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터키야?
아침은 늘 황제같이 먹어야 뒤탈이 없다. 주머니에서 돈이 줄줄 샐까 걱정하는 엄마와 달리 아이들은 배고프다며 먹을 것을 사달라 졸라대니 배가 꽉 찰 때까지 먹여서 밖에 나가야 한다. 어제 동네에 단 하나뿐인 슈퍼에 가서 냉장고를 꽉꽉 채워놓은 보람이 있다. 아침상이 푸짐한 것이 보기가 좋다.
오늘은 로마의 고대 도시였던 풀라(Pula)에 가기로 했다. 크로아티아에 가기 전부터 바닷가에 있는 원형경기장의 사진을 보고는 방문할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오늘은 풀라의 고대 유적지를 돌아보려 한다.
풀라는 로마 제국 시기에 "폴라(Pola)"라 불리며 전략적 항구 도시로 번영했다. 기원전 1세기부터 로마인들이 정착하여 도시 기반을 닦았고, 로마 제국 시절에는 행정, 군사,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는데 이때 건설된 원형극장, 포럼, 신전 등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우리가 머무는 포레치(Porec)에서 한 시간 정도 운전을 하면 풀라에 갈 수 있다.
멀리서 원형경기장 풀라 아레나(Pula Arena)가 보인다. 콜로세움이랑 판박이다. 가장 가 보고 싶었던 원형경기장을 구글맵에 찍고 운전해서 갔는데 이럴 수가, 원형경기장 바로 앞 주차장은 가격이 시간당 4유로였다. 다시 나가려 했으나 뒤에서 차가 들어오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장 비싼 황금땅덩이 주차장에 주차를 하게 되었다.
여기다 하루 종일 주차를 했다가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 나올 것 같아, 원형경기장만 빨리 보고 다른 곳에 주차를 하기로 했다. 풀라 원형경기장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로마제국의 원형경기장 중 여섯 번째로 큰 규모이고 230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전차경기와 검투경기가 열렸다고 한다. 현재는 콘서트, 영화제를 하는 공간으로도 사용된다. 몇천 년이 지났어도 오락거리가 변화했을 뿐 대중에게 즐길거리를 제공한다는 기본 쓰임새는 같다.
콜로세움이 규모면에서나 인지도 면에서는 압도적이지만 사실 풀라의 원형경기장은 콜로세움보다 100년 전에 세워졌다. 콜로세움은 72-80년에 완공되었고 풀라 원형극장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시기에 시작하여 베스파시우스 황제시기인 기원전 27년에 완성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의 로마 유적들이 가득하니 이 황제에 대해 조금 공부를 해 오면 더욱 더 풀라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찾아보기 귀찮은 분들을 위하여 아주 짧게 아우구스투스 님을 소개해 드리자면 다음과 같다. 로마에 가면 아우구스투스와 관련된 유적이 무지하게 많이 남아있다. 왜냐! 카이사르의 양자인 그는 로마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공화정은 끝이 나고 실질적으로 로마의 첫 황제이자 황제숭배를 확립시킨 로마의 평화시대,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주역! 그는 문화부흥, 각종 인프라 확충, 행정, 군사개혁을 한 로마의 정조같은 사람이다. 영어의 8월에 해당하는 August는 이 양반의 이름에서 기원했다.
안이 다 들여다 보이는데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어 보여 빠른 걸음으로 돌아본다. 1시간이 되기 전에 돌아가야 하니, 원형경기장을 한 바퀴 쓱 돌고 최대한 빨리 나간다. 풀라는 주차장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에, 주차비는 너무 비쌌다. 폭풍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시내 중심가만 돈을 내고 외곽은 돈을 안 내도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공짜인 곳에 주차하니 이리 마음이 편할 데가...
주차를 해결하고 나니 갑자기 배가 고프다. 황제처럼 아침을 먹었어도 배꼽시계는 밥 때라고 아우성이다.
주차를 하고 골목을 딱 도는 순간, 앗, 이 냄새는? 그릴에 고기를 굽는 냄새가 아니던가? 냄새를 따라가 보니 그릴레스토랑이 있었다.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가니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찬찬이 메뉴판을 살펴보는데.... 여기 크로아티아 맞아? 메뉴판을 잘 보시라. 시시 케밥과 카이막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터키도 아닌데 네가 여기서 왜 나와? 요식업계의 최강자로 불리던 백슨상님이 터키에서 반드시 먹는다는 천상의 맛, 카이막이 메뉴판에 올라 있었다. 아니 근데 왜? 궁금한 건 못 참는 1인. 열심히 찾아봤더니 카이막은 터키뿐만이 아닌 발칸반도 전체에서 먹고 있었다. 터키를 중심으로 한 오스만제국 시절 식문화가 발칸반도까지 전해졌기 때문에 세르비아, 코소보,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크로아티아에서 전통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다.
cevapcici와 이스트리아식 트러플 케밥을 시켰다. 여기서 나온 Tartufo, 트러플, 응? 이탈리아 아닌데 왜 이게 또 여기서 나와? 놀랍게도 이 지역의 특산물은 트러플이라 가는 곳곳마다 트러플과 올리브 오일을 팔고 있었다. 그 야마로 이탈리아와 터키, 헝가리의 짬뽕인 식문화를 목도하였다. 고기가 올리브오일에 흠뻑 적신 빵 안에 끼워서 나오는데, 대식가인 나도 포기할 정도로 양이 많았다. 그래도 버릴 수는 없다. 봉투를 달라고 하여 나중에 먹으려고 가방에 넣었다. 그런데 서빙된 카이막은 우리가 아는 크리미 한 카이막이 아니라, 꾸덕꾸덕한 아주 된 카이막이었다. 이건, 내가 알던 카이막이 아니다! 나는 크리미 한 카이막을 원했는데, 이건 코티지치즈에 가까운 식감이다.
크로아티아 국기가 그려진 맥주도 한병 시켰는데 느끼해서 그런지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밥을 먹고 다시 유적지가 있는 중심가로 걸어간다. 그런데 후회가 들기 시작한다. 주차장이 시내에서 너무 멀어 땡볕에 쪄 죽을 것같다. 이래서 시내 가까운 주차장이 4유로였구나... 이렇게 몸이 고생을 해야 이해가 되는 나는 도대체 바보인 것인가?
시내 중심가의 포럼으로 향한다. 포레치의 포럼은 흔적만이 남았지만 풀라의 포럼은 현재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는 광장으로 현재까지도 남아있었다. 포럼 위에 자그마한 신전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신전은 아까 짧게 설명한 아우구스투스 님을 숭배하는 신전인데, 여신인 로마의 신전으로도 함께 쓰였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를 기점으로 황제 숭배가 시작되었는데 로마의 식민지였던 풀라는 아우구스투스 신전과 로마 여신의 신전을 세워 황제와 로마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했다.
신전의 안은 당시 발견된 유물로 채워진 박물관이었는데, 크기가 내가 젊을 적 자취했던 방처럼 아주 아담했다. 방 한 칸 크기다. 이 시기의 청동유물은 다 녹여서 다른 곳에 썼기 때문에 별로 남아있지 않다고 하는데, 로마 신들을 본뜬 여러 청동 조각상을 찾아볼 수 있었고, 이집트 여신상도 보였다. 이는 다신교를 선택한 로마가 식민지의 신도 함께 받아들여 융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눈길을 돌리는 곳마다 로마 유적이 한가득이다. 내가 이탈리아에 있는 건지, 크로아티아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음은 세르기우스 개선문이다. 세르기우스는 사람이름이 아니라 가문의 이름인데, 이 가문은 여러 집정관들과 호민관을 배출한 당대 유명한 세력가였다. 안토니우스와 아우구스투스가 싸울 때 줄을 잘 타 아우구스투스 편으로 참전하여 이득을 보았다. 그 싸움의 승리를 기리며 집안의 이름을 드 높이고 쌰바쌰바에는 필수인 황제님, 즉 아우구스투스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역시, 고대에도 먹고살려면 쌰바쌰바는 필수였나 보다.
공부와 교양 쌓기는 이쯤으로 되었고, 바다가 아름다운 크로아티아에 왔으니 1일 1 수영을 하는 것은 필수! 학교에서 수영 못해 수영시간 마다 혼자 구석에 있던 둘째는 이곳에서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물고기들을 보면서 탄성을 지르며, "우와 물고기 진짜 크다!" 라며 행복해했다.
차로 오니 짐을 한가득 가져와도 끄떡없다. 이것저것 다 바리바리 싸가지고 해변으로 가서 돗자리도 깔고 소나무 아래 자리를 잡는다. 이곳에 와서 정말 좋았던 점은, 아이들이 스노클링 삼매경에 빠져 엄마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다 놀다 배고플 때 돌아온 아이들에게 아까 그릴레스토랑에서 싸 온 올리브오일에 푹 절여진 빵을 주었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먹어 치운다. 안 버리고 가져오길 다행이다. 이렇게 해서 군것질거리에 쓸 돈을 굳혔다. 흐흐
아이들이 놀잇거리를 발견했다. 바다위에 떠 있는 놀이터를 찾아냈다. 한참을 놀고 갑자기 다시 나에게 오더니, "엄마 저거 돈 내는 거래..."라고 한다. 이미 한 시간은 논 것 같은데...다시 찾아가 시간당 10유로를 내고 아이들을 풀어놓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인심 후한 크로아티아인은 두 시간이 지나도 나가란 소리를 하지 않았고 아이들은 에너지가 고갈되자 자기 발로 다시 돌아왔다.
아이들을 맞으러 언덕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뎠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발목이 꺾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베짱이와 아이들이 토끼눈을 하고 나에게 달려왔다. 아, 아프다. 조심스레 일어나 발목을 돌려본다. 몇 걸음 걸어도 본다. 아프긴 한데 발목도 돌릴 수 있고, 걸을 수도 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넘어질 때마다 했던 말, "발목 돌아가고 걸을 수 있으면 부러진 거 아니다. 그냥 가서 놀아." 아파도 부러진 것은 아니니 나는 괜찮다.
숙소에 돌아가서 이곳까지 모셔온 김동현 선수를 찾는다. 역시, 파스는 한국 것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