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에 태어나서 본 가장 아름다운 석양

눈물 나게 아름다운 윤슬과 돌고래들

by 고추장와플


어제 비를 쫄딱 맞고 집에 와서 피곤하다. 맑디 맑은 하늘이 그렇게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는 날씨로 바뀔지 몰랐다. 자고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니 너무 날씨가 좋다. 운전하느라 피곤했으니 오늘은 숙소 근처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포레치(Porec)에 있는 플라바 라구나 갈리옷이라는 해변이다.

https://share.google/NxboyYnO70WcH776F

나는 이탈리아 바다를 사랑하지만, 성수기에 스트레스 없이 휴양을 즐기려면 크로아티아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성수기 이탈리아 해변에서 귀를 의심하게 하는 선베드의 대여가격에 비하면 매우 인간적인 가격으로 선베드를 빌릴 수 있으며 사람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지도 않다. 몇 년 전 이탈리아 칭퀘테레의 몬테로소라는 해안가에서 선베드 두 개를 세 시간에 40유로를 주고 빌렸었다. 60유로(거의 대략 10만 원) 달라는 것을 40유로 (6만 4000원가량)로 흥정하는 데 성공했지만 나는 40유로도 말이 되지 않는 가격이라 생각한다. 이탈리아는 선베드를 빌려야만 하는 프라이빗 해변이 주를 이루지만 크로아티아는 거의 대부분이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다.

하루 종일 선베드를 빌리는 데에 10유로(16000원) 밖에 하지 않는다. 아주 인간적인 가격이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몰랐기에, 캠핑의자까지 바리바리 챙겨 왔다. 먹을 것도 챙겨 오고 돗자리도 챙겨 오느라 짐이 한가득이지만,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그곳에서부터 가져간 접이식 자전거를 수레로 이용하여 그 많던 짐을 한방에 실어 나르기 완료! 저 접이식 자전거는 나와 함께 여러 나라를 여행한 소중한 자전거이다. 중고로 10만 원에 구입해,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크로아티아까지 함께 한 나의 애착자전거이다.

애착인형 아니고 애착 자전거

바다는 투명하고 하늘은 푸르디푸르다.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이 만나 하나가 되고, 그 푸른 바다에서 아이들은 물안경을 끼고 신나게 물고기를 구경한다. 수영을 무서워하던 막내도 나와 손을 잡고 정어리떼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자그마한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바다에 둥둥 떠서 수백 마리의 정어리 떼를 따라 여기저기 함께 헤엄치는 날이 오다니,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다.


스노클링을 한참 하고 나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더니 내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으흐흐. 크로아티아까지 왔는데 프라이빗 보트는 한번 타야 하지 않겠어? 그냥 프라이빗 보트도 아니고 미끄럼틀까지 있는 프라이빗 보트다, 이거야. 대여소를 찾아, 시간당 12유로 (2만 원가량)를 주고 페달로를 빌린다. 프라이빗보트긴 하지만 무동력이라 내가 페달로 굴러야 가는 보트, 우리 넷만 타면 뭐 다 프라이빗 보트가 아닌가.

엄마와 아빠는 열심히 페달을 구르고 아이들은 미끄럼틀에서 바다로 풍덩 뛰어든다. 첫째와 아빠가 자리를 바꿔 아빠도 풍덩, 바다에 뛰어든다. 악, 성인 남자의 무게가 갑자기 사라지니 페달로가 휘청한다. 뒤집힐 뻔했다.


베짱이는 바다에 뛰어들었고, 나는 첫째에게 소리친다.


"페달 굴러, 도망가자!"


베짱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페달로를 쫓아오느라 힘을 다 빼고 울상이 되었고, 나와 아이들은 한참을 베짱이 놀리는 재미로 깔깔댔다.

투어 가판대가 쭉 늘어서 있다.

물놀이를 하고 포레치 선착장으로 향했다. 사실 며칠 전부터 점찍어 두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선셋 돌고래투어다. 크로아티아 해변도시를 가면 저렇게 손님을 모으는 투어회사 가판이 늘어서 있다. 돌고래 선셋투어 가판대를 다 돌며 가격비교를 하고 가장 저렴한 곳을 선택했다. 아저씨는 오늘 돌고래를 못 보면 내일 다시 태워주겠다며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흔들리는 나의 눈빛을 보더니, 굳히기에 들어가셨다.


"오늘 만약 돌고래가 안 나타나면, 나올 때까지 계속 공짜로 태워줄게요."


게다가 투어를 하며 와인과 음료도 제공된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아저씨의 말에 홀딱 넘어갔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대신 가판대에서 했지만 대략적인 가격을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이스트리아 지역 여러 도시에서 출발하는 보트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는 사이트를 첨부한다.

https://www.istria-excursions.com/?l=eng&ispis=izleti&kategorija=1147&grad=4


하나둘씩 보트에 탑승하고 배는 그렇게 포레치 선착장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우리는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가 운전석 옆에 자리를 잡았다.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해 질 녘의 온화한 햇살과 바닷바람은 마치 엄마품처럼 아늑하고 따듯했다.

아이들도 열심히 바다 구경을 하고 있는데 선장님이 갑자기 막내를 옆으로 오라고 부르신다. 선장님 옆에 앉은 막내에게 선장님은 배의 핸들을 잡아 보라 하신다. 막내는 뜻밖의 제안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10여 분간 선장 아저씨의 지휘아래 보트를 운전했다. 막내가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보니 나도 행복해졌다. 막내뿐만 아니라 다 컸지만 아직 애기인 첫째도 불러 배를 운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평소에 무언가 요구를 잘하지 않는 막내가 "엄마, 빨리 사진 찍어! 내 친구한테 나중에 꼭 말하고 싶어." 라며 행복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장님은 선장님대로, 애들이 제대로 하는지 매의 눈으로 주시하면서 돌고래를 망원경으로 찾느라 바쁘셨다. 돌고래가 안 나와도 내일 다시 태워주신다고 했으니, 못 봐도 아쉬움은 없다!


이제 태양이 뉘엿뉘엿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태양은 비추는 모든 것을 주홍빛으로 물들였다. 지평선은 고운 홍시의 색처럼 변해갔고 아름다운 바다, 잔잔한 파도와 윤슬, 그리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순간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행복이란 이런 거겠지? 함께 순간을 나누는 것, 내가 행복한 그 순간에 나와 함께 같은 마음을 느끼는 것, 바로 그런 거겠지?

갑자기 선장님의 무전기가 소리를 낸다. 선장님의 손길이 분주해지고 여러 배들이 엔진을 끄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밑에서 "저기다!"라고 누가 외쳤다. 거짓말처럼 돌고래 한 무리가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 아름다운 광경을 보긴 했지만 그때 그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오렌지색을 머금은 하늘과 바다의 사이에 맞닿은 태양, 그리고 주홍빛 윤슬과 반짝이는 바다에서 행복하게 뛰노는 돌고래들, 그것은 수족관이 아닌 자연에서만 만날 수 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자연이 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선물에 모두들 감동하여 숙연해 지기까지 했다.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을 느꼈고, 자연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다시 가슴이 벅차오른다. 포레치 선착장에 내려서도 한참을 우리는 말없이 손을 잡고 걸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본 가장 아름다운 석양, 우리가 함께 한 이 순간이 오랫동안 모두의 기억에 남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