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판도 이런 놀자판이 없구만
어제는 제가 일하는 대학에서 특별한 페스티벌이 있었습니다. 대학축제이긴 하지만, 학생들은 들어갈 수 없고, 교수와 교직원, 박사과정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대학축제였습니다. 박사과정생은 대학에 소속되어 연구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직원자격입니다.
매년 5월에 이 놀자판 페스티발이 개최됩니다. 교수들과 박사과정생들, 교직원이 대상이기 때문에 얼굴로 딱 보아도 나이들이 다들 좀 있습니다. 특히나 몇몇 분은 공부와 연구를 너무 열심히 하며 고생을 한 것이 얼굴에 녹아 있어 마음이 짠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온몸에 문신을 한 젊은 수학과 교수를 보며 깜놀합니다. 청바지에 컨버스신발, 팔뚝에 그득한 문신을 보고 오늘 디제잉을 해주러 온 디제이인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학과 교수의 외형을 보고 깜놀하며 문화충격을 받습니다.
오늘의 핵심은 무제한 제공되는 술과, 음식입니다. 이 페스티발에 들어오려면 내부적으로 교직원에게 지급되는 큐알코드를 찍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다음부터는 다 무제한.
푸드트럭이 그득그득하고, 맥주의 나라답게 제가 일하는 대학에서 만든 대학 시그니쳐 맥주도 무제한, 칵테일과 샴페인, 와인 무제한입니다.
푸드트럭은 피자, 팬케익, 와플, 타코, 햄버거트럭이 쭉 줄지어 있습니다.
아, 고용주님 사랑합니다.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지...진짜입니다.
이성적일 것 같은 서양 교수님도 공짜 앞에는 체면이 없습니다. 박사과정이고 교직원이고 뭐고 우리 모두 공짜가 좋습니다. 그래서 술을 나눠주는 텐트와 푸트트럭 앞에 사람들이 드글드글합니다.
많이 배우신 양반들도 공짜가 좋은데, 저라고 공짜가 싫겠습니까?
그래서 계속해서 먹습니다. 동료들이 내년에 공짜 폐지하고 돈 받고 팔면 제가 너무 많이 먹어서 일 것이라고 합니다. 다들 술이 그득그득 오르고, 저 텐트 안에서는 디제이 공연이 펼쳐집니다.
일렉트로음악이 흘러나오고, 교수고 나발이고, 박사고 뭐고 모두 하나 되어 몸을 흔들어 제낍니다. 밖에서는 다들 점잖고 심각해도 이곳엔 학생들이 없으니, 누가 보든 말든이지요.
작년에는 대학의 총장님과, 학장님이 록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했습니다. 그것이 어차피 대학의 유튜브채널에 올라갔으니 비밀은 아닙니다.
동료들과 저도 신나게 마십니다. 오늘 이렇게 노는 시간 또한 유급입니다.
으하하하하 신납니다.
중간에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한통 겁니다.
"엄마, 많이 많이 놀다 늦게 늦게 와도 돼. 너무 일찍 오지 마."

오늘은 그냥 모르는 척하렵니다.
저도 노니까 애들도 좀 놀아야지요.
오늘은 죽이 잘 맞네요.
나이가 들어도, 놀 때는 언제나 즐겁습니다.
나이 지긋한 교수도, 공부에 쩔은 박사과정 연구자도, 쾌쾌한 책들에 둘러싸여 빛을 많이 못 보던 사서들도요.
잘 놀고, 잘 먹고, 잘 집에 왔습니다.
이상, 교수들과 교직원, 박사과정 연구원들의 비밀파티 잠입 취재한 고추장와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