를 꾸며냈다. 하지만 규보는 딱히 그의 심경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퍽치기 당했다면서? 별 거 아니긴, 완전 뉴스감인데!"
"아니, 딱히 크게 다친 건 아냐."
"그래도 인마… 뭐야, 목소리는 왜 그래. 너 울었냐?"
"아니, 울긴 누가 울어."
찬영이 코맹맹이 소리로 답했다. 그러자 전화기 건너편에서 깔깔대는 소리가 음악과 한 데 섞여 유쾌하게 울려 퍼졌다. 스피커폰으로 통화 중인 모양이었다. 여자 웃음소리도 들리는 걸 보니 규보 혼자가 아닌 듯했다. 호프집이나 바 같은 장소에 있는 게 분명했다. 이 와중에 친구 놈 혼자 여자들과 놀고 있단 걸 알게 되자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왜 전화했는데?"
"아, 맞다. 너 세라 알지? 서 피디네 팀 조연출."
"어, 알지."
"지금 걔랑 연교랑 같이 술 마시고 있거든."
연교라면 작년까지 규보네 팀에서 작가 생활을 하다가 본사로 넘어간 직원이었다. 지금은 보도국 기자로 일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세라가 지금 우리한테 너 퍽치기 당한 얘기 해줬어. 너도 대단하다. 몸이 그 지경인데 촬영하겠다고 김포까지 운전을 해서 갔어?"
규보는 진심으로 감탄한 것 같았다. 찬영은 죄책감에 대충 얼버무렸다.
"뭐 그냥 맡은 일이니까…."
"언제부터 그렇게 방송 일에 열정 있었다고? 아무튼, 연교가 관심이 좀 있나 봐."
그 말에 찬영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는 너무 기분 좋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너도 알겠지만 내가 여자친구랑 헤어진 지 얼마 안 돼서… 마음은 고마운데."
한껏 진지해진 찬영의 말투에 규보와 일행들이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이미 술기운이 꽤 도는 것 같았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말고 그 사건 말이야."
"사건?"
"말했잖아, 얘 기자라니까. 자기가 잘 다루면 꽤 큰 이슈 만들 수 있겠다는데? 퍽치기잖아! 무려 2025년에. 이런 특종이 어딨냐?"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이슈 타령이라니. 아니, 애초에 그런 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왜 다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의 거짓말을 믿는단 말인가? 형순 피디는 찬영이 혹시나 점심 식대로 술을 사 마실까 봐 매번 영수증 내역까지 일일이 직접 확인할 정도로 그를 불신했다. 그런데 어째서 정작 이런 허황한 얘기에는 아무런 의혹을 제기하지 않는 거지? 정말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길 가다 얻어맞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 됐다 그래. 끊어."
"잠깐만! 연교야, 네가 직접 얘기 좀 해봐."
규보는 찬영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전화를 바꿨다. 연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들려왔다.
"여보세요, 찬영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