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기획출판,1인출판:: 출판하는 방법 - 프롤로그
* 독립출판, 기획출판, 1인 출판을 경험해 본 각 3명의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출판하는 방법"이란 주제로 공동 매거진으로 발행하기로 하였습니다. 해당 내용은 출판사 "내로라"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 제가 진행하고 있는 "저녁작가 프로젝트" 와는 다른 독립 프로젝트 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계속 한 집에서 자랄 수 있다는 건 조금 특별한 경험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머물게 되면 주위 모든 것들이 추억이 깃듭니다. 유치원 다닐 때였나? 키 낮은 수납장 손잡이에 발 크기를 재보던 기억이 납니다. 내 발 크기보다 조금 컸던 그 오래되고 거무티티하게 변해 버린 나무 수납장은 여전히 거실 한쪽에서 말없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발 크기를 재보니, 손잡이 크기가 정말 작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1988년 은행 개업 기념이라고 찍혀 있는 거울은 깨지지도 않고 매달려 있습니다. 오래된 집에 살면 추억이 담겨 있는 작은 물건 하나 버리는 게 아까워지는 때가 옵니다. 그렇게 들어온 것들은 내보내지 않으면서 결국 산더미 같이 많은 물건들이 한쪽 방을 매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 살아온 집을 이사하게 되면서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몇십 년 동안 구석진 곳에 박혀서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컵들이며, mp3, 장난감까지 신기한 물건들이 모두 다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대야의 뚜껑을 꺼내보니 제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쓰던 교과서부터 줄넘기, 배드민턴 채 그리고 일기장까지 나를 추억하는 물건들이 제 키만큼 가득히 쌓여 있었습니다. 20년 이상 버텨온 것들은 녹이 슬고, 곰팡이가 피고, 책은 누렇게 탈색이 되어서 도저히 형태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잠깐의 추억을 회상하고 낡고 쓰지 못할 물건들은 결국 종량제 봉투에 담겨 그렇게 쓰레기통에 버려졌습니다.
부모님은 혹시 모를 나의 기억들을 위해, 물건을 모두 쌓아두었다고 했습니다. 물건은 누군가의 추억을 담는 힌트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굳이 추억하지 않아도 지금 저는 옆에 있습니다. 쓰다 버린 장난감 속에서 제가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으니깐요. 추억을 되살리게 해 주었지만, 이런 물건들 때문에 방하나를 쓰지 못하고 방치했던 건 오히려 더 좋은 기억 들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건 아니었을지..
이 사건을 통해 무언가를 남기는 방법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글을 남긴다는 건 영원히 사라지질 않을 그 시간을 글자로 묶어 두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간을 더 잘 담을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손위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사진과 영상으로 가장 확실하게 추억을 잡아둘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잡힌 시간들을 되돌려보면 네모난 상자 안에 갇혀버린 오래된 물건들이 생각나는 건 저뿐일까요?
글을 남기는 방법은 조금 다릅니다. 그때 당시에 명확한 모습과 음성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나의 생각을 남길 수 있다는 것, 그 순간 난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많습니다. 요즘은 책을 내는 재미에 빠져서, 원고 집필을 하는 이유가 있겠고, 브런치를 통해 구독자 분들과 소통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나를 혹은 가족과 친구를 위해 그 시절 나를 정말로 기억하고 회고할 수 있는 건 생각이 담긴 "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화보다 독서가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쓴 글들을 독자가 되어 다시 읽어보는 그 순간은 그 시절 나의 시간을 다시 훔칠 올 수 있는 아름다운 방법입니다. 책을 출간하는 건 이 훔쳐진 시간들이 모여서 또 하나의 나를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억들을 추억하고 음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생각에 깊은 향기가 글 속에 묻어나고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살았던 그 시간들을 훔쳐갈 수 있게 포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시간이 잡동사니가 아닌 정제된 나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타인의 글을 보는 건 그의 시간을 간단하게 훔치는 좋은 방법입니다.
나의 잃어버린 시간을 훔치는 방법은 글을 남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