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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가 여전히 좋지만

자주 들어올 수 없는 이유

by 고추장와플

브런치가 여전히 좋지만 자주 들어올 수 없는 이유


내 집이 사라졌다. 정확이 말하자면 다시 태어나고 있는 중이다. 뼈대만 남기고, 안과 밖을 다 고치는 대대적 공사이다. 몇 달간 잘 곳이 없어 시 부모님 댁에 들어갔다.


우리를 받아주셔 다행이다. 감사하다.


그것과는 별개로 시댁에 있으려니, 시어머니가 요리할 때도, 빨래를 널 때에도, 그냥 모든 것이 신경 쓰여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다. 남편은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을 쓰지 않지만 어찌 되었건 내 어머니는 아니니 고생하실까 봐 신경 쓰인다. 그러다 보니 퇴근하고 시부모님 댁으로 들어가서도 계속 엉덩이는 의자에서 반쯤 들고, 앉지도 그렇다고 서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기상시간, 좋아하는 음식, 하루를 보내는 방법, 그 모든 것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집에서 살아가려면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2주 정도가 된 시점에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 나의 마음은 바위덩이를 얹은 듯 무겁기만 하다. 도서관 주말 업무를 자진해서 연속으로 하기도, 쓸데없이 집에 빙빙 돌아가기도 한다. 아 참, 내 집은 아니니 시부모님 집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나는 주는 대로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이다. 아니, 이었다. 주는 대로 잘 먹고, 아무 데서나 잘 자는 것의 조건이 내가 언제든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침대가 있는 내 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일 줄이야...


시부모님도 말은 못 하셔도 우리 때문에 많이 힘드실 것이 분명하다. 은퇴 후의 노년을 삶을 당신들의 속도로 천천히 즐기시는 분들의 집에 갑자기 천둥벌거숭이 같은 네 명이 나타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호들갑에 한 시도 조용할 틈이 없으실 테니.


다른 곳에 살아 보지 못한다면 모를까, 한 지붕에 사는 며느리나 아들이 예상시간보다 조금만 늦어도 가슴이 쿵쾅거려 걱정부터 하시는 시어머니. 어제는 남편이 퇴근 후 한잔하고 들어왔는데, 시 어머니는 밤이 깊도록 남편의 자전거 타이어가 펑크가 났을지,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닌지 걱정하시느라 아침에 피곤이 가득한 기색으로 일어나셨다. 우리는 십 수년간 성인으로, 집을 나가 살았던 사람들이기에 이런 걱정이 감사하지만, 부담스럽다.


군인으로 은퇴하신 시아버지의 각 잡힌 이불 개기와 샤워 후, 물방울 하나 안 남도록 완벽하게 정리하시는 욕실청소는 배워야 할 점이 마땅하지만, 내가 사람이 덜 된 턱에 가슴이 갑갑하다.


내 엄마와 아빠가 아니라 그런 걸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는데도 괜히 눈치가 보이고, 내 집과 내 자유가 그리운 걸 보면. 우리가 머물고 있는 방엔 방문이 없다. 방문도 그립고, 이빨이 좋지 않으신 시어머니가 매일 드시는 누가 씹어 놓은 식감의 감자퓌레 대신 씹는 맛이 있는 오곡밥에 김치를 올려 먹고 싶다.


감사합니다, 시부모님.

그런데 집에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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