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이상과 현실, 그 간극에 고통받다- 1편.
'입덕 부정기'라는 말이 있다. 아이돌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특정 대상에 푹 빠지기 전에 본인이 그 대상에 매료됐음을 부정하는 시기를 의미한다. 살아오면서 배우 또는 아이돌에 미쳐본 적도 없고 연애 상대에게는 숨김없이 직진만 했던 나로서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단어였다. 그렇기에 임신부터 아이의 돌이 지날 때까지 '입맘 부정기'를 겪은 줄도 몰랐다. 많은 엄마들이 그 시기를 거치고 나서야 아이에게 올인하는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은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2015년부터 시작한 사회생활로 만들어진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상당히 견고했다. 출산 직전까지 일을 했던 이유도 그 정체성을 놓고 싶지 않아서였다. 배가 나올 대로 나온 임신 36주 차의 몸으로 계속 사무실에 나가고 37주 차에 연차를 소진한 끝에 38주 차에 출산 휴가에 들어갔다. 바쁘다는 이유로 출산 가방 싸기, 손수건과 옷 빨아두기 등 필수적인 사전준비만 간신히 마치고 육아에 대한 공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시기에는 친구들의 육아 관련 얘기조차 듣고 싶지 않았다. 커리어, 웹3 시장에 국한된 관심사를 확장하고 싶지 않아서 눈과 귀를 닫아버렸다.
육아에 무지하던 나는 출산 6개월 만에 복직했다. 100일 이후에는 아기가 통잠을 자기에 살 만해진다는 말만 듣고 내린 결정이었다. 주위에 그 판단이 틀렸다고 말해줄 사람도 없었다. 육아 중인 친구들은 나보다 1~2년은 먼저 아이를 낳았기에 그 시기에 대한 기억이 벌써 가물가물해진 상태였고 내가 그 친구들에게 딱히 물어보지도 않았다. 이외에 조리원 동기라고 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출산 당시 코로나 여파로 인해 각자 방에서 홀로 밥을 먹는 분위기로 인해 다른 산모에게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고 나 역시 굳이 조리원 동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6개월 후면 회사로 돌아가니까'라고 합리화했지만 사실은 조리원 동기들과 어울리다 보면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커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내 발목을 잡았다.
조리원 퇴소 후 아이를 돌보면서 모성애가 커지는 와중에도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쉬이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글을 쓰는 지금은, 어린이집 같은 반 아이들이나 문화센터 같은 수업을 수강하는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고 그 엄마들에게 먼저 다가갈 정도로 변했지만 그 당시에는 아는 엄마들을 봐도 꾸벅 고개만 숙였다. 내심 '나는 애엄마가 아니니까 어울릴 필요가 없어'라는 오산을 했다. 복직하기도 전에 회사 워크숍에 합류할 만큼, 계속해서 스스로를 직장인이라고만 여겼다. 출산 후 복직까지도 기본만 했을 뿐 그 이상의 육아 공부는 하지 않았다.
복직을 하고 나서야 그간 외면하던 육아 성적표가 날아왔다. '재택이 보장되니까 아이 옆에서 일을 하면 되겠다'는 안일한 생각은 아이와의 애착 형성 문제로 돌아왔다. 난 그저 내 일을 하는 것이었지만 아이는 자신에게 제대로 된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여기는 듯했다. 내 아이는 유독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위기, 표정 등에 예민했다. 그런 아이의 마음속에 엄마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사람'으로 자리 잡은 모양이었다. "엄마, 엄마"를 외치던 아이는 점차 "아빠, 아빠"를 찾기 시작했다. (복직 후 내가 복숭아뼈가 부러진 탓에 약 한 달 정도 아이를 안아주지 못했고 남편이 주로 아이를 재우기도 했다.) 뒤늦게 접한 육아 관련 교육 영상을 통해 아이가 회피형 또는 저항형 애착 상태임을 깨달았다.
돌이 지난 아이의 건강검진에서도 언어 발달, 사회성 발달이 다소 늦다는 결과가 떴다. 어린이집에 일찍 보냈으니 사회성은 당연히 좋을 것으로 생각하던 내 뒤통수가 다시 한번 얼얼해졌다. 검사 결과를 보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육아를 소홀히 했는지 후회가 됐다. 진작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였다면, 그리고 엄마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좀 더 고민했더라면. 하루에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턱없이 짧은 데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볼 일도 그다지 없던 아이는 시험 삼아 가본 신체놀이 수업에서 엉엉 울다가만 나왔다. 다른 아이들이 선생님한테 인사를 하고 하이파이브까지 척척 하는 모습에 마음이 미어지는 듯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든 아이와 건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앞으로의 육아 방향성을 설정해야 했다.
아이가 16개월 차에 접어든 지금은, 아이는 다른 신체놀이 수업에서 선생님과 하이파이브를 척척 하고 어른들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손을 흔들며 인사할 정도로 사회성이 길러졌다. 구사할 수 있는 단어도 아빠와 엄마 이외에 "안녕", "물", "멍멍", "똥", "주세요", "안 돼요", "이이(아니)" 등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아이가 급속도로 발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다음에 다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