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레스토랑 메뉴판에 숨겨진 넛지
여자친구와 큰 맘 먹고 패밀리 레스토랑에 간다. 분위기 좋은 오크나무 식탁과 재즈음악이 한껏 나오는 곳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메뉴판에서 메뉴를 고르는 곳이었다. 우리는 네 장으로 된 메뉴판을 보면서
수많은 고심 끝에 안심스테이크 세트를 먹기로 결심한다. 그러다 맨 앞장과 그 다음 장에 나와 있는 가격표가
100,000원을 훌쩍 넘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여자친구가 내게 말한다.
'오빠. 이 비싼 걸 여기서 먹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전혀. 그걸 놓은 이유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나는 '부자들이 와서 먹지 않을까?' 라는
1차원적인 대답을 했다. 부자들은 막상 패밀리 레스토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분위기를 만끽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오늘은 패밀리 레스토랑의 메뉴판에 숨겨져 있는 넛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왜 메뉴판에는 비싼 메뉴가
맨 앞 장에 나와 있을까? 그것도 큰 맘 먹고 시킬 것 같은 메뉴를.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아오는 고객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큰 맘 먹고 외식을 하는 가족 단위,
식사 하나쯤은 정말 고풍스럽게 해 보고 싶은 연인들, 혹은 여자 사람들의 무리 등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고급 음식을 대중화시키기는 했지만 당연히 그것을 먹을 때 드는 비용이 높아
좋은 서비스, 혹은 음식의 품질이 좋지 않으면 바로 다른 대체재로 갈아탈 만한 용의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가격을 내릴 것인지, 혹은 그대로 두고 서비스의 품질을 낮출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스테이크의 가격을 9만원, 10만원에서 4만원에서 5만원, 심지어 2만원 초반대까지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그들은 우선 패밀리레스토랑에 맞게 제품의 질을 조정하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은 가격이 높다는 인식을 쉽사리 거두지 못했다.
고객들에게 제품의 질이 낮아져서 가격이 내려간 것이 그렇게 큰 영향을 불러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유입을 위해 우선 할인쿠폰을 발급하여 배포하기 시작했다. 가격부담이 낮아지면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할인쿠폰의 기한에 따라 사람들이 매장을 방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할인쿠폰 제도는 매우
치명적인 한계를 보여 줬다. 할인쿠폰을 받은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여전히 가격에 대해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또한 지속적인 할인쿠폰으로 인해 매장의 매출을 어느 정도 놓아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지속성이 부족한 모델이다 보니 보상을 주는 것이 그렇게 생각보다 큰
효과를 가져다 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다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매장에 직접 방문한 사람들에게, 할인쿠폰을 적용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신의 제품을
합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하게 할 것인가?
"그래. 비교를 하자."
좋은 전략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주문하는 메뉴보다 잘 주문하진 않지만 정말 고급진 메뉴를
앞에다 두고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앞의 메뉴가 저렴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할인쿠폰 제도를 적용하면 그 시너지 효과는 배가 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은 그것을 비교할 만한 제일 대표적인 도구를 찾았다. 만약 가격을 비교하는 포스터를 걸면
한쪽의 주문량이 당연히 떨어질 것이고, 아주 자연스럽지 않게 주문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들은 그러다 매장에서 기가 막히게 비교를 할 수 있는 도구를 찾았다. 그것은 포스터가 아닌
'메뉴판' 이었다.
만일 그대가 레스토랑에 갈 일이 생긴다면, 무조건 메뉴의 뒤부터 봐라. 이 메뉴판에는 '상대적 비교' 라는
합리적인 것으로 가장한 넛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개 메뉴판의 앞장에는 정말 비싼 음식이 있다. 그리고 뒷장을 넘긴다. 앞장보다 싼 메뉴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실제로 주문하는 메뉴에 대해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맨 앞 장의 메뉴가 매우 높은 가격이기 때문에
뒤의 메뉴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것 아는가? 매장은 당신이 15만원이 넘는 스테이크를 시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비싸구나, 이런 메뉴도 있구나 하면서 메뉴판의 다음 장을 넘길 것이라고 이미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4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보자. 순간적으로 앞에 보았던 메뉴와 비교되면서 상대적으로 싸게 느껴진다.
어떤 느낌인지 알겠는가?
또한 앞장에 비싼 메뉴를 놓아 버리는 것은 음식의 질이 전체적으로 높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돈이라는 것은
일종의 자기과시적 성격이 강한데, 4만원짜리 음식을 주문하지만 자신은 15만원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음식의 질보다는 고객이 왔을 때 식당 내에서의 만족감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성비' 를 얻었다는 생각을 할 때 전체적인 만족도는 매우 상승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메뉴판의 앞장은 사람들이 가격에 대해 둔감하게 하고,
고객의 만족도를 높여 주는 최상의 결과를 가져 온 넛지다.
우리는 은연중에 우리가 했던 행동을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행동이 좋은 것과 비교될 때, 똑같은 행동이지만 만족감을 느낀다.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매우 비합리적인 이유를 우리는
메뉴판 하나에 느껴 보는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