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되길 거부한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
https://www.elle.co.kr/article/1896676
엘르 매거진에서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의 저자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 후 한동안 멍해서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습니다. 심장박동수는 빨라지고 이것이 꿈을 꾸는 것은 아닌지 긴가민가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 듯, 엘르는 여러 나라에 국가별로 에디션을 제공하는 세계적인 패션, 라이프 매거진입니다.
엘르 매거진에서는 프로필 사진이 있는지 물었고, 저는 일단 조금만 시간을 달라 하고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돌렸습니다.
"엘르 매거진에서 인터뷰가 들어왔어. 그런데 프로필 사진이 없다, 얘들아. 일생일대의 기회야, 날 도와줄 사람? 이라고요.'
제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밤에 일하는 베짱이를 대신해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오고 밥까지 해 먹이며 베짱이가 집에 올 때까지 가족 모두가 돌아가며 차례대로 아이들을 봐준 친구가 답했습니다.
"내일 우리 집으로 와! 사진 찍어줄게. 남편이 집에 있거든!"
이 친구에게는 진 빚이 정말로 많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동안 벨기에에는 폭설경보가 내려졌었습니다. 그야말로 눈보라가 오고 눈폭풍이 왔었는데 친구는 운전면허가 없습니다. 친구 집에서 2호의 학교까지는 대략 2.5킬로가량 떨어져 있는데 썰매를 가지고 걸어가서 2호를 데려왔습니다. 제가 어떠한 말을 해도 감사함이 다 표현되지 않는 친구입니다.
이 친구의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벨기에 국영방송국의 메인 카메라맨입니다. 그런데 마치 하늘의 뜻인 것처럼 방송국에 다시 가져다 놨어야 하는 조명과 모든 장비가 친구집에 딱 있었습니다. 친구집에 들어가니 친구가 김장조끼를 입고 덧버선을 신고 나옵니다. 제가 고마움의 표시로 김장조끼와 덧버선을 선물했거든요.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뿌듯했습니다.
친구남편의 취미는 사진촬영이지만 그 집 식구들 그 누구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물 만난 고기가 되었습니다.
벨기에의 총리, 정치인, 유명연예인들을 가까이서 촬영하는 프로그램의 메인 카메라 감독답게 프로페셔널 그 잡채인데, 제가 프로페셔널하지 못합니다.
"오른쪽을 봐, 아니 3센티 더 밑을 봐, 자 내가 제일 잘 나간다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봐,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카메라를 봐, 웃어, 자 다시 창밖을 내다봐. 시선은 먼 곳으로."
시선이 먼 곳이 아니라 제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었습니다. 억지웃음을 지으려니 볼에서는 경련이 일어나고 파르르 떨리는데 눈빛은 자꾸 갈 곳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열정적인 친구남편 덕분에 두 시간 동안 옷도 세 번이나 갈아입고 사진은 대략 1000장 가까이 찍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르고 걸러 40장으로 추려냈습니다. 그 40장을 엘르에 다 보내고 선택된 한 장! 바로 이 사진입니다.
엘르 매거진을 통해 제가 조금 더 곁들이고 싶었던 책에 대한 설명을 드릴 수 있었고, 제가 꾸고 있는 꿈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정말로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벨기에에서도 저를 챙겨주고 사랑해 주는 친구들이 있어 너무 감사하고 마음이 따듯함으로 채워졌습니다.
인터뷰에서 언급된 것처럼 저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어린이 동화책 출간을 위한 투고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될 때까지 해 봐야 노빠꾸 상여자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진척돼 가는 모습을 글로 적어 내려 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기사는 엘르 3월호의 종이잡지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가 다시 한번 본 기사를 통해 보다 많은 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