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좀 자자, 이 자식아
10시간 운전을 하고 숙소에 도착해 꿀잠을 잘 거라 생각했는데, 복병이 숨어있었다. 새벽 두 시 반부터 울어대는 이 구역의 미친 닭이 문제였다. 평소에 귀마개를 하고 자는 나에게도 들릴 정도로 우렁찬 소리를 자랑하는 수탉은 새벽 두 시 반부터 여섯 시까지 계속 쉬지 않고 울어댔고 베짱이의 얼굴엔 크나큰 그늘이 드리우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다크서클이 생겼다.
이래서 숙소가격이 쌌나? 어제는 너무 피곤해 보지 못했던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저 미친 닭만 아니면 괜찮은 곳이다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와이파이가 안 터지는 건 무엇?
와이파이는 안뜰과 정원, 1층에서만 터졌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주 1층에 있는 정원 안뜰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게임을 했다. 하하하, 괜찮다. 인터넷 없으면 자연을 즐기면 되는 거지. 하하하

미친 닭과 와이파이 때문에 숙소비가 싼 거였구나...
주인집 아저씨에게 동네 슈퍼 정보를 묻기 위해 내려갔는데, 잘 잤느냐고 물으신다. 허허, 아실 텐데 이런 질문을... 베짱이는 수탉이 울어서 못 잤다고 하소연을 하지만 주인아저씨는 시골이 원래 다 그런거지라며 쿨 하게 받아치신다. 우리가 가는 날까지 수탉은 두시 반에 시작해 여섯 시까지 울어댔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이틀이 지나자 우렁찬 수탉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꿀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과 베짱이는 미친 닭에게 토미슬라브 <Tomislav>라는 전형적인 슬라브식 이름을 지어주었고 주차장을 오가며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도 1층에 쪼그려 앉아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매일 주인집 아주머니에게서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었다. 게다가 주인집에서는 거의 매일 과일을 아이들을 통해 올려 보냈다. 크로아티아에서 만나는 응답 하라 1988 감성이라니.
다미르 아저씨는 스위스에서 일하다 은퇴를 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셨다고 했다. 날 보고 혹시 태국사람이냐고 물으셔서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미안하다 하시며 자기 아들이 스위스에서 태국사람과 동거 중이라 하셨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고 지 편한 대로 산다며 요즘 것들은 다 그런가 보다며 한탄을 하시는 것을 보니 우리네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을 보며 세대차이를 느끼는 것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가 알려 준 동네의 미니슈퍼에 자동차에 넣어온 접이식 자전거를 타고 갔다. 동네 풍경이 꽤나 귀엽고 아기자기하다. 저 상큼한 레몬색 교회, Crkva sv. Ivana i Pavla mučenika는 1595년에 지어졌다. 포레치 <Porec> 시내에서도 자동차로 7분 정도 들어가야 하는 한적한 시골 마을, Zbandaj에 이리 오래된 교회가 있다니.
슈퍼에 도착해 맛있어 보이는 이것저것을 구입했다. 슈퍼에서 이탈리아어는 곧 잘 통했다. 이탈리아사람처럼 생기지 않은 동양인이 이탈리아어를 해서 신기하게 쳐다봤지만 아주 친절했다.(왜 이들이 이탈리아어를 하는지 모르시는 분들은 지난 화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https://brunch.co.kr/@gochujangwaffle/313
(왜 제가 이탈리아어를 하는지는 다음 글을 읽어 보시면 됩니다)
https://brunch.co.kr/@gochujangwaffle/304
이렇게 먹어야 밖에 나가서 주전부리를 하지 않으니 여행 시 아침은 푸짐하게 먹어야 한다. 크로아티아에 가시는 분들은 드링크 요구르트를 꼭 드셔보시길 권한다. 한국의 요구르트에 비해 꾸덕하고 훨씬 풍미가 진한 요구르트인데 아이들도 너무 좋아해서 하루에 1리터씩 마신 것 같다.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오늘은 가장 가까운 포레치<Porec>부터 탐험하러 나서야겠다. 깜깜할 때 도착해, 아무것도 보질 못해 궁금해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하다! 크로아티아의 포레치는 어떤 곳일까? 그것은 다음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