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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국 고인물 사서가 알려주는 저작권 이야기

저작권 첫 번째 이야기

by 고추장와플

저는 와플국에서 사서로 10년째 일하고 있는 와플국 고인물 사서입니다. 벨기에의 대학원에서 문헌정보학을 공부했고, 저작권법을 한 학기 동안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락방에 책상을 놓고, 사전을 뒤적거리며 공부했던 날들이 지나고 열매를 맺어, 지금은 학술도서관에서 학생들에게 과학적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 지 모릅니다.


제가 이 멀고도 먼 벨기에에서 함께 일하는 다른 사서들보다 뛰어난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능력입니다. 웃기는 사서랄까요?


평소에 저는 브런치에 제가 좋아하고, 제게 재미있는 이야기만 주야장천 썼지만 이제는 제가 공부한 것들을 다른 분들과 함께 나누고 누군가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추장와플 사서가 여러분께 저작권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지만 어렵지 않게 알려드리겠습니다.




* 저작권의 대상

내가 너를 지켜 주리라

저작권은 독창적인 형태를 가진 문학 또는 예술 작품을 보호합니다. 독창적이라고 해서 작품이 반드시 새로울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두 화가가 서로 독립적으로, 다른 시점 혹은 같은 시점에 동일한 풍경이나 물건을 캔버스에 그렸다 칩시다.

너만 사과 그리란 법 있냐


그렇다면 그들이 같은 풍경이나 물건을 그렸기 때문에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걸까요? 둘 다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작품을 창작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풍경을 그리 던, 어떤 물건을 그리 던, 그것이 저작권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저작권은 창작물의 형태만을 보호하며, 아이디어, 개념, 사고, 건축양식, 글쓰기나 그림체, 이론, 절차, 방법론이나 그에 기반한 방식은 보호하지 않습니다. 지브리 스타일, 심슨 스타일로 AI를 이용해 별 제제 없이 이미지를 생성 가능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AI로 제작된 사진이나 그림은 사용자가 직접 프롬프트를 입력하여 만들어냈으므로 본인이 창작자가 됩니다.


* 저작권의 발생


저작권 보호는 그 독창적인 형태를 창작함으로써 자동으로 발생합니다. 따라서 저작자는 저작권 보호를 받기 위해 어떤 절차나 형식을 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 COPYRIGHT” 또는 “이 출판물의 어떠한 부분도 복제할 수 없습니다”와 같은 표기는 사용자에게 저작권에 대해 경고하는 역할만을 합니다.


이러한 표기 자체가 가져다주는 법적효력은 없습니다. 창작, 그 자체만으로도 저작권법 보호대상이 되니, 이러한 문구는 개조심! 정도의 경고가 되는 것이지요.

Ⓒ COPYRIGHT = 개조심




* 문학작품의 저작권


실제 예시를 보면 모든 종류의 문학 작품은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소설과 논픽션, 시, 산문, 희곡, 수필 모두 해당됩니다. 신문과 잡지, 기사, 칼럼, 연설문, 편지, 광고문, 브로셔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기계나 전자제품을 사고팔 때 제공되는 사용 설명서도 문장 구성, 삽화, 레이아웃, 설명 구성 방식에 따라 독창적일 수 있어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과학 논문도 보호를 받지만, 그 논문 안에 기술된 내용은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므로 자유롭게 이용될 수 있습니다. 단, 논문에 쓰인 문장들을 그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인용표기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만화 캐릭터의 이름조차, 스토리나 그림과는 별도로, 그 이름이 독창적이라면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뽀로로의 이름은 저작권으로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번역이나 원본을 바탕으로 하여 편집되어 다시 쓰인 작품도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면 보호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원본 작품의 저작권과는 별도로 보호됩니다. 예를 들어, 문학 작품을 어린이들에게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내용을 바꾸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여기 아홉 살에 처음 만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란 책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세 개의 저작권이 이 책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영어로 쓰인 원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문의 한국어 번역본, 아이들을 대상으로 각색된 아홉 살에 처음 만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각색/그림 모두 저작권 보호)입니다.


작품이 담긴 매체가 무엇이든(디지털 또는 전자 형태 등) 상관없이 문학 작품으로 간주되며, 이메일, 웹사이트 등도 보호 대상이 됩니다. 모든 종류의 시각 예술 작품도 독창성 요건을 충족한다면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저작권의 범위


그렇다면 저작권 보호범위는 어디까지 일까요? 회화, 조각, 스케치, 벽지무늬, 무대 장식, 정원 장식용 조형물, 만화, 그래픽 노블 등도 포함됩니다. 아주 광범위하죠?


응용-, 장식예술에서도 저작권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창작물들은 저작권 외에도 등록된 디자인이나 도안 시스템을 통해 별도로 보호될 수도 있습니다. 판례에 따르면, 디자인 가구, 철제 제품, 심지어 신발, 의류, 핸드백, 특정 색, 색상조합, 스피커, 유아용 젖병등도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판례에서는 자전거 타이어의 트레드 무늬조차도 보호 대상으로 본 바 있습니다.

타이어 노면과의 접촉에서 마찰을 일으키게 하는 이런 무늬조차도 저작권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 공연자의 저작권 보호유무


많은 음악 작품, TV 시리즈, 영화, 연극 등에서 청중은 작곡가나 작가를 알지 못할 수 있지만, 연주자나 배우, 공연자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연주는 별도의 저작물로 간주되지 않으므로, 공연자가 아무리 창의적인 역할을 하더라도 저작자로 인정받지는 않습니다.

AI에게 K-pop 아이돌을 그려달라 했더니 발로 그렸네요. 얼굴은 어디에?

쉽게 말해, 방탄소년단이 아무리 열심히 준비하여 피 땀 눈물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멋진 안무를 보여주어도, 그 곡의 저작권은 작사 작곡가인 방시혁 씨에게 있는 것이지요.




* 저작권 보호 기간


저작권 보호 기간은 작가 사망 후 70년까지 지속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망한 지 70년이 넘은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 에드가 앨런 포와 같은 작가들의 책의 원본을 공짜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manybooks.net/

위의 링크로 들어가시면, 저작권이 소멸된 여러 문학작품을 영어원서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사후 70년이 이미 지나, 그들의 작품은 퍼블릭 도메인, 즉 공공재산으로 되어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한국어 번역자가 죽은 지 70년이 되지 않았다면 이 또한 저작권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작가들의 소설을 창작언어로만 읽어야 합니다. 영어공부 열심히 하셔야겠죠? 영어를 공부하면 공짜로 읽을 수 있습니다.


공동 저작자인 경우, 최후 생존 작가의 사망일로부터 계산됩니다. 오디오 및 시청각 작품의 경우, 보호 기간은 감독, 시나리오 작가, 대본 작가, 영화음악 작곡가 중 최후 생존자의 사망일로부터 70년입니다.


익명 또는 필명으로 된 작품의 경우, 작가의 사망일을 기준으로 삼을 수 없으므로 대안적으로, 작품이 합법적으로 공개된 시점으로부터 70년까지 보호됩니다.




여러분과 함께 저작권에 대한 이모저모를 알아보았습니다. 이 글이 브런치에서 글을 쓰시는 여러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이상으로 와플국 사서 고추장와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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