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드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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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가 도착했다. 토마스와 라시드는 오래 알아 온 사이인듯 자연스레 인사를 나눴다.
특유의 사람좋은 웃음을 하고 토마스는 말했다.
"애들을 학교에서 픽업 하느라 늦었네요. 미안해요. 부모님이 소유한 아파트 중 두 채가 비어있어요. 들어가서 볼래요?"
그렇게 우리는 1층의 아파트로 향했다. 들어가 보니 각종공구와 테이블, 목재가 가득 쌓여있다. 토마스가 라시드에게 눈을 살작 흘긴다.
"아, 이건 금방 싹 치울 수 있어요. 만약 들어 온다고 하면 다음 주 까지 내가 싹 다 치워 놓을게요."
1층은 작은 뒷뜰이 있었지만 다른 건물들로 둘러 쌓여 프라이버시는 보장되지 않았고, 11월의 겨울에 뒷뜰을 쓸 이유는 없었다. 싱크대 위 찬장 문이 떨어져 나간 곳도 있었다.
라시드는 재빨리,
"들어오기 전 까지 내가 다 고쳐놓을테니 걱정 말아요." 라고 했다.
"이 위층도 비어있어요. 윗층은 뒷뜰이 없으니 좀 더 가격이 싸지요. 거기도 볼래요?"
토마스가 물었다.
들어가니, 입구에 물 샌 흔적이 역력하다. 여기저기 물을 머금었던 자리는 갈색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톤으로 여기 저기에 얼룩이 져 있었다.
"이 층은 2년간 비어있었어요. 물 새는 건 다 고쳤지만 세입자가 없어서 아직 칠하진 않았어요. 더 이상 물은 새지 않으니 걱정 말아요. 원한다면 라시드가 페인트칠도 해 줄거에요."
냉장고와 인덕션, 식기세척기, 찬장은 구비되어 있었지만 찬장문은 덜렁 거리고 가전제품들은 과연 작동을 하기나 하는 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치 않았다. 나는 몸이 편히 지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편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다. 남의 집이 아닌, 내 돈을 내고 머물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는 그런 곳.
가격은 아랫층 보다 쌌고 공구와 목재가 쌓여있지도 않았다.
"여기는 언제부터 들어와서 살 수 있어요?"
"여긴 당장도 가능해요. 라시드가 냉장고 청소를 하고 가구들을 다 고쳐 놓을거예요. 페인트 칠도 원하면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몇 일이 더 걸려요."
"그렇다면 2층으로 할게요. 그럼 저희는 내일 모레 들어올거예요. 그 때 까지 수리 가능한 거 맞죠?"
평소의 사람좋고 호탕한 토마스는 근엄한 얼굴로 라시드를 쳐다본다. 내가 처음보는 눈빛이다.
"라시드, 3일 내로 가능한가요?"
"그럼요. 내일까지 내가 싹 다 고쳐 놓을거예요."
그렇게 구두로 약속을 하고 나왔다. 갈색 얼룩이 여기저기 보이고, 찬장 문이 떨어져 나간 아파트는 한 달에 800유로였다. 한 화로 150만원 가량이지만 관광객을 상대로 한 숙소보다 훨씬 저렴했다.
그렇게 라시드를 아파트에 남겨놓은 채 토마스와 나는 밖으로 나왔다.
"내일까지 해 놓겠다는 말을 다 믿으면 안돼요. 라시드는 항상 저러거든요. 사실은 이 건물 전체와 이 옆 건물이 우리 부모님 건물인데, 세입자들 방을 고쳐주고 잡일을 하는 조건으로 월세를 안 내고 살고 있어요."
의외였다. 사람좋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웃들에게 손을 흔들던 토마스의 집에는 사회주의 극좌파정당의 포스터가 늘 창문에 걸려있었다. 그런 토마스가 사실은 5층짜리 건물 2채를 가진 건물주의 아들이었다니. 라시드에게 보여주던 근엄한 표정이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그는 건물주왕국의 왕자였다.
얹혀살던 집에서 급히 필요한 짐만 가지고 이사를 했다. 공사중인 우리 집에서는 식탁과 매트리스, 기본적인 식기와 요리도구들만 챙겨서 아파트로 들어갔다. 아파트 앞에 차를 대고 낑낑거리며 매트리스를 들어 옮기는데 라시드가 나타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