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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하 Aug 17. 2022

아비정전과 파푸아 뉴기니

감성 돋는 날 끼적이기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사실 영화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그 네 글자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파푸아 뉴기니의 열기 때문일까. 한 번도 가보지도 않은, 심지어 어디에 있는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파푸아 뉴기니를 들먹이기엔 조금은 가증스럽다.


한때 PD를 꿈꿨다. 취업준비생 시절 한 종합편성 채널 방송국 PD 실무 전형에서 대차게 떨어진 이후로는 접었지만, 꽤나 소중한 꿈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계속 품고 있던 대학교 막바지 시절에 한 교양 수업을 들었다. 원래는 전담 교수가 있었지만, 유독 그 해에만 지상파 방송국 PD님이 와서 수업을 진행했다.


사실 수업은 별 거 없었다. 그 PD님 본인이 연출하고 촬영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틀어주거나, 학생들이 과제 때문에 직접 찍은 30분 분량의 영상을 보고 서로 피드백을 하는 정도였다. (30대가 된 지금 보면, 저런 수업이면 나도 하고 싶다)


그럼에도 한창 PD 지망생일 때여서 그럴까. 내 눈에는 그 PD님이 세상 누구보다 대단해 보였다. 특히 그분이 자연 다큐멘터리 PD라는 점에서 더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분이 촬영으로 인해 강의실에 오지 않을 때는 유독 아쉬웠다. 그래서 대체 어디 가시냐고 여쭤봤다. 파푸아 뉴기니, 라는 생소한 장소가 답변으로 돌아왔다.


"대체 뭘 촬영하시는데요?"


그 이후의 답은 더 꿈만 같았다. 극락조, 라는 더 생소한 생명체가 답변으로 돌아왔다.


나의 동경의 대상이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에서 환상과도 같은 존재를 뒤쫓는다니! 그것만으로도 현실이 아닌 소설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분이 없는 강의실은 '이것은 현실'임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괜히 시무룩해진 나는 공강 시간에 극락조에 대해 찾아보고 있었다. 무료하게 인터넷을 클릭, 클릭하던 중 어떤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파푸아 뉴기니 사람들은 극락조의 꼬리가 상할 것을 염려해 발을 잘랐다."


그때 순간적으로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영화가 있었다. 바로 아비정전이었다. 그 영화의 이 대사만큼은 한동안 가슴에 품고 지내서였을까, 극락조에 대한 설명과 영화의 대사가 서로 맞물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이 새는 나는 것 외에는 알지 못해. (중략)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그랬다. 내가 아비정전의 그 대사에 가슴이 저릿하던 것은 어떤 생명체의 고통이 묻어있기 때문이었다. 실체 하던 새가 타인이 붙여준 이미지 때문에, 현실을 살아갈 발을 빼앗겼다. 그리곤 영원히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쨌든 아비정전의 대사 속 새가 극락조임을 깨달은 순간 내가 할 일은 명확했다. 그 자료를 정리해 또다시 촬영을 앞둔 PD님께 드렸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분명히 고마워하셨던 듯하다. 그리고 또 파푸아 뉴기니로 가셨다. 그렇게 그 과목은 종강했다.

 

나중에서야 그분의 다큐멘터리가 나온 걸 봤다. 총 3부작이었는데, 1부 소개글과 내용 중 아비정전의 대사가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파푸아 뉴기니에 가지 못한 채였지만, 그 이미지만으로 파푸아 뉴기니의 습도가 느껴지는 듯했다. 내가 드린 자료가 인용된 것만으로도 꿈을 이룬 것만 같던 시절이었다.


어찌 보면, 그때가 참 좋았다.


여전히 파푸아 뉴기니에는 가본 적이 없다. 당연히 극락조는 실제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PD도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비정전 네 글자만 들어도 먹먹해지는 건, 파푸아 뉴기니의 습도 때문일까 아니면 극락조의 고통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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