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과 노란 테이프

라시드 이야기 5

by 고추장와플

라시드가 보여준 쇼핑백 안에는 커튼이 들어있었다.


"내가 어제부터 생각했는데 맞은편 아파트랑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니까 사생활 보호가 안 될것 같아서, 집에서 안 쓰는 커튼을 좀 가져왔어요. 밑에 내려가서 사다리를 가져올게요. 커튼을 걸면 조금 더 아늑하게 느껴질 거예요."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미안해졌다. 우리들을 생각해서 커튼을 가져왔는데 무기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니.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서 그는 부엌 찬장문을 고치기 시작한다.


'그의 멍든 얼굴만 보고 의심을 하다니, 나는 아직 덜 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라시드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고마워요, 라시드. 그런데 얼굴은 왜 그렇게 된 거예요?"


"어제저녁에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몇 명의 모로코인 무리가 나를 갑자기 때리기 시작했어요. 내가 그때 술을 너무 마신 상태라 제대로 방어도 못하고 흠씬 두들겨 맞았는데 다행히 집에는 걸어올 수 있었어요."


"아니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좀 심각해 보이는데 병원에 안 가도 되겠어요?"


"병원에 가 봤자, 진통제 먹고 쉬라고 할 텐데요, 뭐. 이 라시드는 살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 이런 것쯤은 아무렇지 않아요. 아마 내일모레쯤이면 괜찮아질 거예요."


얼굴이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부었는데 내일모레는커녕 일주일은 걸려야 괜찮아질 것처럼 보였다.


아직 아이들을 소개해주지 않은 것 같아 아이들에게 인사를 시킨다.


"얘들아, 어서 인사해. 건물 관리인 라시드 씨야."


"안녕하세요."


아이들은 인사를 하고, 새로 이사한 집에서 자리를 잡고 다시 게임 삼매경에 빠진다.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거지' 반성하며 그가 수리를 하는 동안 나는 다시 짐 정리에 들어갔다. 그래도 두 달은 살아야 하기에, 아이들의 옷은 다양하게 가져와서 박스가 꽤 많이 있었다.


한창 정리를 하고 있는데 라시드가 나에게 오더니 말했다.


"찬장 문은 다 고쳤고, 커튼도 다 달았어요. 이거 봐요. 훨씬 낫죠?"

"정말 고마워요, 라시드."


"그럼 또 봐요, 친구!"


맞은편 아파트의 튼튼한 유대인 아줌마가 잠옷바람으로 밥상 차리는 것까지 들여다 보였는데, 이젠 프라이버시가 생겼다. 아줌마에게도, 나에게도.


그런데,


아파트에 딸린 쪽방 창문의 손잡이는 고쳤는지 궁금해 들어가 보니, 노란색 테이프를 창문을 찍 붙여놨다. 손잡이를 고쳐 달라 했더니 테이프로 그냥 붙여놓다니. 이미 가버려서 다시 고쳐달라 할 수도 없다. 불신이 돋아나면 친절로 덮고, 그의 친절을 믿고 잘하려니 하고 믿으면 뒤통수를 치고, 그리고 다시 그 뒤통수에 약을 발라주며 무마를 한다. 라시드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