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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신년맞이 동네잔치 구경하세요

서양 전 부치고, 얼큰하게 집에서 담근 술 한잔

by 고추장와플

신년이 밝았습니다. 이런 놀고 먹을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동네 주민들은 참 사이가 좋고 화목합니다. 마치 응답하라 1988 같은 쌍문동 사람들처럼 사이도 좋고, 화기애애합니다. 새해에는 새해잔치, 여름에는 여름 바베큐, 가을엔 또 낙엽 떨어지니 동네잔치를 하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잔치도 같이 합니다.


같은 스트리트에 사는 주소를 공유하는 자들의 동네잔치,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우리 동네 사람들끼리는 서양판 카톡인 왓츠앱 그룹도 있습니다. 거기에 어느 한집이 운을 띄웁니다.


새해도 밝아 오는데 우리 전이나 한판 붙이고 같이 놀깝쇼?라고요.


이걸 놓칠 우리 동네 주민들이 아니죠.

듣던 중 그것은 아주 좋은 생각이오.라고 다른 집들이 응수를 합니다.


그럼 동네 반장 아저씨가 시에다가 우리 동네 잔치 할 테니, 텐트와 의자 좀 빌려주쇼.라고 신청을 합니다. 그러면 시에서 짜잔 하고 트럭이 와서 텐트와 의자들을 내려놓고 가고, 동네사람들끼리 친목하라고 약간의 다과비용도 내어 줍니다. 아주 약간이요.... 간에 기별도 안 가게 조금이지만 뭐 상관없습니다. 우린 루마니아 아저씨가 있어요. 그건 조금 뒤에 얘기하겠습니다.


시에서 텐트와 의자를 다 설치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시에서는 텐트와 의자들을 그냥 내려 놓고 그냥 쓩 하고 사라집니다. 동네 아저씨들이 다 모여 으쌰으쌰 텐트를 설치합니다.


밖은 춥고 어둡지만 이날만큼은 아이들도 신나게 뛰어놀고 다른 동네아이들과 같이 게임도 하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놀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스트리트는 이날 동네잔치로 인해 길을 다 막아 놓아서 어떠한 차도 지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저리 신나게 뛰어놀지요.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는 길바닥에 드러눕기도 오늘은 신나게 해 봅니다.

우리 동네 새로 이사 온 젊은 커플이 아기를 데리고 왔습니다. 너무너무 천사 같고 너무 예뻐서 눈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처음 본 이웃인데 저에게 그럼 애 하나 더 낳지 그러냐는 망언을 합니다. 우리 친해지는 거 맞죠?

동네 반장 아저씨가 신나게 서양 전을 굽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벌써 준비 끝입니다. 앉아서 팬케이크가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어른들은 시청에서 지원해 준 다과비로 산 스페인 샴페인인 까바를 홀짝입니다. 공짜는 역시 맛있습니다.

혼자만 고생하는 아저씨가 안쓰러워 제가 묻습니다.

아저씨도 가서 술 좀 마시세요. 제가 서양전 부칠게요.

아저씨는 한사코 거절합니다. 자기는 전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온 힘을 다하여 전을 부칩니다. 지금까지 한 200개 부친 것 같은데 반죽통을 보니 아직 200개는 더 부쳐야 할 것 같은데요...


오늘의 모든 관심과 사랑은 이 아기에서 쏠렸습니다. 아기가 너무 방긋방긋 잘 웃고 천사 같습니다. 아... 딸 가진 부모가 너무 부럽습니다. 만약 확률이 100프로라면 고려해 보겠습니다만, 확률은 50대 50이라 안됩니다.

아저씨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부친 몇백 장의 서양전, 팬케이크

취기가 올라옵니다. 우리 동네 루마니아 아저씨의 술 때문입니다. 시청의 다과비로 우리 동네 사람들 마실 술을 사려면 택도 없습니다. 루마니아 아저씨는 루마니아에 누나가 있고 체리농장을 운영하는데 직접 담근 체리술 20리터를 들고 왔다 합니다. 그걸 계속 동네 사람들에게 주며 부어라 마셔라 합니다. 그게 아주 달큼하고 맛있어서 방심하면 훅 갑니다. 대리기사는 필요없습니다. 집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있어서요.

이것이 문제의 그 술입니다. 한병 다 마셨더니 어디선가 다음병을 들고 나타나는 루마니아 아저씨. 그래서 결국 다섯 병인가를 비웠습니다. 마음 따듯하고, 놀 줄 아는 우리 동네 사람들의 따듯함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며, 아무도 이사를 안 갔으면 좋겠습니다.


동네사람들과 배 터지게 서양전 부쳐 먹고, 신나게 술도 마신 우리 동네 신년잔치 이야기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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