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를 믿지 않은 자의 최후
맛있는 밥을 먹고 행복해진 우리는 주차한 곳이 시내에서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 좋게 트리에스테의 역사지구까지 걸어갔다. 가는 동안 전형적인 베네치아식 건물과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는 지리적 특성을 건축물들에서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트리에스테의 주요 관광지 피아짜 우티타디탈리아광장에 도달했다. 피아짜 우티타디탈리아(Piazza Unita d'Italia)는 이탈리아 통합광장이라는 뜻으로 이탈리아로 통합되기 이전인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시절에는 오스트리아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이름을 따서 만든 피아짜 프란체스코-쥬세페로 불렸다.트리에스테가 이탈리아에 합병이 되면서 그것을 기리기 위해 우니타 디탈리아 (Unity of Italy) 광장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바다가 보이는 유일한 광장이라는데, 청명한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구름 한 점 없는 태양이 반짝이는 날씨, 글로 쓰면 아름다우나 실제로 느끼면 쪄 죽을 것 같은 날씨에 우리는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사실 준비를 전혀 해 오지 않은 탓에 가장 가까운 근처에 있는 미술관에 가려했더니, 이럴 수가... 점심시간 휴관이다. 대한민국사람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점심시간 휴관. 내가 이해를 못 한다고 해서 미술관이 문을 여는 것은 아니니 일단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미술관 앞에 있는 어느 아저씨에게 혹시 이 근처에 가 볼 만한 박물관이 있냐 물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한국이라 대답했더니, 당신이 관심 있어할 만한 미술관이 있다고, 컬렉션이 아주 출중하다고 한다. 그곳은?
Civico Museo D'Arte Orientale (시립 동아시아 미술관)을 강력 추천했다. 이탈리아까지 와서 내가 동아시아 미술을 보러 가다니... 그런데 밖은 쪄 죽을 듯이 더워 어딘가로 대피는 해야겠고, 준비 없이 여행온 자는 결국 이탈리아까지 와서 동아시아 미술관으로 가게 되었다. 어쨌든 그늘에 에어컨이 있고, 가까이에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게다가 무료이니 마음을 비우고, 저 멀리에서 온 동아시아 작품들과 동아시아에서 온 나 사이에 교감을 느끼러 간다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키요에 판화 컬렉션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다. 우키요에란 일본 에도시대에 유행한 판화로 색이 화려하고, 대중을 상대로 하여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왜 우키요에 판화가 이 먼 땅의 유럽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위의 호쿠사이가 그린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우키요에를 모르는 서양인이라도 한번쯤을 보았을 작품이다.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는 유럽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일본의 우키요에 판화의 대가이다.
판화라서 그리는 데에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고, 대중들을 상대로 여러 장 찍어내다 보니 동양에서는 귀중한 대접을 받지 못했으나, 일본은 이 판화로 찍어낸 그림으로 도자기를 포장하여 유럽에 수출한다. 유럽에서 동양의 도자기는 엄청난 가치를 가진 진귀한 물품이었고, 도자기의 포장지마저도 유럽의 귀족들과 지식인들, 화가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위의 그림은 반고흐가 그린 1887년에 그린 작품이다. 줄리앙 탕기라는 인물의 초상화인데 자세히 보면 뒤에 일본의 우키요에 작품이 걸려있고 반고흐는 이를 작품의 초상화 배경으로 사용했다. 이 작품 이외에도 우키요에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그의 작품은 수도 없이 많다.
다음 작품은 비교적 비슷한 시기인 1876년에 그려진 모네의 La Japonaise라는 작품이다. 모네는 자신의 정원에 은행나무, 대나무와 여러 일본 과실수들을 심었을 정도로 일본예술에 심취해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우키요에 판화의 대가 호쿠사이의 작품을 보면 모네가 일본예술에 얼마나 심취해 있었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미술관 안은 특히 호쿠사이의 작품들이 많이 보였고, 우리나라의 미술작품과는 사뭇 다른 일본느낌이 물씬 나는 그림들이 많이 보였다. 선이 얇고 정밀하게 표현된 그림들과, 만화적 상상력이 물씬 풍기는 재미있는 동물그림도 인상깊었고 에도시대부터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주요 컬렉션이 우키요에인 미술관에는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기대 없이 간 것 치고는 재미있게 구경했다.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을 한국인이 아닌,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19-20세기는 일본문화가 서구권을 장악했다면 우리가 사는 현재의 21세기는 한국문화가 꽉 잡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밖으로 나오니 타는 듯한 태양은 기세가 약해졌다. 이탈리아에 왔으면 스프리츠는 마셔줘야지. 스프리츠(Spritz)는 이탈리아인들이 즐겨 마시는 칵테일로 이탈리아식 샴페인인 프로세코(Prosecco)와 비터리커, 주로 캄파리(Campari) 혹은 아페롤(Aperol)과 탄산수가 섞인 알코올음료이다. 사진에 보이는 주황색빛이 나는 음료가 스프리츠이다.
청명했던 하늘은 구름이 잔뜩 꼈다.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베짱이가 날씨예보를 확인하더니 빨리 주차장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아, 아직 볼 것이 많은데 벌써 집에 가자고? 아직 고대 원형경기장과, 포럼터랑 성곽도 보지 못했는데 벌써 가다니.
"조금 있으면 비가 오기 시작할 거래. 주자창으로 빨리 돌아가자."
"근데 여긴 이탈리아야, 비가 와도 조금 부슬부슬 내리다 말겠지. 아직 온 지도 얼마 안됐는데, 우리 성에만 빨리 올라갔다가 가자. 여기서 15분 거리래. 얼마 안 걸려. 응?"
나와 성격이 비슷해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인 첫째도 가세한다.
"아빠,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성에 가 보고 싶어. 하나라도 더 보고 가는 게 낫지."
아들까지 성에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베짱이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따라나섰다. 산 주스토 성(Castello San Gisuto)에 가는 길에 로마시대의 원형경기장 터도 보았다. 풀라의 잘 관리되고 보수된 원형경기장과는 달리 방치된 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성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건만, 한 가지를 간과했다. 대부분의 성은 언덕 위에 있다는 것을...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데 구름은 점점 짙어졌다. 마음이 급해져 뛰다시피 언덕을 오르니, 날도 습한데 땀이 났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로마시대의 포럼터가 보였다. 산 주스토 성의 정상에서 바다도 보이고, 시 중심가도 한눈에 보였다.
정상에 다 도착했을 때 성의 입장시간은 15분 만을 남겨두고 있었고, 갑자기 우르릉 쾅하는 소리와 함께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입장시간이 거의 끝나서 성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누가 아까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말 거라고 한 것 같은데..."
내 탓이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 베짱이.
나무 밑에서 비가 좀 잦아지기를 기다려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10분을 기다려도 비는 잦아들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쫄딱 다 젖었다.
"지금 우리 언덕 꼭대기의 나무 아래서 이렇게 번개 치고 천둥 치는데 서 있는 거 미친 짓이야. 그러니까 내가 아까 가자고 했잖아."
베짱이의 한탄에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비가 계속 와서 이제는 나무 아래에 있는 것이나, 그냥 서 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나무아래서 폭풍 검색을 하니 200미터 떨어진 곳에 맥도널드가 있다.
"하나, 둘, 셋 하면 열심히 뛰어서 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알았지?" 아이들에게 행동지침을 전해주고 뛸 준비를 한다.
"하나, 둘, 셋!"
우리는 점심때까지만 해도 청명했던 이탈리아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200미터 달리기를 하고 그렇게 산해진미가 가득하다는 나라에서 맥도널드 햄버거로 저녁을 때웠다.
미안하다, 베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