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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인들이 극찬한 두부부침

떡볶이와 두부부침으로 비건음식 워크숍을 진행했다

by 고추장와플

우리 1호가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다. 벨기에는 타 서구권 학교들 처럼 여름에 졸업을 하고 가을에 새 학년이 시작한다. 그 간,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한국음식을 싸서 보내면,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에 심지어 애들끼리 자기가 더 먹겠다고 싸우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때마다 학부모들은 어떻게 만드는지 레시피 좀 보내 달라고 했는데... 종이 쪼가리만 보고 배우는 것보다는 누가 시연을 해 주며 배우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 초등학교가 학년 당 딱 한 반인 우리 아이 학교의 특성상, 아이 친구들의 부모들과도 있는 정, 없는 정 주고받으며 9년이 흘렀다. 아이의 초등학교 생활을 마치며, 그간 고마웠던 선생님들과 아이 친구들의 부모들을 대상으로 아이의 학교에서 한국음식 워크숍을 진행했다. 아래의 글은 동양인이 전무한 학교에서 아이들의 원만한 학교생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인종차별 대처기이다.


https://brunch.co.kr/@gochujangwaffle/58



나의 요리실력은 어떠하냐고? 나의 구독자들은 내가 천방지축인 줄로만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으나, 나도 여자여자 한 사람이다. 허허, 사실대로 말하자면 여자여자 해서 요리를 잘하게 된 것은 아니고, 가정형편상 요리를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나는 중학교 때부터 콩쥐처럼 온갖 잡일과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다른 아이들이 학원에 갈 때, 학교 끝나면 집에 와서 집안 청소하고, 밥하고 무수리처럼 살았다. 그래서 나는 주부 9단이 아니라, 주부 90단쯤은 될 거다. 사람일은 정말로 모르는 거라고, 내가 콩쥐로 주부 90단을 쌓아 남의 나라에 와서 밥 하는 걸 알려주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때는 어린 마음에 참 억울하고 속상했다. 돌이켜 보니, 그 억울한 시간이 나에게 재주 하나를 안겨주었다.


이번 요리 워크숍은 내가 진행한 세 번째 워크숍으로, 첫 번째는 앤트워프의 공립도서관의 아이들에게 한국의 길거리 음식을 소개하고, 함께 만들어 본 시간이었다. 메뉴는 호떡과 떡꼬치였다. 두 번째는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 교직원들을 상대로 재능기부 형식으로 한국을 알리고자 진행한 행사였는데, 참가신청을 시작하고 반나절만에 자리가 다 차버려 지금도 계속 2차 워크숍을 해 달라 하고 있다. 하지만 아들 둘 워킹맘의 다사다난한 라이프로 쉽게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그리고 평일 내내 일하고, 다시 주말에 직장에 가서 밥까지 하는 것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그것도 공짜로!)

첫 번째 워크숍, 호떡 반죽 만드는 아이들

세 번째 워크숍은 아들 학급 선생님과 부모들과의 송별회 겸 비건푸드 워크숍이다. 벨기에에는 아이들도 채식주의자 이거나, 고기를 포함하여 계란과 유제품도 먹지 않는 비건도 많이 있다. 부모들도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하여 함께 채식주의를 선택하거나, 따로 요리를 해서 주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서 이 들의 밥상 스트레스를 좀 덜어주고자 단백질이 풍부한 두부부침과 쫄깃쫄깃한 식감의 떡볶이를 선택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먹는 별 특별할 것 없는 반찬 두부부침, 그리고 길거리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떡볶이. 우리는 이것을 비건이라 먹는 것이 아니고 단지 맛있고 만들기 쉬워서 먹는다. 한국음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건들이 열광할 음식이 너무 많다. 특히나 나물종류, 두부요리, 고기를 뺀 비빔밥 등의 음식은 비건들의 교과서에 넣어도 될 정도로 균형이 완벽하다. 한국요리에 고기가 많은 것도 사실이나, 일반 가정식은 비건요리가 차고 넘친다.


먼저 두부부침을 함께 만들었다. 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파와 약간의 설탕. 이것만으로 이런 맛이 나온다는 것에 매우 놀라워했다. 사실 외국인들에게 두부는 맛대가리 없는 하얀 사각형의 이상한 음식이다. 채식주의자들에게는 익숙한 재료이긴 하겠으나, 영감이 부족하다. 갓 출소한 것도 아닌데, 생두부를 그냥 먹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한국인인 나에게는 두부는 사랑이다. 보들보들하고, 흰 도화지처럼 내가 색을 넣는 대로 다 나타나는 맛의 스펀지이자 배고픈 사람도 배를 두둑이 채울 수 있는 사랑의 음식. 이 들에게 두부에게 맛을 입히면 그 맛대가리 없다 생각하는 두부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설명을 듣고있는 학부모님들
떡과 두부와 고추장 들고가다 허리 휘는 줄
그럴싸 해 보이는 두부부침
이 집 아이들 다 베지테리언이다

결과는 10점 만점에 10점. 모두가 이걸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아쉬워할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밥도 없는데, 그 자리에서 요리한 두부부침을 모두 클리어해 버렸다. 집에 가져가라고 락앤락 가져오라 했는데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두 번째로는 떡볶이를 요리했다. 내가 한국의 청소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 하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초콜릿이나 케이크가 아니라 이런 음식을 제일 좋아한다고? 라며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 단짠단짠 매콤매콤의 매력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모두에게 고추장 작은 패키지를 구입하여 나눠주었다. 평소에 마늘 많이 안 먹는 이들에게 두부부침부터 떡볶이까지 아주 그냥 마늘 파티다.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참가한 학부모들의 배경도 다양했는데, 한 사람은 이탈리아인과 결혼하여 뇨끼 (Gnocchi, 감자를 으깨어 만든 이탈리아식 감자옹심이)를 가끔 먹는 사람, 이곳에서 태어난 2세이지만 부모가 스페인인 사람이라 문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머지는 벨기에인들 이었다.


문어와 이탈리아 감자옹심이를 먹고 산 남부유럽의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은 이 식감이 낯설지 않고 맛있다며 연신 떡볶이를 집어 먹었다. 반면, 감자와 빵이 주식인 벨기에사람들에게는 이 쫄깃쫄깃 씹힐 듯 씹히지 않는, 이빨과 밀당하는 이 특이한 식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물론 벨기에 사람들 중에서도 너무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주된 반응은 '낯설다'였다. 벨기에인 중, 떡볶이를 잘 먹는 사람은 한국에 가서 홍어도 먹고 왔다고 한다. 대단하다.


낯설으면 어떠랴. 지구 반대편의 문화와 식재료를 배우고 9년간 아이들 학교 데려다줄 때마다, 내 친구들보다 자주 본 사이인 학부모들과 즐겁게 웃고 떠드는 시간을 가졌으니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하루였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내가 혼자 이 많은 사람들의 떡과 고추장, 두부를 다 사가지고 가야 했으므로 채소까지 이고 지고 가기가 어려워 양배추, 당근과 같은 채소는 생략하고 정말로 길에서 파는 야채 한점 없는 떡볶이로 대체한 점이다. 다음에는 재료를 직접 사 오라 해야겠다.



에필로그.

워크숍이 끝나고 이틀 뒤, 첫째 아이가 학교의 다른 학년의 아이와 싸우고 돌아왔다. 그 아이가 학교 전체에 우리 1호가 자기 배를 여섯 대나 때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들은 너무 억울해 땅바닥에 누워 한 시간을 엉엉 울었다 한다. 워크숍에 참여했던 선생님들은 워크숍 당시 나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선생님들은 전적으로 내 아이를 믿어주고, 위로해 주고, 거짓말 한 못 된 아이를 혼쭐 내주셨다. 아들을 위로하고, 전적으로 아들 편을 들어주신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며, 인생에 거저 얻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무수리로 갈고닦에 온 주부 90단이 또 이렇게 쓸모가 있어져 우리 아들을 지켜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지금 힘들게 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은 어떻게든 돌고 돌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내일부터 다시 파리 여행기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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