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점심 특선메뉴에 숨겨진 넛지 전략
'실속있게 즐겨 보세요.'
직장인의 점심 시간은 말 그대로 점심(點心), 마음에 잠시 쉼표를 찍는 시간이다. 오후 12시만 되면, 수많은
직장인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하이에나처럼 식당을 찾으러 다닌다. 그리고 그들 속, 우리가 있다.
문득 고깃집 앞, 점심특선 메뉴로 김치찌개를 판매하고 있다는 간판을 본다. 오늘 점심은 간단하게 정했다.
왠지 모르게 가격도 싸 보이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쩌면 점심특선 메뉴는 당신이 지갑을 손 쉽게
열게 하기 위한 식당의 넛지 전략일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점심 특선, 이 속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지금부터 탐구해 보도록 하자!
직장인들은 보통 점심에 고기를 구워 먹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아닌 '냄새' 때문이다.
그들이 단체로 오후 연차를 쓰지 않는 한, 오후에 음식 냄새를 달고 일한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나, 혹은
나 자신에게나 신경이 쓰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후에 냄새가 나는 음식을 대체로 기피하는경향이 있다.
또한, 고기를 구워 먹는 것, 혹은 고기가 아니더라도 몇 만원짜리 음식을 먹는 것은 점심값으로는 꽤
부담스러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점심에 우리가 몇 만원짜리 회전초밥을 매일 먹지는 않는다. 당연히
경제적 상황상 다른 곳에 돈을 써야 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특히나 돈을 아끼겠다고 다짐한 이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더욱 인색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으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수 있다. 보통 직장인들의 점심 시간은 1시간 정도다.
만약 고기를 구워 먹는다면, 예약을 하지 않는 이상 소요시간은 1시간이 넘을 가능성이 높아지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람들은 굳이 고기를 먹겠다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결국, 대부분 저녁에 성업하는 가게들이 점심에 문을 열지 않는 이유는 냄새가 날 수 있으며, 가격이 꽤
부담스러우며, 그리고 시간상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고깃집이나 일식집 등, 기본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 있는 식당의 고민은 바로 그것이었다. 높은 기본 가격,
부담스러운 시간 등으로 인해 점심에는 문을 열어도 장사가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점심에도 문을 열어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한다.
바로 '점심에만 파는 음식'을 내놓자는 것.
점심 시간, 우리가 파는 주 메뉴가 아닌 사람들이 금방 먹고 갈 수 있는 메뉴를 선정한다면 분명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며,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간판에
점심특선을 제공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다른 경쟁 식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행동을 유발하도록 돕는 기제는 역시 넛지였다. 지금부터는
점심 특선메뉴 속에 숨겨진 몇 가지 심리학적 넛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부터, 식당에 갔을 때 점심특선이 위치해 있는 차림표와 메뉴판을 잘 보도록 하자. 점심 특선은 거의
99% 정도는 차림표의 맨 오른쪽에 있거나, 메뉴판의 맨 아래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바로 당신이
메뉴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차림표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왼쪽에서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시선을 옮기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오른쪽을 왼쪽보다
더 나중에 보고, 아래쪽을 위쪽보다 더 나중에 본다. 그렇다면 점심 특선 메뉴의 위치를 사람들이 가장
마지막에 본다는 소리인데, 이러한 배치의 가장 큰 이유는 '상대적 저렴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A : 4000 4000 4000
B : 10000 10000 5000
다음은 두 식당의 차림판에 써져 있는 메뉴의 가격이다. 이 상황에서 A의 4,000보다 B의 5,000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B에서 제시한 10,000이라는 숫자가 5,000보다 더
큰 숫자이며, 10,000이 5,000보다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5,000원이 저렴해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는
A가 더 낮은 가격에 형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점심 특선을 제공하고 있는 식당들은 대부분
B를 선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B를 선택한 경우는 대개 고깃집이나 일식집 등 기본가격이 높은 식당에
자주 나타나는데, 이는 점심 특선의 가격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보이도록 하여 사람들이 가격을 비싸다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설정해 놓은 넛지 전략이다.
또한 점심특선 세트도 앞서 이야기한 상대적 저렴함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점심특선 세트는 기본 가격이
높은 음식, 예를 들면 삼겹살, 보쌈, 족발, 스테이크 등에 적용되는데, 그 이유는 방금 제시한 저 음식의
기본 가격과 특선의 가격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도록 함으로써 '싼 가격에 비싼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예를 들어, W사의 보쌈 가격은 대략적으로 30,000원에서 50,000원 사이다. 다시 말해 점심으로
먹기에는 꽤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하지만 점심특선 세트 메뉴는 6,500원이다. 물론 6,500원이 아닌 4,000원에서 5,000원짜리 메뉴를
비교한다면 우리는 이 정식을 선택하는 데 고민할 수 있겠지만, 만약 당신이 기존 보쌈의 가격과 이
세트의 가격을 비교했을 때에는 역시 이 정식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결국 점심특선 세트메뉴 역시
사람들이 기존의 음식 가격과 특선의 음식 가격을 비교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세트를 구매하는
상황을 합리적인 소비라고 인식하도록 만들기 위한 넛지 전략이다.
또한 식당은 점심특선 메뉴와 더불어 커피 할인이라는 또다른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그들이 굳이 카페와
제휴를 맺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이 문구를 봤을 때 커피를 기억시키고, 커피를 구매해야 한다고
합리화시키는 선택설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점심을 먹기 전, 점심을 먹을 때에는 커피를 먹어야 한다는 계획은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당신의 기억 속에는 커피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계산을 할 때 이 문구를 본다면, 이런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
"어? 커피 할인하네. 어차피 커피 사 먹으려고 했던 거 같은데. 밥 먹고 커피나 한 잔 하자."
우리가 커피를 기억에 담아두지 않았지만 이 문구를 보고 우리는 커피의 이미지와 느낌을 기억하며,
굳이 기억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며 커피를 소비해야겠다고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물론 중요한 것은
커피를 사 먹지 않는 선택지도 존재한다. 하지만 할인이라는 매력적인 문구에 한 번 끌리고, 그리고
커피의 이미지를 기억함으로 인해 두 번 끌린다. 이 전략 역시 고객들에게 할인이라는 좋은 기억을
주는 마케팅 전략이며, 넛지 전략이 될 수 있다.
점심 특선 메뉴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사례조사를 거치면서 느꼈던 것은 점심 특선 메뉴야말로
상대성이라는 마법을 정확하게 잘 지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성이라는 마법을 부렸을 때 우리는 홀리게 된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사고하는 게 아닌
상대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서는, 상대성의 마법의 힘을 잘 알고 대처할
필요성이 느껴지곤 한다.
점심, 마음에 점을 찍는 시간. 하지만 점심만큼은 맛있고 즐겁게 먹으면서
오후 업무를 위해 자신을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인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