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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셔면 anti-fashion 사진전

내가 좋아하는 노빠꾸 상여자 Cindy Sherman

by 고추장와플

지난주, 제가 사는 도시인 앤트워프에서 신디 셔먼 (Cindy Sherman)의 사진전에 다녀왔습니다. 앤트워프는 한국에서 유명한 도시는 아니지만, 유럽에서 1ㅡ2위를 다투는 큰 항구도시입니다. 패션으로도 유명하지요. 저는 사진전, 전시회, 박물관 관람을 좋아합니다. 박물관을 격하게 싫어하는 아들 둘과, 애 볼 사람인 베짱이씨는 집에 놓고 혼자 다녀왔습니다. 외향형이지만 이런 곳은 혼자 오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그래야 온전히 작품을 즐길 수 있거든요.

Fotomuseum (FOMU) in Antwerp

신디 셔먼은 자화상 형식의 작품으로 유명한 미국의 사진작가입니다. 그녀는 이사배가 울고 갈 만큼 메이크업과 분장의 대가로 다양한 분장을 통해 사회적 고정관념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197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며, 특히 여성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작품들로 주목받았습니다. 1970대 그녀의 초초초초기 작품부터 가장 최근의 작품까지 방대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라 그런지,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습니다. 다른 도시에서도 이 전시회를 보려고 많이 들 온 것 같더군요.


매표소에서 절 관광객으로 알까 봐, 지역주민 할인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2유로(3000원)를 할인받았습니다. 이런 대형 스타급 사진작가의 전시회를 지역주민 할인까지 톡톡히 받아 7유로 (11000원가량)라는 아주 착한 가격으로 다녀왔습니다.


그녀의 방대한 작품을 아주 초기부터 현재까지 아우르는 전시회이기에 작품들은 비엔나, 뉴욕,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등 세계 방방곡곡에서 이 전시회를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신디셔먼의 1970년 후기 작품들, 그때도 본인의 얼굴을 분장하고 사진을 찍는 콘셉트를 사용했다.


그녀의 학부 졸업작품. 가상의 살인사건 시나리오를 만들어 본인이 직접 모든 용의자들 처럼 분장하고 사진을 찍은 뒤, 포토 콜라쥬를 만들었다.
신디셔먼의 패러디 작품들, 왼쪽은 잡지원본, 가운데는 그녀가 진짜 모델처럼 꾸미고 촬영한 사진, 오른쪽은 그녀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유머요소 가미


특히 여성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작품들로 페미니스트들에게 환대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정작 그녀는 그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제 생각에는 페미니즘이 아닌 기존의 보편적인 고정관념에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통괘함을 선사하는 혁명가(Rebel) 타입의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신디 셔먼의 작품은 자아와 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규범을 탐구하는 독창적인 접근법을 통해 현대 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녀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통해 사회적 이슈와 개인의 정체성을 시각화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하죠. 이런 점들이 현대 미술계에서 그녀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1980년대 초, 그녀에게 처음으로 리테일 브랜드 다이안 벤슨(Dianne Benson)이 캠페인 사진을 의뢰합니다. 신디셔먼은 이세이 미야케, 도로시 비스, 카스텔 바쟉등의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고 전혀 아름답지 않은 쾨쾨하고 화장이 떡진 여인으로 분장하고 개떡같이 사진을 찍어 가져다줍니다.


그 당시의 패션사진이라 함은 여성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다워야 했지만, 기괴한 다크서클에 우아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사진에 경악을 했었죠. 사람들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으로 그녀는 유명 잡지 팝컬처라는 매거진과 인터뷰를 하며 주목을 받습니다.

신디셔먼의 다이안 벤슨 캠페인 사진

여차저차하여, 일단 또다시 유명 디자이너인 도로시 비스의 캠페인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을 받습니다. 여기서 신디셔먼은 선을 좀 넘어버립니다. 예쁜 사진 찍어 달랐더니,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여자, 돼지코를 가진 그로테스크한 여자, 뭐 거의 호러영화 수준의 사진을 찍어다가 갖다 준 것인데요 도로시 비스는 캠페인 사진이 브랜드평판에 해가 된다고 판단했고 심지어 보그 파리는 캠페인 사진을 싣는 것을 거부합니다.

도로시 비스 (Dorothée Bis) 캠페인 사진들

이러한 깡은 1980년대에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이 엿 먹어라 하는 접근법은 수많은 패션하우스에게서 러브콜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대형 패션 하우스에서 유명한 디자이너들과 함께 협업을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꼼데가르송, 발렌시아가, 루이뷔통, 샤넬 등이 있습니다. 저는 해당브랜드 관련된 제품을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돈도 없고, 사실 명품에 관심 있는 편도 아니지만 저는 그 뒤에 있는 숨은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신디셔먼의 이야기처럼요.


그런데 이렇게 대형 패션하우스들과 작업을 한 사진들이 주를 이루는 전시임에도 당당하게 anti-fashion이라는 타이틀을 걸어 놨으니 그녀의 "엿 먹어라" 정신이 더 부각됩니다.

젋음을 유지하려 기를 쓰는 중년여성의 이미지와 사회적 미의 억압을 표현한 발렌시아가 캠페인사진 (2007)
꼼므 데 갸르송 캠페인


2010-2012 샤넬과의 협업

코코샤넬이 무덤에서 울면서 관을 박차고 뛰어나오게 만드는 샤넬 트위드 재킷을 입은 신디셔먼을 보십시오. 샤넬인데 저기 쩌 몽골의 소수민족 같은 느낌이지요. 양젖을 발효한 술을 마시며 어깨를 잡고 전통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은데요. 이 사진을 찍는데 그녀는 화장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추후에 디지털 에디팅을 통해 얼굴을 더 이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허를 찌르는 그녀의 위트가 너무 좋아요. 배경도 일부러 웅장한 자연을 배경으로 선택했다고 합니다. 자연이 콘셉트이었거든요.

비교적 최근의 패션 캠페인 이미지, 최근에는 디지털 작업으로 바탕화면을 사이키델릭하게 만드는 것을 선호하는 듯
Men series 2019-2020

스텔라 매카트니의 옷을 입고 남자/남성성에 대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얼굴로만 보면 사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러한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성과 남성을 사진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눈빛으로 도전적인 남성성을 표현한 작품도 있고, 어느 작품에서는 남성과 여성을 나란히 배치하여 얼굴로는 드러나지 않는 남성성과 힘의 관계에 대해 어깨에 손을 두른다던지, 포즈의 차이로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올해로 71세인 그녀는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는 스타그램과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여 창작활동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alcindysherman/


미타임 기념사진

저는 그녀의 그 당당한 싫으면 말던가. 나는 내 갈 길 간다. 하는 태도가 너무 멋지고 작품 속에서 은근슬쩍 비꼬는 그녀의 유머와 위트가 너무 좋았습니다.


사진 감상하다 빵 터져서 미친 사람처럼 혼자 킥킥대고 웃었던 작품들도 있고요.


혼자여서 더 좋았던 귀한 고추장와플의 미타임(Me-time)이었습니다. 역시 뮤지엄은 자식 없이 혼자가야 제맛입니다.


지금까지 벨기에에서 고추장와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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