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난 환자는 다소 작은 키에 통통한 체형인 중년 여성이었다. 눈도 코도 얼굴도 동그란 모습이 너무 귀여웠고, “아유, 검사인데 무슨 시험 보는 사람처럼 하루종일 긴장하고 있어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나에게 먼저 말을 걸 정도로 사교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동네 동호회 회장을 여러 번 맡으며 활발하게 생활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평소에도 어찌나 성격이 좋던지 매해 김장을 해서 100 포기의 김치를 주변 사람에게 나눠주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년 전부터였다.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을 거꾸로 드는 일이 있었고, 옷을 입을 때에도 목이 들어가야 할 구멍에 팔을 넣어 한참 시간이 걸렸다. 남편이 “사진 찍게 여기 봐”라고 말하면 엉뚱한 곳을 쳐다보며 대답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환자는 밝고 명랑하며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점점 일상생활이 불편해지니 가족들은 환자가 시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과 의사가 “눈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충격을 받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 눈에 문제가 없다니...?’ 결국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신경과까지 오게 되었다.
검사를 위해 함께 검사실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환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미묘하게 이상했다.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는데, 눈이 계속 여기를 보았다가 저기를 보았다가... 나를 보지 않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환자분, 여기에 연필 대주세요”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오른쪽 상단의 종이를 가리켰는데, 환자의 펜 끝은 왼쪽 하단으로 향했다. 이 외에도 여러 검사 상의 사인을 확인하며 면담도 진행하는데, 갑자기 환자가 망설이다 내게 물었다.
“제가 치매인가요?”, “저보다 더 심각한 사람도 당연히 있죠...? 너무 무서워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겪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이 너무 커서 나에게까지 흐르는 것만 같았다.
추후 환자는 Posterior Cortical Atrophy(PCA) 진단을 받았다. 쉽게 말해,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후두엽이 고장 난 것이다. 우리는 눈으로 세상의 정보를 입력하고 뇌에서 이 정보를 받아 해석하고 이해한다. 만약 들어오는 통로는 고장 나지 않았는데 해석하는 곳이 고장 난 다면? 즉, 눈은 고장 나지 않았지만 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뇌가 고장 난 것이다.
뇌는 참 신비롭다. 정말 작은 손상에도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문제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이렇게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어쩌면 큰 기적이고 축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