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사기는 깎아야 제맛이지
크로아티아 이스트리아 지역에 있는 포레치는 고대로마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고 역사지구에는 그 시대의 길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스트리아 지역의 관광명소들은 사실 대부분 그 당시의 돌길을 간직하고 있다.
포레치는 작고 아담했다. 유럽 기준에서는 소도시라고 부를 수 있고, 한국의 기준에서는 시골 읍내의 느낌이다. 로마시대 사람들이 모여 물건도 팔고, 토론을 나누었던 포럼 터가 지금도 남아있다.
크로아티아는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는 아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유고슬라비아 내전도 겪었고 현재까지도 관광업을 제외하면 특별히 주목할 만한 산업은 없다. 그래서 나는 물가도 쌀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관광지의 성수기라 해도, 이탈리아보다 밥값이 비쌌다. 2호가 먹고 있는 저 아이스크림이 2만 원 정도 했다. 호텔 망고빙수인 줄... 과일도 몇 조각 안 들어 있는데 가격은 후덜덜이다.
이 가격을 보고 딱 눈치챘다. 분명 성수기 가격이고, 외국인 관광객 대상 가격이라는 것을. 나라의 경제력이 높지 않은데, 서유럽 경제강국들과 밥 값, 외식값이 비슷하다는 것은 관광객 대상으로 한철 장사가 목적임에 분명하다.
사실 로마 유적지는 이곳에서 50분 정도 떨어진 풀라로 갈 예정이니 날도 더운데 해수욕장에 가기로 했다. 해안선을 따라 걸으면 요트정박장이 나온다. 그곳에서 조금 더 쭉 걸어가면 역사지구에서 가까운 해수욕장이 있다. 걸어가면서 바라본 포레치는 참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다. 곳곳에 협죽도가 피어있었다. 아름답긴 하지만 독성이 강력해 한국에서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라 하는데 이곳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해변에 가는 도중 여러 매대가 있었는데, 비치타월을 사려했더니 한 장에 20유로, 32000원을 달라 하는데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사실 하나 필요하기도 하고, 기념품으로 이 지역의 지도가 그려진 비치타월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아까 내가 파악한 바로는 한철 장사 물가라 지역경제와는 무관하게 아주 비싸다. 그래서 일단 던져본다.
20유로 너무 비싸요.
우리도 남는 거 없어요. (20유로인데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은 진심으로 새빨간 거짓말이 분명하다. )
아우, 그러지 말고 16유로 어때요?
16유로는 진짜 안되고, 특별히 17유로에 해 드릴게.
사실 더 깎으려면 더 깎을 수 있었지만, 이들도 한철 장사인데 먹고살아야 할 것 같아 그쯤에서 타협하고 나는 예쁘고 아주 아주 큰 비치타월을 얻었다.
바다 가까이에 가서 들여다보니 이것이 수돗물인가, 바닷물인가. 너무 깨끗하고 맑다. 아, 다들 이래서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하는구나. 이스트리아 지역의 해변은 대부분이 돌로 되어 있거나 조약돌, 자갈 해변이다. 실수로 레고 밟은 그 느낌을 싫어하시는 분이라면 아쿠아슈즈를 가져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발 지압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맨발도 좋은데, 좀 많이 아프다. 본격적으로 수영복을 입고 아이들은 스노클링을 시작한다. 물고기가 잘 보인다고 난리 법석이다. 물이 투명 해, 물고기가 위에서 내려다봐도 그냥 보인다.
그렇게 놀고 있는데 오토바이를 개조한 것 같은 사륜이긴 사륜인데 뭔가 굉장히 특이한 미니 사륜차가 경적을 울린다. 찹쌀떡 장수처럼 아저씨는 미니 사륜차를 타고 해변가를 돌며 간식을 팔고 있었다. 참새는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고 나는 간식을 못 지나친다. 옥수수도 팔고, 팝콘도 팔고, 빵과 속이 크림으로 가득한 도넛도 판다. 도넛 하나와 막대기처럼 길고 안은 고기와 토마토소스가 들은 빵을 산다. 사실 제일 싼 걸로 샀다. 가격을 자세히 보면 사악하다. 구운 옥수수 한 개, 단 한 개에 6500원가량이라니. 아이들이 분명히 배고프다 할 것이 분명하니 슈퍼까지 다시 가지 않으려고 아저씨에게 구입했다. 그다음 날부터는 무조건 해변에 갈 때 슈퍼에서 사 간 간식을 싸갔다.
그런데 저걸 다 먹고도 아이들은 배가 고팠나 보다. 1호와 함께 먹을 것 사냥에 나섰다. 아까 역사지구 근처에서 지나가며 보았던 테이크 아웃 조각피자집을 찾아갔다. 한 조각에 2.5유로라고 써져 있다. 마르게리따 피자 4조각을 일단 사고, 살라미 피자를 주문했다.
지금 한판 나왔는데 드릴까요?
한 판에 얼만데요?
15유로요.
(그런데 마르게리따 네 조각을 합친 것과 크기는 똑같다.)
그럼 네 조각만 줘요.
아, 이거 한판에 여섯 조각 나오는데?
(아니, 지금 마르게리따 크기가 다 보이고 4조각이 한 판인걸 장님이 아니고서는 다 알겠는데 무슨 말씀을?)
그럼 그냥 그 한판을 상자에 넣고 네 조각으로 자르면 되겠네~ 이러지 말고 그냥 좀 10유로에 줘요.
한국 아줌마의 논리력에 휘말린 피자청년은 그렇게 아줌마가 원하는 가격에 피자를 내어주었다.
피자를 먹고 한참을 물에서 놀다 새벽 두 시 반부터 울어댔던 닭 때문에 눈이 감긴다. 물놀이도 하고 아주 여유롭게 여독에서 회복되어 가는 하루였다.
크로아티아 꿀팁: 정찰제가 아닌 상점, 특히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기념품가게는 일단 한번 흥정을 시도해 보자.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시도한다고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은가. 적혀 있는 가격은 그 지역 주민들도 혀를 내두를 가격이니 흥정에 죄책감은 갖기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