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통신사의 거북이, 벨기에에서 신나게 놀다
한국에서도 보지 못했던 무형문화유산, 거북놀이를 벨기에에서 볼 줄은 몰랐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경기도 무형유산인 거북놀이가 제가 사는 동네에서 공연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시내의 공연장. 1615년에 바로크식으로 지어진, 한때는 교회였지만 현재는 공연장으로 쓰이는 곳입니다.
파브르곤충기의 파브르가 벨기에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저 뒤에 걸린 초록색의 그림은 파브르의 손자인 아티스트, 얀 파브르( Jan Fabre)의 작품이고 현재에도 곤충을 모티브로 많은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 뒤의 색감은 풍뎅이를 모티브로 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뮤즈는 풍뎅이입니다.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네요.
아이들 둘 줄줄 달고 고향의 소리를 듣기 위해 이곳을 찾았습니다. 1부는 이천 무형문화유산인 거북놀이, 2부는 한국과 벨기에 음악가들의 성악, 피아노, 악기연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공연의 이름도 이천통신사였습니다.
거북놀이는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추석에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기 위해 수수잎으로 거북이 모양을 만들어 마을 곳곳을 돌며 굿과 함께 즐기는 전통놀이였다고 합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아이들은 흥겨운 사물놀이에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듣는 사물놀이라 그런지, 너무 즐겁습니다.
혹시 태양의 서커스를 아시나요? 서커스와 아크로바틱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세계적인 공연단인데요 한국에서도 몇 차례 공연을 했지요.
태양의 서커스는 저리가라로 볼거리와 흥겨운 음악까지 아주 풍성하고 볼거리가 가득한 공연이었습니다.
특히나 족히 5미터는 되어 보이는 막대기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납작한 접시 같은 것을 돌리며 공연을 하는데 정말 대단했고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습니다. 공연하시는 공연단분 들 중 한 분은 특히 중심 잡기와 화려한 춤사위가 돋보였습니다. 아이들이 특히나 그분이 나올 때마다 숨죽여 지켜보았지요.
특히나 상고모자가 칼군무처럼 완벽하게 똑같이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모습은 비주얼적으로도 많은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두 번째 클래식 파트가 시작되고, 한국인 피아니스트 두 명이 함께 피아노를 연주했고 다음으로는 벨기에인 소프라노가 금강산을 불렀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파트는 아베마리아를 한국인 클래식 바리톤과 여성 전통음악 연주자가 장구를 치며 함께 노래하던 부분이었습니다. 클래식과 우리의 소리가 어우러져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9시 반이 넘어가고, 공연 한 시간 반째가 되면서 둘째가 칭얼대기 시작합니다. 졸리고 피곤하다네요. 제가 이럴 줄 알았습니다...
이제 공연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나가는 미션이 남았습니다. 성악가분의 아리랑 공연이 시작되고 문 앞까지 조용히 소리내지 않고 오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곡이 끝나고 사람들이 박수 칠 때 조용히 살금살금 나오는데 성공!ㅠㅠ
공연을 끝까지 보고 오지 못해 첫째가 툴툴거립니다. 재미있고 좋았단 뜻이겠지요.
공연을 관람하며 아쉬운 점도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먼저 공연장에 관한 것인데요, 저는 이 공연 이외에도 본 공연장을 가끔 찾아 콘서트를 관람하곤 했습니다. 주로 클래식 채임버뮤직이었고, 플룻, 호른,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가 연주되는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한때는 교회였지만 지금은 공연장으로 쓰이는 곳이지요. 이 공연장은 클래식 채임버뮤직 위주로 쓰이고 대리석 벽 때문에 소리가 큰 인스트러멘탈 음악에는 적합하지 않은 장소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무대도 움직임이 큰 사물놀이에는 너무 좁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고요.
사물놀이, 거북놀이가 이천통신사의 중심이 되는 놀이였다면 다른 공연장을 섭외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실력이 좋으신 분들, 멋진 공연이 더 큰 공연장에서 음악시설과 방음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에서 진행되었다면 훨씬 더 좋았고, 멀리서 이곳까지 와서 공연해 주신 아티스트분들도 더 즐거우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부의 공연이 클래식이어서 이 공연장을 선택했을 수도 있지만, 거북놀이가 이천통신사의 아이덴티티이며 우리 고유의 것이기에 더 중점이 되었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도시인 앤트워프는 문화시설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특히 무대 같은 곳은 음악시설이 잘 갖추어진 중대형 시설이 아주 많이 있는데 조금 아쉽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아쉬웠던 점은 본 공연의 홍보입니다. 이 공연을 저는 이웃 브런치 작가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지인이 제가 사는 도시에서 공연한다고 알려주셨거든요.
이 공연에 대한 정보가 공연장 사이트에도, 벨기에 전역의 각종 이벤트가 업로드되는 이벤트캘린더에도 나와있지 않아서 한참을 찾았거든요. 여차저차 결국 찾긴 했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차후에 제가 직접 조금이나마 홍보에 도움이 될까 싶어 페이스북에 있는 한국어를 배우는 벨기에 인들의 페이지에 올렸습니다.
날씨가 아주 많이 안 좋고 비가 쏟아붓는 날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빈 좌석이 많이 보여 안타까웠습니다. 벨기에에는 현재 한국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엄청 많이 있고, 한식 식당이 자고 눈 뜨면 하나씩 더 생길 정도로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리가 많이 비었다는 것은 공연 정보가 잠재적인 관객들에게 제대로 닿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천통신사의 유럽공연은 이번이 2회 차였다고 합니다. 올해는 제가 사는 곳인 앤트워프를 포함 유럽 4개 도시를 순회공연했다고 하는데요, 내년에는 더 좋은 공연장에서 더 많은 관객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먼 곳까지 오셔서 탄성이 나오도록 좋은 공연을 펼쳐주신 아티스트분들 , 정말 감사드립니다!
https://youtu.be/TQflyiZMzLA?si=i2nApOTBcUt7F3jD
혹시 이천통신사 이야기가 궁금하신분들을 위해 작년 2024년 MBN이천통신사 앤트워프 공연이야기를 올립니다.
( 소리에 대한 부분이 그때에도 문제가 되었었군요..제가 생각한 문제가 프로그램에도 그대로 나와 깜짝 놀랐네요)
내년에 오신다면 그 전날 둘째를 최소 13시간 재운 뒤 공연에 가겠습니다!
이상 와플국 고추장와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