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임직원 퀴즈를 한 적이 있었다. 모든 부서에서 함께 참여를 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모르는 사람이었고, 즉석에서 팀을 구성해야 했다.
해외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고, 사람상대하는 직업으로 근 15년을 먹고살았으니 눈치가 빠르다. 최근 출간된 책에도 썼듯, 나의 레이더 성능은 엄청나다. 척하면 딱이다. 다만 내가 말을 안 하고 가만히 관찰을 하고 있을 뿐. 동양인 말단 공무원인 나와 같은 팀이 되기를 꺼리는 분위기는 자명했다. 해외생활 짬밥이 얼만데 그걸 내가 모를 것 같은가.
결국 아무 데나 깍두기처럼 껴서 어느 팀에 들어갔는데 문제가 나오면 나는 제쳐두고 자기들끼리만 쑥덕쑥덕 댔다. 어차피 답을 모를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들이 나에게 거는 기대도 없으니 입을 다물고 있겠다 생각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어느 문제가 나왔다.
소크라테스를 포함한 지식인들이 모여 사랑과 에로스에 대해 나눈 대화를 담은 작품의 이름은?
아무도 답을 몰랐다. 답을 알고 있던 나는 미소를 지었다. 말해주기 싫었지만 그래도 한 팀이니 알려 주었다. 플라톤의 향연 (Plato's Symposium)이었다. 내가 답을 말했을 때 불신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그 답을 적었고 정답은 내가 말한 대로 플라톤의 향연이었다.
처음 나랑 같은 팀이 안 되고 싶어 하던 그 표정과 답을 맞힌 뒤의 표정변화를 지켜보는 기분은 재미있었지만 씁쓸했다. 본인들을 스스로 수준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예의를 차리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동양인이 이걸 알아?"라는 기저의 무의식이 슬쩍 흘러나온 것이자, 많은 서구인들의 서구 중심적 사고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서구중심사고를 예로 들었지만 멀리서 찾을 것 없이 편견과 누군가를 은연중에 무시하는 태도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존재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할 때,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우리가 그 사람을 완벽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섣부른 일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나를 규정짓는 몇 가지 사실을 생각해 봤다.
해외거주자
도서관사서
최근에 출간함
5000명이 아닌 구독자 500명 내외의 브런치작가
글을 웃기게 씀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내가 무슨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경제적인 능력은 어떻게 되는지, 부모의 직업은 어떤 것이고 얼마만큼의 영향력이 있는지 기타 등등의 정보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쓰지 않는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중요할 수는 있다)
-나는 해외거주자다. 그것도 한국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 거주하는.
-그곳에 직업이 있다. 문헌정보학을 공부했다. 그래서 사서가 되었다.
-최근에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를 출간하였다.
-나도 시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브런치만 잡고 살 수 없어서 브런치 대외활동에 제한이 있다. (구독자 500여 명, 그것도 나에게는 차고 넘친다. 구독자들 모두 너무 감사하다.) 성격이 둥근 듯 보여도 원칙주의자라 읽은 글에만 라이킷을 누른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글을 쓸 때는 웃기고 재미있는 글을 쓴다. 문장이 길지도 않으며 쉽게 읽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거기에 개인적인 취향까지 더해 깨알 같은 유머를 넣으려고도 노력한다.
위에 열거된 정보는 누군가가 이러하다는 판단을 내리기에는 굉장히 제한적이다. 물론 출간된 책에 드러난 정보도 꽤 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아는 사람은 없다. 부모님도 모른다. 남편도, 아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나 자신도 나를 다 알지 못한다. 즉,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https://youtu.be/sLmh3tvPXrg?si=31w8fQAysLJI9rvO
어느 노래 가사의 한 마디,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가 타인을 대하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를 안 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착각이다. 우리는 순간을 경험했을 뿐이다. 내가 플라톤의 향연을 몰랐던들 그들은 내가 어떠한 순간들을 살아왔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내가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경험한 그 잠시의 순간뿐이니 내가 경험하지 않은 순간들을 내가 어찌 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