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형제, 자매?

라시드 이야기 1

by 고추장와플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 브런치북으로 재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양해의 말씀 구합니다.



모로코가 고국인 건물관리인은 자신을 라시드라 소개했다. 오후 네시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그는 약간의 취기가 올라있었고 말투는 어눌했다. 과장된 말투와 몸짓은 나를 더 경계하게 만들었다.



"자전거는 여기에 놓으면 되고, 뭐 필요한 것 있으면 말만 하세요. 이 라시드가 다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뭐든 뚝딱뚝딱 다 고쳐요. 이 아파트에 살면 다 내 친구니까요, 혹시 가구라든가 침대가 필요하다면 내가 빌려줄 수도 있어요."


리모델링과 증축 때문에 몇 달간 집을 비워줘야 했고 남편가족의 집에 얹혀살다가 남편의 가족은 내 가족이 아니라는 호된 가르침을 배우고 급히 살 곳을 찾아 나섰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업소는 한 달에 300만 원이 넘어갔다. 그렇다고 남의 집에서 느끼는 설움을 참아가며 쭉 두 달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을 테니 방법을 더 찾아보았다. 그 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숙소는 비쌀 수밖에 없었다. 주거 용도로 빌릴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현재 비어있는 아파트를 2달가량 빌리려 하는데 혹시 소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휴대폰에 저장된 거의 모든 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제발 누군가가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바라며 문자를 확인했다. 우리 집에서 다섯 집 건너에 사는 토마스였다. 동네 주민끼리 일 년에 두어 번 모여 함께 집에서 해온 음식도 나눠먹고, 바비큐 파티를 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사람 좋은 웃음을 하고 함께 테이블을 펼치고, 준비를 돕던 이웃이었다.


"우리 부모님의 아파트가 지금 비어있어요. 당장 들어와서 살 수 있어요. 보러 올래요?"


그렇게 이틀 뒤 속전속결로 아파트를 보러 가기로 했다. 전달받은 주소를 찾아보니 시내에서도 가장 번잡한 지역이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무슬림지역과, 유대인 지역이 나뉘는 곳으로 길 왼쪽으로는 모스크가, 오른쪽으로는 유대인교회인 시나고그가 있는 곳이다. 가자기구의 종교적 충돌과는 별개로 이곳에서 무슬림과 유대인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는 않아도 별 충돌 없이 긴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이민자라는 서로의 고달픈 처지를 이해해서 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도시의 유대인 지구

건물밖에 서서 토마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토마스는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미안하다 했고 문 앞에서 약 5분여를 기다렸는데, 건물 안에서 어느 중년의 남자가 나왔다.


"누구 찾고 있어요? 저한테 말하면 됩니다."


"집을 보러 왔어요. 누굴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아, 토마스요? 토마스 곧 올 거니까 추우니 이 안에 들어와서 기다려요. 나는 아파트를 관리하는 사람이에요. 토마스도 잘 알고, 토마스 부모님도 잘 알죠. 내 이름은 라시드, 그쪽 이름은요?"


"저는 영이라고 부르면 돼요.(자주 볼 사람이 아니면 풀네임을 말하지 않고 이름의 한 글자만 말하는 성향이 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묻기도 전에 중국인?이라 확신하는 사람들이 많아 늘 거슬렸었는데, 라시드는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는다. 술냄새의 거슬림이 이 한마디에 사라진다.


"저는 코리아에서 왔어요."


"아, 북한? 남한?"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보길래 마음을 조금 풀었더니 북한인지, 남한인지를 묻는다. 어쩐 일인지 가뭄에 콩 나듯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길래 반가웠는데, 늘 그렇듯 다시 제자리다.


"라시드, 유럽에서 북한 사람을 만날 확률은 1퍼센트 정도밖에 안 될걸요. 당신이 누군가를 만나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거의 십중팔구의 확률로 남한입니다."


"아, 허허허. 그런가요? 그게 뭐 중요한가요. 우리 모두 형제, 자매이자 친구인걸요."


그의 말에 어차피 2달만 이곳에서 지낼 건데, 북한, 남한이 뭐 대수라고. 그래 다 형제, 자매지 뭘.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토마스가 도착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