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레드불의 '가격' 에 숨겨진 넛지
밤을 새야 하는 날이다. 우리는 늘 그렇듯 주어진 과제를 꼭 하루 전에야 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과제는 레포트 작성, 혹은 수행평가 제출. 컴퓨터를 켜고 ppt를 켜자, 바람이라도 쐴 겸 편의점으로
향하는 발길. 편의점의 냉장고를 열어 보니, 핫식스와 레드불이 나란히 놓여 있다. 가격 차이가 꽤 심하다.
나는 비싼 게 더 효과가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핫식스를 뒤로 하고 레드불 한 병을 꺼내들고 계산대에 가서
2,900원을 계산하고 나온다. 왠지 이 음료수를 먹으면 오늘 밤은 힘이 불끈불끈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우리가 밤을 새거나 중요한 일이 있어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 우리는 에너지음료 등을 마시며 몰려오는 잠을
막기 위해 지극히 애쓰곤 한다. 그런데 우리가 늘 편의점에서 에너지음료를 고르며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왜 핫식스는 1,000원인데 레드불은 2,900원일까? 레드불을 고르면 핫식스를 고르는 것보다 약 2.9배의
각성 효과를 맺기 때문에 2,900원이라는 가격을 책정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넛지는 은근한 행동을 통해
사람을 쿡쿡 찌를 수도 있지만, 가격을 통해서도 넛지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비단 화장실의 소변기에
파리를 붙여 놓는 등의 행동 유발 넛지만이 넛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은 핫식스의 '가격' 에 숨겨진
넛지 전략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가 물건을 고를 때 고려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보자. 우리가 만약 물 한 통을 사러 마트에 간다고 가정해 보자. 그 때 냉장고 앞에는 A,B,C의
세 가지 종류의 물이 들어 있는데, 물의 성분은 다음과 같다.
A : 칼슘 3mg/L, 나트륨 5mg/L, 마그네슘 2.0mg/L, 원산지 제주
B : 칼슘 54mg/L, 나트륨 5mg/L, 마그네슘 30mg/L, 원산지 프랑스
C : 칼슘 2mg/L, 나트륨 7mg/L, 마그네슘 3mg/L, 원산지 서울
물을 구매할 때 여러분은 물의 성분을 하나하나 검토하면서 불순물과 순수입자의 함량에 따라 물을
결정하는가? 그렇지 않다. 즉, 제품의 구성 자체를 사람들이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보는 것은 '브랜드' 이다. 참고로 A는 제주 삼다수, B는 에비앙(Evian), C는 일반 수돗물이다.
각 물이 강조하는 브랜드 이미지는 모두 다르며, 어느 브랜드는 쉽게 마실 수 있는 물을 내세우는 한편
어느 물은 건강한 물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한다. 소비자들은 브랜드가 강조하는 브랜드의 메세지를
참조하여 물을 구매한다. 만일 한 소비자가 건강을 중시한다면 그는 에비앙을 구매할 것이며,
그냥 깨끗한 물을 선호한다면 그 사람들은 제주 삼다수를 구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고급스러울 경우, 평범한 브랜드보다 더 품질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희소성 때문인데, 희소성이란 특정 재화나 서비스 시장이 초과수요를 띄고
있을 때 생기는 재화와 서비스의 특성이다. 즉, 수요가 공급보다 더 많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은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브랜드의 희소성은 브랜드가 창출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만일 제품이나 서비스의 희소성이 높다면 높은 가격이 매겨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적정한 가격 혹은 싼 가격이 매겨질 것이다.
하지만 브랜드가 좋은 품질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 라는 과정을 통해
밝혀지게 되었다. 블라인드 테스트란 제품의 브랜드나 제품을 구성하는 외부 요소(병이나 진열되어 있는
공간 등)을 제거하고 순수히 맛과 성분을 분석하는 실험이다. 커피를 예시로 한 영상을 보도록 하자.
실제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하면, 브랜드 가치가 높은 제품보다 그렇지 않은 제품이 더 맛있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블라인드 테스트는 앞서 물의 예시와 비교했을 때 '성분을 비교하며'
제품을 소비하는 경우이다. 우리가 맛만 보고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실제로 거의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다. 결국 우리는 '성분'과 '맛' 보다 제품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가치를 구매한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생필품이든 기호식품이든 간에 우리는 브랜드를 접하고 브랜드가 가진
고유한 가치를 소비하며 브랜드를 통해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타우린이란, 소의 쓸개즙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물질이며,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사람과 포유동물의
인체 내에서 심장, 뇌, 간 등에 다량 함유되어 있고, 결정적으로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물질이다.
타우린의 함량이 높을수록 피로가 회복될 확률은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음료의 타우린 함량
차이는 어떻게 될까?
실제로 핫식스와 타우린의 성분을 비교해 보면, 타우린의 함량 차이는 2.5mg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2.5mg의 차이를 가지고 2.9배의 가격을 매긴 것이다. 당신은 이 결과를 듣고 레드불을 구매한 것을
후회하거나, 핫식스를 산 것을 다행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에너지음료를 구매할 때 '성분을 먼저 보고 사나요?' 라고 물어본다면 당신은 '아니요' 라고 대답을 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즉,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는 것처럼 두 제품을
면밀하게 비교하면서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브랜드를 구매한다. 에너지 음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피로회복을 한다는 명분 하에 핫식스라는 브랜드를 구매하거나, 레드불이라는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레드불의 가격이 2,900원. 핫식스의 2.9배나 하는 이유는 뭘까?
보통 사람들은 레드불을 먹었을 때, 효과가 더 좋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그 이유는 레드불의 타우린 함량
때문이 아니라, 레드불이 더 비싸니까 효과가 좋다고 믿는 사람들 때문이다. 즉, 레드불은 음료의 가격을
다른 에너지음료에 비해 매우 높임으로써, 간접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더 큰 피로회복 효과를 불러 올
것이라고 메세지를 전달하며 은근하게 사람들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레드불의 효과가 더 좋다고 이야기한 것은 자신이 '비싼 브랜드를 구매했으니 더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에 따라 실제로 더 많은 집중력을 발휘하거나 더 오랫동안
잠들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한 실험에서는 에너지 드링크의 가격에 따라 집중도의 차이가 드러난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저렴한 에너지음료를 제공한 집단보다 비싼 에너지음료를 제공한 집단의 집중도가 훨씬 높았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실제로 두 에너지 음료의 함량과 그 효과가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가격이 비싸면 그만큼
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기대, 예측을 하고 실제로 그 일이 일어도록 자기 자신이 만들어내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경험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레드불을 마시면 더 집중이 잘 되고 잠도 잘 안 오네'
라는 결론을 세우며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선택의 여지 없이 레드불을 선택하게 된다.
실제로는 레드불을 마시고 우리가 그렇게 행동을 한 것이다. 즉, 핫식스를 먹든 다른 음료를 먹던간에
똑같이 집중을 열심히 하고 피로가 오지 않는다면 굳이 레드불이라는 비싼 것을 구매할 필요는 없으니.
레드불이 가격을 높임으로써 노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소비자들이 레드불을 통해 원하던
효과를 얻음으로써, 효과의 원인이 비싼 가격이라고 생각하게 하며 추후에도 레드불을 사도록 하는
레드불의 열렬한 팬이 되기를 원한 것이다. 즉, 그들은 가격을 높임으로써 레드불의 가치를 높이고,
그와 동시에 강요 하나 없이 사람들이 레드불을 통해 피로회복을 경험하게 하여(실제로는 레드불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그렇게 노력했기 때문이다) 고정적인 구매자를 더 얻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에너지드링크를 잘 먹지는 않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비싼 가격' 에는
사실 가격뿐만 아니라 그 물건을 사는 사람들의 바람과 예측, 기대가 들어가 있다.
지나가는 가격에 호기심을 가진다면, 사실 이처럼 새롭게 알 수 있는 사실들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