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홈페이지의 투데이 숫자에 숨겨진 넛지.
회사의 홈페이지나 플랫폼 사이트에 들어가면 늘 볼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투데이'.
투데이는 오늘 자신의 사이트를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방문한 사람들의 숫자를 기록하는 장치다.
이 장치를 통해 홈페이지의 운영자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방문했던 추이를 확인하면서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홈페이지를 보면서 대략적인 '유명도'를 측정할 수 있다. 일례로
투데이 수가 1000명인 것과 투데이 수가 1000000명인 사람을 보면 우리는 홈페이지의 활성도가
전자보다 후자가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투데이 숫자를 굳이 설정한 이유를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단지 우리 페이지가 흥하고 있으니
그것만 알아두고 있으라고? 우리 플랫폼은 다른 회사랑 다르다고? 그런 단순한 목적이 아니다.
투데이 숫자를 설정한 이유는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홈페이지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는
넛지 전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투데이 숫자로 인해 자연스럽게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투데이 숫자, 이 숫자 몇 개가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유발시키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중국집에서 주문을 하는데 21명이 짜장면을 주문하면 그대는 용기 있게 먹고 싶었던
'유산슬덮밥' 을 이야기할 자신이 있는가? 아마 그대도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따를 것이다. 확고한 자신의
신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동조란 이처럼 집단의 압력이 실제로 혹은 상상의 차원에서 발생함으로 인해 자의적으로 나타나는 행동 또는 태도의 변화이다. 우리는 사회적인 압박으로 인해 사회가 굳이 강제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사회가 하는 행동, 즉 우리는 다수의 의견이 지배적일 때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사회적 동조가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강압적이고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그것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데에 있다.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자신의 선택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합리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만족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강요를 했다면 선택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며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로 가는 경우가
생기겠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기업의 홈페이지, 특히 랜딩페이지(시연용 페이지) 가 아니라 홈페이지 내에서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게
만들어야 하는 기업들의 입장에서 그저 왔다 나가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은 두 가지 원인이었다.
하나는 잘못 들어왔거나, 혹은 우리의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거나, 혹은 이용할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것.
그들은 고객을 위해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 선택이 실제로 고객에게 체감되는지는
진심으로 의문이었다. 사람들이 고객을 위해 서비스 품질을 높인 기업의 행동을 알고 두고두고 찬양할까?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할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사람들이 홈페이지에 체류하게 할 요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홈페이지에 체류하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를 접하고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 마케팅 담당자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앞서 말했던 '사회적 동조' 현상에 주목하였고, 이 현상에 빗대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바로 홈페이지의 메인에 서비스를 마구 걸어 놓는 것이 아니라, 방문자 수를 메인으로 걸어 버린 것.
그들은 왜 서비스 대신 투데이라는 위젯에 그토록 집중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것은 어떤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을까?
이 방문자 수가 메인에 걸려 있다고 가정하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많은 사람들이 왔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다.
다시, 이 방문자 수 뒤에 '2,000,001명이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셨습니다' 라는 말이 붙는다.
다시 물어보자. 여러분은 여기를 들어오겠는가, 아니면 홈페이지를 닫을 것인가?
2백만 명이 이용한 페이지라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본인도 모르게 페이지에
접속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는 사회적 동조를 기반으로 한 넛지를 통해
여러분이 이 페이지에 들어오도록 유도했다. 그 유도의 기제는 좋은 서비스도 아닌, 빠른 배송도 아닌
바로 투데이 숫자였다.
사람들은 투데이 숫자를 봤을 때, 여러분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다른 사람이 본 이유가 있을 거야.'
'저 사람도 봤는데 나도 못 볼 이유 있어?' 라는 반응을 보이며 홈페이지로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모든 서비스에 대해 '2,000,000' 을 덧붙인다. 모든 서비스를 보며 '2백만이 사용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서비스의 전반적인 면에 만족한다. 그 서비스가 다른 서비스와
비슷하더라도 말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모방하려고 하는 사회적 동조가 적용되어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그대로 나가지 않고 홈페이지에 접속해 실질적으로 서비스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투데이 숫자를 보고 '홈페이지를 나가자' 라는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동조로
2백만명의 선택을 따르게 된다. 자연스럽게 '홈페이지 나가기' 라는 선택지는 잊혀진다.
우리는 사회적 동조를 통해 굳이 들어와야 하지 않아도 될 사이트에 들어와 사이트의 서비스를 들여보는
행동을 범했다. 이것은 홈페이지의 투데이가 동조를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홈페이지에 실질적으로
접속하도록 하는 넛지 전략에 해당된다. 이 전략은 흔히 플랫폼, 쇼핑몰 등 사람들이 많이 접속해야 하는
홈페이지에 자주 등장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선택의 권리를 뺏겨 버린 것일지도 모를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교묘하고도 기발한 넛지이다.
또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사회적 동조를 할 수도 있지만
그에 동조하지 않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 선택지는 우리의 좁은 시야로 인해 어쩌면 지금도 땅 속에서
자신을 선택해 줄 것을 기다릴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