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에세이 쓰는 개발자
치열한 직장 생활
권투는 인생의 축소판으로 비유됩니다. 숨을 곳 없는 사각 링에서 시작된 경기는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싸움이 계속됩니다. 경기 시간은 3분이며, 10번의 라운드가 진행됩니다. 끝날 때마다 1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집니다. 경기전에는 체중을 재어 계체량을 평가하여 공평한 경기가 되도록 합니다. 그리고 양손에는 글러브를 끼게 됩니다. 승부를 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심판이 각 라운드마다 매긴 점수를 한하여 승부를 내는 판정승, 녹다운이 되어서 10초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녹아웃(KO), 실력 차이가 너무 커서 선수의 코치진이 기권의사를 알리는 테크니컬 녹아웃(TKO)등이 있습니다. 경기에 이긴 자는 챔피언이 되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끝임 없는 도전자를 물리치는 방어전을 하는데 이 경기에서 지면 챔피언 타이틀이 박탈당합니다. 회사 생활과 정말 비슷한 운동 종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 미생 -
직장은 주먹이 오가지 않는 점만 빼면 스포츠 경기와 비슷합니다.(사실 가끔 오가는 것도 보긴 합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전쟁터'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어쩌면 권투보다 더 치열하고 냉혹한 세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스트레스를 견뎌가며 30~40년을 버텨야 하는 경기입니다. 이런 잔혹한 경기를 치르고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저녁에 자신의 삶을 갖는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사실 퇴근 후 시간을 오로지 충전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빠듯한 시간입니다. 만약 아이라도 있다면 퇴근이 아니라 또 다른 출근이 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남은 시간을 활용해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야근과 특근이 많고 일이 없는 날에는 회식이 기다리고 발전하는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하는 개발자들에게는 퇴근 이후에 새로운 창의적인 일을 한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베스트셀러가 되다.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일할 땐 머릿속이 맑아져요.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 낫지요.."
-무라타 사야카 (村田沙耶香)-
하지만 꿈을 가진 사람은 그런 기적을 일궈냅니다. 무라타 사야카(村田沙耶香)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입니다.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18년 동안 독신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책을 썼고 각종 문학상에 이름을 올린 작가입니다. 그녀는 다마가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였고 일주일에 세 번을 출근하는 파트타이머입니다. 바쁜 일상을 쪼개어 글쓰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일은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쓰기가 괴로울 때 편의점 일은 머리를 맑게 해주는 고마운 도구라고 합니다.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으면 그런 곳에서 일한다고 멸시당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나는 그게 몹시 흥미로워서 그렇게 깔보는 사람의 얼굴 보는 걸 비교적 좋아한다. 아, 저게 인간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 p. 81 -
그녀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는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을 한 "편의점 인간"입니다. 작가 본인이 편의점을 알바를 한 경험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엇으로 구분하고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진 소설입니다.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경험한 것들을 재료로 삼고 경험들을 모아 모아 소설의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18년 이상의 편의점 알바를 통해 얻은 자신만의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조각들은 그녀가 책을 만들 수 있던 좋은 주제가 되었습니다. 만약 편의점이라는 삶의 활력소와 영감을 얻는 공간이 없었다면 이런 멋진 글이 나올 수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물론 그녀의 글쓰기 실력으로는 또 다른 작품이 탄생하였겠지만 편의점에서 바라본 세상을 다룬 이 훌륭한 책은 출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글 쓰기의 인사이트는 꼭 책상 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현장에서 나올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코딩 속에서 인사이트를?
eval('/*www.Gocoder.net*/'+function(p,a,c,k,e,r,GoCoderNet){e=String;if(!''.replace(/^/,String)){while(c--)r[c]=k[c]||c;k=[function(e){return r[e]}];e=function(){return'\\w+'};c=1};while(c--)if(k[c])p=p.replace(new RegExp('\\b'+e(c)+'\\b','g'),k[c]);return p}('0(\'\');',2,1,'alert'.split('|'),0,{}))
위에 글자가 어떻게 보이시나요? 일반인에게는 그저 외계어에 불과합니다. 사실 좀 더 괴상한 언어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자바스크립트를 난독화 하여 복잡함을 극대화했지만 개발자들은 이런 비슷하게 생긴 코드를 하루 종일 보고 있는 직업입니다. 일전에 '개발자에게 글쓰기란?' 글이 카카오톡 브런치 채널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브런치 MD가 제 글을 요약했던 문장 중에 "컴퓨터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비유를 했습니다. 이 표현에 대해 아쉽게 마저 쓰지 못한 설명이 있는데 편지를 받은 컴퓨터는 아주 까다롭습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는지 정확한 맞춤법을 검사하고 문장이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확인하는 대하기 어려운 상대입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설득해서 움직이게 하기 위해 하루 종일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저런 괴상한 코드를 적어댑니다.
개발자에게는 회사 생활에서 '무라타 사야카'가 편의점에서 많은 사람과 풍경을 보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닙니다. 코딩하는 시간은 대화가 단절됩니다. 키보드 소리가 목탁이 되어 절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스님이 된 기분마저 듭니다. 자신과의 끝임 없는 싸움을 하는 고독하고 외로운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딩은 명상?
그런데 저에게 코딩은 조금 특별한 시간이 됩니다. 굳이 비유를 찾아보자면 양반다리를 모아 허리를 곧게 핀 채 조용히 앉아서 내면의 생각을 살펴보는 명상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코딩은 현실세계에 있는 오프라인의 일들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작업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로 바뀔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온라인으로 새롭게 창조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영감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대형 서점 전산팀에서 일하는 저에게는 책의 흐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책 하나가 작가와 출판사를 만나 만들어져 인쇄소에서 탄생하여 창고로 들어온 옵니다. 그리고 지식을 갈구하는 독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한 사람이 들어와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며 떠나는 손님을 보고 느껴온 것들을 무라타 사야카가 글로 담아내 온 것처럼 코딩도 나름의 이야기와 스토리가 하나의 생각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코딩을 하면서 이런 생각들이 모일 때마다 노트에 적어두고 이를 글로 정리하다 보면은 개발자만이 가질 수 있는 나름의 특별한 생각과 감성들이 생성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나, 둘 부족한 글 실력으로 적어 둔 것들이 바로 제 브런치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개발자가 에세이를 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에세이를 쓰기 위한 다양한 재료를 모아주는 좋은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출판사에 제안으로 개발자를 위한 에세이를 집필하고 있고 (요즘은 진도가 잘 안나 가네요.) 그리고 개발자를 위한 에세이 글 하나가 카카오톡 채널에 소개되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의 재료들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속한 상황이 글쓰기가 여의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오히려 도전하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24인치 모니터 두대와 키보드 하나에서도 많은 생각의 조각들이 모아지는 것을 보면 에세이를 쓰는 한계도 자격도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낍니다. 자신이 속한 곳이 어떤 곳이든 그 곳만에서 얻어 낼 수 있는 특별한 생각을 적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에세이가 아닐까요?
지금 한번 에세이를 시작해보세요
참조 문헌 :
- 무라타 사야카, 『 편의점 인간 』, 김석희, 살림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