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돗자리 대여에 숨겨진 넛지
주말의 한강공원은 사람들이 넘쳐 난다. 서울 각지의 시민들이 돗자리를 들고 공원 한 켠에 앉아 불어오는
한강의 밤바람을 느끼며 준비해 왔던 음식을 함께 나누고, 수많은 배달부들이 공원 둔치에 앉아 휴식을 즐기는
어느 누군가의 주문을 마치기 위해 공원 한 켠에서 휴대폰을 부여잡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비단 한강공원뿐만 아니라, 이 사례들은 소풍에 제격인 장소에서 벌어질 법한 흔한 일이다. 그런데, 한껏 차려
입고 나간 소풍길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들, 혹은 친구들, 그리고 나 자신을 누군가가 즈려밟은 잔디에
그대로 눌러앉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돗자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 아닌가! 그래서 공원의
입구에는 돗자리 장수들이 돗자리 몇십 개를 펴 놓고 '돗자리 1개 4,000원 / 대여 2,000원' 이라는 현수막을
걸어 놓곤 했다. 그야말로 입구는 돗자리 장사를 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사려는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복잡했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드는 것은, 돗자리를 '팔러' 나온 사람들이 돗자리를 팔지 않고 '대여' 를 해 준다는 것이다.
즉, 돗자리를 팔아야 다음 돗자리를 사는 사람들이 돗자리를 빌려 주고 다시 돌려받는 시스템을 선택했다는 것.
왜 그들은 돗자리를 '대여' 해 주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일까? 어쩌면 돗자리를 미리 구매하거나, 돗자리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의자 한 켠에 걸터앉는다면 굳이 우리가 돗자리에 돈을 쓸 이유는 없다. 하지만 '대여' 시스템은
우리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소비하게 만든다. 오늘은 대여 시스템이 어떻게 우리의 소비를 자연스럽게
유발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대여 시스템이 우리에게 어떤 넛지를 통해 소비를 유발하는 것을 분석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언제 소유하고, 소유하고 싶지 않은가?' 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다.
우리는 물건을 내 것으로 만들어 활용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물건을 소비한다. 예를 들면
내가 만약에 밤을 새는 일을 자주 하는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면, 나는 잠이 오지 않아야 하는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고, 만약 그 무엇인가가 내게 나타난다면 나는 '새벽잠을 자지 않기 위해' 물건을 고용한다.
즉, 우리가 물건을 소비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우리가 필요한 목적이 있을 때에만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집안을 조금 더 깨끗하게 하고 싶다면 청소기나 먼지털이개 등을 구매하고,
배가 고프다면 한식, 중식, 양식의 메뉴 중 하나를 시켜서 돈을 내는 것 등이 해당한다.
그런데, 활용가치가 있다고 해서 물건을 반드시 소비해서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사람들은
소비를 망설이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 소비를 망설이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앞서 소비를 하는 필수적인 조건이 '활용가치의 빈도' 라는 것을 언급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다. 우리가 만약 공구 세트를 사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A : 1달에 30번 정도 씀, 가격 150,000원
B : 1달에 1번 정도 씀, 가격 100,000원
두 옵션의 차이는 사용 빈도와 가격이다. 우리는 둘 중 어느 옵션을 선택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부분 A를 선택한다. 결과적으로 A와 B 중 어떤 것을 쓰던지간에 결과적으로 공사를 하거나 인테리어를
할 때 도움을 받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우리가 A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A라는 옵션이
사용 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가격이라는 요소는 사용빈도보다 그 중요성이 떨어진단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두 옵션을 봤을 때 이런 식으로 계산을 했을 것이다.
A : 하루 이용 가격 : 150000/30 = 5,000원
B : 하루 이용 가격 : 100000/1 = 100,000원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이용 빈도에 따라 두 옵션을 비교한 뒤, 상대적으로 이용 가격이 더 낮은 옵션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A와 B의 효율조차 고려하지 않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결과를 통해 소비자들이
소비를 망설이는 순간을 알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소비자들은 사용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것들을
소비하는 것을 꺼려한다. 얼마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물건을 소유할 때 사용빈도를 높은 가치를 두고 따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사용빈도가
높을수록 소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든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빨리 소모된다)
사용빈도가 소비에 있어 걸림돌이 되는 기업들에게 있어, 그들은 빈도를 따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돌릴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소비할 수 있을까?
그들은 고민 끝에 소비의 프레임을 '소유' 에서 '공유', '경험' 으로 바꾸게 된다. 즉, 살 사람은 그대로 사고
기존에 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들까지 우리들이 안고 가겠다는 강력한 메세지이다.이 프레임이
현재 대부분의 곳에서 통용되고 있는 '대여'서비스 의 본질이다.
대여란 무엇인가를 나중에 도로 돌려받기로 하고 얼마 동안 내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과거 소비 = 소유 였던 시대와 달리 소비의 개념이 점점 포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소비란 돈을 주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소유하는 것을 의미했는데, 현대에 들어와 소비의 개념이
소유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까지 포함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대여 서비스가 활성화된 이유이다. 대여 서비스는 과거부터 존재했는데, 왜 지금
'공유경제' 라는 프레임을 달고 나타나 과거보다 훨씬 활성화되었을까? 이는 앞서 이야기했던 선택의
기준과 관련이 있다. 공유경제, 즉 대여 서비스는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대여를 권유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이미 '소유' 한 사람에게 대여서비스는 의미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책을 한 권 샀는데
또다른 책을 사서 보고 싶겠는가? 그렇지 않다. 책을 구매하고 대여하는 사람은 없다. 굳이 집에 있는데
또 돈을 들일 이유는 없지 않는가?
하지만, 책을 보고 싶지만(제품/서비스 이용하고 싶지만) 책을 잘 보지 않거나 보는 빈도가 적은 이들에게
대여 서비스는 꽤 가치가 있는 일이다.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소유를 통해 물건을 구매하는 것과
대여를 통해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빈도가 적어 구매를 망설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계산한 구매빈도에 따른 가치(B옵션의 100,000원)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을 보고
당연히 똑같은 것을 사용하겠지만 비용이 덜 드는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즉, 대여서비스는 단지
소비의 개념을 영구적인 것에서 일시적인 것으로 바꿔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줄이지
않고도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업의 넛지 전략이다. 즉 소비자들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자체에는 변화를 주지 않았지만 대여서비스가 훨씬 합리적이고 똑똑한 소비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여
사람들이 지갑을 열게 하는 넛지 전략인 것이다.
그렇다면 돗자리 판매자에게 있어 돗자리를 사는 것이 이익일까, 돗자리를 파는 것이 이익일까?
다음 예시를 통해 돗자리 판매와 구매의 경우 이익을 간단하게 계산해 보자.
돗자리는 한 개에 4,000원이고, 대여 시에는 4,000원의 반값인 2,000원이다.
만일 돗자리 하나를 16번 이용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돗자리 장수가 가지고 있는 돗자리가 10개일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다음과 같다.
A : 4,000원 * 10개 = 40,000원
B : 2,000원 * 16번 * 10개 = 320,000원
결과적으로 대여 전략을 구사했을 뿐인데 돗자리 장수가 돗자리 10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B가 압도적으로 높다. 돗자리를 2번 사용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돗자리 1개를 소비하는 이익과 똑같다.
즉, 대여 전략은 소비자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면서 동시에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전략인 것이다. 돗자리 장수가 돗자리를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여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불을 덮는 것처럼 돗자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돗자리는 대개 야외활동을 할 때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이다. 즉, 사용 빈도가 높지 않은 제품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돗자리를
구매하는 것만 한다면 소비자들은 돗자리를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한 번 쓰고 말 돗자리를
왜 4,000원을 주고 사지? 라는 생각을 하며 구매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돗자리 구매 옵션의
아래쪽에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돗자리 대여 옵션이 있다. 돗자리 대여를 하면 무려 50%를 아끼고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여를 선택한다.
하지만 사실 돗자리를 구매하게 되면 남은 사용 횟수는 무려 15번이다.(앞서 옵션을 참조하라)
결과적으로 돗자리를 구매하는 것이 소비자들에게는 이득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회를 제대로
걷어차 버렸다. 만일 대여 옵션을 선택하고, 추후 언젠가 다른 곳에서도 돗자리를 대여한다고 가정할 때
만일 장소가 똑같이 대여료로 2,000원을 받는다면 당신은 30,000원을 추가적으로 내야 할 것이다.
구매를 하면 4,000원만 내는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비를 할 때 불확실한 미래까지 고민하지
않는다. 언제 놀러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돗자리를 선뜻 구매할 것인가? 결국 불확실한 미래가
변수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확실한 상황만을 고려하여 돗자리를 대여하는 선택을 통해 결과적으로
더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돗자리뿐만 아니라 다른 제품과
서비스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제품/서비스 대여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것은 '언제 쓸지 모를'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왜냐 하면 이러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사람들의 지갑을 열기 딱 좋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빌리는 돗자리에도 사실 이런 넛지들이 숨어 있었다.
소유와 공유, 당신은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당신의 상황에 따라 사실 해답은 다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이 이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상황이라면 불확실한 상황을 고려해야
더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