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말씀드리지만, 저는 기사가 나가는 게 싫어서요."
"부담스러우신 거 이해해요. 그런데 이런 사건일수록 매스컴에서 부각이 돼야 수사가 빨리 진행되거든요."
"그렇기야 하겠지만…."
찬영은 테이블 맞은편의 연교와 입씨름 중이었다. 얼떨결에 규보 일행의 술자리에 합류한 차였다. 난감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거듭 완곡히 거절했음에도 여기자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찬영의 의사 따위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가 승낙할 때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이 건을 기사화하기로 이미 굳게 마음먹은 듯했다.
"그럴수록 범인도 더 빨리 잡히니까 찬영 씨한테도 도움 되고. 서로 윈윈인데 안 하실 이유가 없죠!"
믿을 수 없을 만큼 귀찮은 여자였다. 누구한테 윈윈이라는 건가. 트래픽에 혈안이 된 흔해 빠진 기레기일 뿐이면서. 찬영은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신고는 하고 오셨죠? 경찰들은 뭐래요? CCTV 확인은 해 봤어요?"
찬영은 대답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 여태 경찰 신고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면 수상쩍게 여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기자에게까지 허위 진술을 시작하면 일이 본격적으로 커질지도 모른단 걱정이 들었다.
"혹시 아직 안 가셨으면 저랑 같이 가보시겠어요?"
"네? 아니요, 괜찮습니다. 벌써 다녀왔어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한 찬영의 입에서 불쑥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모두가 들어버린 상황. 뱉은 말을 도로 주워 담고 싶었지만 이미 세 사람의 눈이 광기 어린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규보가 끼어들었다. 찬영은 다급히 머리를 굴렸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새빨간 거짓말을 계속 늘어놓게 될 상황이 눈앞에 뻔히 그려졌다. 벌써부터 지긋지긋했다.
"그게… 잡기 힘들 것 같다길래 그냥 왔어요."
"네? 왜요?"
"주변에 CCTV도 별로 없고… 저도 아무 기억이 없다 보니까 딱히 단서가 없기도 해서…."
비루한 변명들을 힘겹게 쥐어 짜내던 찬영은 뒤늦게 두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연교는 규보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찬영은 또 한 번 말을 잘못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진해서 먹잇감을 던져준 꼴이었다.
"그래서 그냥 가라 그랬다고? 그건 좀 아니지, 오빠!"
세라가 난데없이 소리를 치며 끼어들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귀가 얼얼했다. 필요 이상으로 흥분한 모습이었다. 찬영은 이명이 울리는 귀를 손가락으로 후볐다. 흡연장에서 마주치면 인사나 겨우 주고받는 사이에 대뜸 오빠라니. 꽤나 취한 모양이었다.
"경찰이란 사람들이! 우리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일을 그 따위로 하면 되냐!"
세라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맥주잔을 쥐고 흔들며 소리쳤다. 세금은 경찰도 낸단다. 찬영은 속으로 무기력하게 생각했다.
"오빠, 택시 타고 들어갔다면서요? 규보 오빠가 그날 택시 잡아줬다는데?"
"네, 그랬죠."
찬영은 그녀의 주사에 장단 맞춰주기 싫은 마음에 정중히 존대를 이어갔다. 하지만 세라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도 취하면 저런 모습인가. 찬영은 생각했다. 그 또한 술자리에선 항상 취해 있었기에, 맨 정신으로 누군가의 추태를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차도에서 집까지는 걸어갔을 거 아냐. 뭐라도 찍혔겠죠. 요즘 세상에 암 것도 없단 게 말이 되냐! CCTV나 차 블랙박스나, 뭐든 뒤져봐야지!"
존댓말과 반말을 번갈아 섞어 쓰는 말투가 한층 더 불쾌했다. 정말이지, 이 회사엔 사람 짜증 나게 하는 인간들 뿐이었다. 찬영은 새삼 정아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세라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급기야 규보가 옆에서 만류했다.
"야, 취했어 너. 왜 네가 흥분하고 그래."
"이거 완전 살인미수 범죄잖아! 야! 그런 일 당해 놓고는 화도 안 나냐?"
말린 건 규보였는데 불똥은 찬영에게 튀었다. 이젠 존댓말도 섞이지 않았다. 오빠에서 야로 강등된 찬영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누르며 점잖은 태도를 유지했다.
"세라 씨, 자꾸 반말하시지 말고…"
"다친 채로 촬영장까지 운전시켰다면서? 그래서 병원도 늦게 갔지?"
이번엔 죄 없는 형순 피디에게 불이 옮아갔다. 형순은 회사로 복귀할 때까지 찬영이 다친 걸 모르고 있었으니, 다친 사람에게 운전을 시켰다는 건 어폐가 있었다. 깐깐하고 신경질적인 면이 있긴 했지만 비인간적인 사수라는 평판이 생기는 건 부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찬영이 설명을 하기도 전에 이번엔 연교가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정말이에요? 머리 다쳐서 피까지 흘리는 사람한테?"
"그래! 이번에 채준? 그 사람 엄청 공들여서 섭외했댔거든. 어휴, 양아치 새끼들. 하나 같이 시청률에 미쳐가지고."
찬영이 대답할 틈도 없이 세라가 말을 받았다. 시청률에 미친 건 네 옆에 앉은 그 기자란다. 찬영은 속으로 소심하게 반박했다. 아니나 다를까, 연교는 이번에 제대로 하나 물었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시대가 어느 땐데. 그쪽은 요즘도 분위기가 그래요? 조연출이며 막내라인들 사람 취급도 안 해?"
"예능 쪽이 다 그렇지 뭐."
연교에 과열된 머리에서 윙윙 쿨링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찬영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2025년에 보기 드문 퍽치기 범죄에 경찰 대응은 시원찮고. 거기다 말단 직원들은 다치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비인간적인 예능 방송계 문화. 기자 입장에선 이렇게나 좋은 기삿거리가 넝쿨째 굴러들어 온 상황이었다. 찬영이 그녀 입장이었더라도 포기할 리가 없었다. 그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오빠! 신고했던 경찰서 어디야? 인계동이지?"
세라가 자문자답했다. 이제 찬영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전화해서 한 마디 할게! 이 사건, 기사로 나갈 거니까 수사 똑바로 하라고."
"아니, 세라 씨. 그러지 마요."
"뭘 그러지 마! 아저씨가 답답하게 구니까 내가 이러는 거잖아. 자기 일인데 왜 제일 소극적인 건데? 아무리 피해자가 피해가는 세상이라지만! 아, 짜증 나. 그냥 내가 신고할래."
세라는 급기야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말릴 새도 없이 112에 전화를 걸었다. 찬영은 다급히 그녀의 핸드폰을 빼앗아 전화를 끊었다. 부당한 조치에 휘몰아치는 분노로 폭주하는 세라를 규보가 간신히 진정시키고 있었다. 이 미친 자들이 정말로 일을 벌이기 전에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찬영은 교묘하게 말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범인을 안 잡겠다는 게 아니라,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한 거죠. CCTV 영상 확보가 어려워서."
"진짜야? 아깐 그냥 가라고 했다며?"
"그건 세라 씨가 한 말이고…."
사실이었다. 세라처럼 목청만 큰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였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본인이 한 말과 남이 한 말을 구분조차 못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여기저기에서 들은 파편적인 정보들을 상상의 나래로 연결 지어 시나리오를 짜고, 그걸 사건의 전말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매번 스스로의 기억을 왜곡시키며 가는 곳마다 분란을 만들어내는 게 그들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뭔가 찾으면 전화 준다고 그랬으니까 일단 기다리려고요."
"그럼 경찰에서 연락 오면 알려줘요. 이틀 이상 지났는데 진전 없으면 내가 직접 가볼게요."
연교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를 어쩐다. 막막한 심정이었다. 찬영은 건성으로 대답한 뒤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온 뒤에도 세 사람의 취기 어린 웃음소리가 한참이나 귓가에 맴돌았다.
마침내 적막한 골목길로 들어선 그는 코를 훌쩍이며 사무치는 외로움을 떨치려 애썼다. 찬영은 세 사람이 끝내 다친 곳은 괜찮은지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