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드이야기 6
원래 우리가 살던 곳에서는 격주로 일주일에 한 번 종이류와 플라스틱과 깡통류의 재활용품을 번갈아가며 쓰레기차가 와서 수거해 간다. 내일 아침 일찍 수거해 가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쓰레기봉투를 밖에 내놔야 하는데, 시의 구역별로 종이류인지, 플라스틱과 깡통류를 내놓는 날이 달라 확인을 해 봐야 한다.
그것을 알기 위해 제일 빠른 방법은 남들이 내다 놓은 쓰레기봉투를 확인하는 것이다. 내려가 밖에 놓인 봉투를 확인했다.
종이를 내어놓은 봉투와 플라스틱과 깡통봉투가 밖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내일 그래서 종이라는 거야, 플라스틱이라는 거야?' 둘 다 있는데 헷갈린다.
내키지 않지만 라시드를 찾는다.
"라시드, 내일 종이류 수거인가요, 아니면 플라스틱 깡통류 수거인가요?"
샐쭉 웃으며 그가 대답한다.
"아무거나 친구가 원하는 거 내놓으면 되죠!"
또 시작이다. 피곤해서 장난칠 기운도 없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래서, 뭘 내놓아야 하냐고요."
"아무거나 내놔도 된다니까요, 글쎄!"
의심의 눈초리로 재차 내가 물었다.
"확실해요? 우리가 살던 곳은 격주로 가져갔는데..."
유대인 구역 길가 한복판에서 그가 큰소리로 말한다.
"유대인들 돈 많잖아요, 유대인 공동체에서 지들 편하자고 시에다가 돈 더 주고 쓰레기를 매주 아무거나 다 버릴 수 있게 했다고요."
목소리는 기차화통을 삶아 먹었나 왜 이렇게 크단 말인가.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유대인 구역의 한복판, 그것도 바로 앞에 유대인도 지나가고 있는데 이렇게 크게 말을 하면 날 더러 어쩌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눈을 굴리며 자리를 떴다. 안전이 최우선이다.
쓰레기를 한꺼번에 처리하니 확실히 편하긴 하다. 유대인 공동체가 돈을 내어준 덕에 우리 가족의 쓰레기도 한꺼번에 해결했다.
내친김에 앤트워프의 유대인 이야기를 좀 적어볼까 한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앤트워프는 유럽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수의 정교도 유대인들이 있다. 정교도 유대인은 하레디 유대인으로도 불리며 토라를 목숨처럼 여기고 종교적인 삶을 추구한다. 현대인의 생활방식을 거부하고 경전에 쓰인 그대로의 삶을 추구하는데 남자는 온통 검은 복장과 커다란 모자, 길게 길러 구불구불하게 만든 구레나룻 옆머리가 특징이다.
여성들 또한 무채색의 옷을 입고 대다수의 여성들은 머리스타일과 색상이 비슷한데, 그 이유는 가발을 쓰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기 전 머리를 박박 민다. 외간 남성에게 성적인 암시를 줄 수 있는 머리카락을 보이는 것은 음란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머리를 밀고 가발을 쓰는 것과, 자기 머리를 유지하는 것의 차이를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의 문화가 그러하다는데 내 생각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많은 이들이 이슬람교 여성들의 처지와 히잡을 써야 하는 의무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반발하기도 하지만 하레디 여성들은 이 보다 훨씬 더 무거운 공동체의 압박에 놓여있다. 그들 자신은 정작 인지하지 못하지만, 하레디 공동체의 유대인 여성인권은 그야말로 바닥이다.
자전거 타기 제일 좋은 도시 세계 2위를 한 적이 있는 내가 사는 도시의 유대인 구역은 중앙역 바로 뒤편에서 시작하는데 도시의 가장 중심가이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매우 혼잡한 곳이다. 유대인 아이들은 그곳에서 삼삼오오 자전거를 타며 논다. 관찰을 해 보면 부모가 차 조심하라는 말을 했는지는 의문일 정도로 앞 뒤, 양 옆을 보며 노는 경우가 없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은 남자아이들 밖에 없다. 자전거 위에 앉으면 안장에 생식기가 맞닿아 여성이 음란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아이에게는 오로지 서서 타는 씽씽이만 허용된다.
여성들의 존재이유는 아이를 생산하는 것이며, 현재 유대인 공동체의 최대 목표는 홀로코스트에서 죽임을 당한 유대인의 수를 복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이를 다섯-여섯 명 이상을 낳는다. 힘닿는데 까지 낳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유대인 공동체는 그들만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극도로 폐쇄적이다. 아이들은 절대로 일반학교에 가지 않고, 유대인학교에 간다. 벨기에의 다른 학교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이 아이들은 일요일에도 학교에 간다. 고기와, 빵, 모든 식재료는 코셔(Kosher, 이슬람교의 할랄과 같이 경전에서 말하는 대로 손질된 재료) 식재료를 사용하여, 유대인 식료품점, 유대인들이 입는 무채색 옷을 파는 옷 가게들이 유대인 교회인 시나고그(Synagoog)를 중심으로 들어서 있는데,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는 시나고그 바로 맞은편이다.
벨기에에 몇 세대에 걸쳐 살아가면서도 이들은 절대 벨기에인과 섞이지 않는다.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사회 동화가 잘 되지 않아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동화를 거론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단절하여 살아가고 있음에도 언론에서는 이에 대해 단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는다.
그것이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이기에 이런 특권을 허락하여 그리 된 것인지, 아니면 유대인 공동체의 막강한 경제력이 특권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유대인 공동체에게 특권이 주어진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몇 가지를 살펴보면 확실해진다.
내가 사는 도시의 이슬람 인구는 유대인보다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학교는 전무하다. 종교시설 내에 있는 주일학교 같은 개념이 아니라, 정부에서 허가하고 인가한 벨기에에서 인정되는 보통교육을 의미한다. 유대인 공동체의 입김이 얼마나 센 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이 도시 곳곳에는 유대정교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가 몇 군데 있다. 다양성을 최대 과제로 삼고 도시인구의 통합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교육부의 방침과는 전혀 다른 행보이다.
또한 유대정교 학교 앞이나, 유대교 교회 시나고그 앞에는 경찰도 아닌, 심지어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도시 어딘가에서 폭탄이 떨어지지 않는 한 군인이 민간인 시설을 지키는 경우는 없다. 단, 유대인 공동체만 빼고. 그들의 안전을 위해 아마도 어마어마한 경제력을 가진 유대인들이 정부에 로비하여 군인들을 배치한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유대정교 남성들은 먹고살기 위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미 말했듯, 이들은 경전 공부가 인생최대의 목표이다. 어떻게 해야 경전이 제시한 대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공부한다. 경전이 몇 천년 전에 쓰였으니, 현대식으로 해석할 만도 한데 이들은 경전에서 구레나룻을 깎지 말라고 쓰여있다며 집에서는 컬을 고수하기 위해 구르프로 돌돌 말고 있다.
뉴욕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정교공동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배우자를 데려와 결혼식을 올리는데, 문제는 비자발급이다. 위에서 말했듯, 유대인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 배우자비자의 발급조건은 수입의 증명이다. 이 부분이 비자발급의 가장 큰 역할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유독 유대인들에게는 배우자비자가 쉽게 허용된다. 이것 또한 유대인 공동체에서 로비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정부에게 로비를 할 수 있는 부는 어디에서 왔을까? 지금은 화학작용으로 만들어지는 인공 랩다이아몬드가 거래되면서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많이 하락했지만 앤트워프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의 60%가 가공되고 거래되는 세계최대의 다이아몬드 거래지이다. 유대인들은 예전부터 다이아몬드 거래에 관여해 왔고 거대한 다이아몬드센터 건물을 중심으로 유대인구역이 형성되어 있다.
16세기부터 이곳에 살던 유대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상당수가 캠프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내가 사는 도시와 가까운 곳에는 지금도 유대인들을 기차로 실어 나르던 캠프가 보존되어 있다. 루마니아, 헝가리를 비롯한 유럽 전 지역에서 끌려온 유대인들은 전쟁이 끝나고 유대인을 위한 시설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앤트워프에 터를 잡았다. 현재의 이 큰 규모의 유대인공동체는 사실 전쟁 뒤에 형성된 것이다.
유대인 구역에 살면서 매일 건너편 아파트의 잠옷바람을 한 유대인 아줌마를 보지만 실제로 일반인과의 교류는 이루어지지 않아 궁금한 마음에 뉴욕 정교유대인 공동체에서 도망쳐 나온 유대인인 데보라 펠트만(Devorah Feltman)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그리고 베를린에서'(Unorthodox)를 시청했다. 그리고 실제 앤트워프의 유대인구역과 다이아몬드 센터 건물에서 촬영된 러프 다이아몬드(Rough Diamond)라는 시리즈도 보았다.
https://www.netflix.com/be/title/81019069
https://www.netflix.com/be/title/81332635
이렇게 가까이에 있지만 비밀스럽고 여전히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그들의 삶, 그 한복판에서 라시드는 왜 이렇게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인가.
유대인 구역 한복판의 목소리 큰 모로코인 라시드, 그의 무사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