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은 이탈리아 마피아다. 가족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가족주의가 느슨한 것이라면, 이탈리아의 마피아주의는 쫀쫀한 것이다. 우리 가족은 추구하는 삶과 가치가 통일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 집안사람이라면 정치적으로는 이러한 선택을 해야 하고, 삶은 모름지기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하고,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기도하는 삶을 사는 손주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집안은 삶과 가치관에 대한 방향성과 기조가 굉장히 명확하게 잡혀있다. 그것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가족구성원은 크게 혼이나 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긴다. 한편으로는 이 방향성을 지키기 위해 실수를 저질러도 용서받는 기분이 있다. 이러한 면에서 마피아스럽다. 마피아가족은 가족이기전에 공동체다.
Scarpa는 Brionvega의 창립자인 Brion 부부를 위해 그들이 묻힐 묘를 건축했다.
'도도', 그니깐 la famiglia의 수장이자 한국에 큰 영향력을 끼치셨던 우리 할아버지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전현직 대통령들의 조기가 배달되어 왔고, 정재계 조문객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녀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전성기 시절 함께 사업을 일구던 동료들이자 오래된 친구인 노인들이 할머니에게 조의를 표했다. 그 옆에는 할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은 큰아버지에게 조의를, 그다음에는 이 지긋지긋한 la famiglia로부터 벗어나려 하던 차남인 우리 아버지에게 조의를, 다음으로 막내이자 할머니의 카리스마를 꼭 닮은 무섭고 온화한 고모에게 조의를, 그러고선 하나같이 장손인 사촌형 '대대'를 찾았다. '대대'는 큰아버지의 장남이자 우리 집안 장손자이다. "장손자 대대는 어디 있죠?!"
10년 전, 사랑하는 여자가 생긴 '대대'형. 하지만 우리 집안의 가치관과 맞지 않았던 예비 며느리인 형수는 할머니와 큰어머니에게 찍히고 말았다. 당시에 대대형은 가업을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시기였다. 내 눈에도 '대대'형이 맘에 들지 않았다. '대대'형은 대단해져야 하는데, 당시에 소박한 삶을 꿈꾸는 것처럼 보였다. '대대'형의 소박한 꿈이 형수와의 사랑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그렇기에 나 또한 형수가 맘에 들지 않았고 여자 때문에 소박해진 '대대'형이 탐탁지 않았다. 내 눈에도 그런데, 할머니와 큰어머니와 고모눈에는 어땠을까. 결국 갈등은 최고조로 올랐고 대대형은 형수와 함께 미국으로 도망쳤다. 그 이후론 거의 연락도 안 하고 지냈다.
Scarpa는 베네치아 무라노의 유명한 유리공예 출신의 건축가이다.
할아버지의 몸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할 무렵 '대대'형은 딸을 낳았고, 증손녀를 빌미로 우리 가족과 어물쩍 화해를 했다. 증손녀의 탄생에 할머니의 마음이 누그러지셨을까. 나의 추측으로는 할머니는 '대대'형이 보고 싶으셨던 거 같다. 카리스마 있고 결단력 있는 할머니가 차마 아무 명분 없이 '대대'형을 용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내심 보고 싶은 '대대'형을 용서하고 싶었고 그 와중에 할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셨고, 그 와중에 증손녀의 탄생이 있었으니, 여러 가지 이유가 맞아 들었다. 할머니는 대대형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온 가족과 함께 호텔 꼭대기 층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셨다. 할머니는 증손녀 '윤윤'을 끌어안았다. "윤윤아~ 내가 네 증조할머니다~. 내가 증조할머니야~ 영특하고~ 기특하고~ 품위있게 살아야 한다~~~" 할머니는 '윤윤'에게 축복을 내렸다. 할머니의 축복에는 주술성이 담겨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우리 사랑하는 '샘샘'이 '단단'이~~ 영특하고~ 기특하고~ 귀한 의사가 되어야 한다~"라고 축복 내렸던 '샘샘'형과 '단단'형은 의사가 되었고, "사랑하는 '대대'~ 가업을 이어야 한다~" 했더니 '대대'형은 가업을 잊고 있다. 나에게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라고 말씀하셔서 그런지,,, 하고 싶었던 음악이 아닌 사업을 하고 있다. 무서운 일이다. 와중에 조금 기대되는 것이 있는데, 내 친동생인 '산이'에게는 "우리 '산이산이'~ 위대한 재벌이 되어라~"라고 축복하셨다. 조금만 기다리면 내 동생은 아마 재벌이 되어있을 것이다.
할머니는 '윤윤'에게 축복을 내리셨고 편찮으시던 할아버지의 품에 '윤윤'을 안겨드렸다. 그 이후로 '대대'형의 '사랑의 도피 사건'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할머니가 '대대'형을 위해 준비했던 다이아반지를 형수에게 주셨고 그것은 화해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화해의 식사' 또한 굉장히 마피아스러운 것이다.
Scarpa는 계단모양을 좋아한다. Scarpa는 계단을 굉장히 신경 쓴다.
"장손 대대는 어디 갔죠?" 120번도 더 들은 말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큰 집단의 리더이시다. 우리 가족은 '대대'형의 '사랑의 도피 사건'을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지만 당시에 이미 회사내에 소문은 다 나버렸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더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권력을 갖고 싶은 사람, 할아버지 할머니와 더 오래 일했던 장로들은 '사랑의 도피 사건'을 뒤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사건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아는 사람이 곧 실제 권력자였던 할머니의 최측근이자 참모라고 인정이나 받는 듯이 서로 아는 척 떠들어 댔다. 우리 가족이 증손녀 '윤윤'을 빌미로 호텔 꼭대기에서 화해를 했다는 것은 소문이 나질 않았나 보다. '대대'형이 가업을 이어갈지 아닐지에 대한 내용도 그들의 입방에 오르내리는데, '대대'형이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으니 장로들과 조문객들의 궁금함은 증폭되었다. 정말 자격 없는 장손이다.
장례의 마지막날, 할아버지를 운구하는 행렬에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렸다. 할아버지가 일전에 처칠의 장례식을 보고 인상 깊어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장례는 처칠의 장례식에 버금가는 장례식이었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노래를 수천 명의 인파가 함께 불렀다.
'대대'형이 나타났다. 장례의 마지막날 나타났다. 미국에서 오는 비행기가 잘 안 잡혔다나 뭐라나. 뒤늦게 나타나 장손의 역할을 억지로라도 해내려는 형의 모습을 보니 이삭의 아들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눈이 멀어 죽어가는 이삭이 장자인 에서에게 축복을 내리려는데, 야곱이 털이 많은 에서를 흉내내기 위해 양털을 팔에 두르고 눈먼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아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은 사건이다. 저 미운 '대대'형이 장손이랍시고 자꾸 축복을 받는 것이 짜증이 났다. 내가 '대대'형의 친동생이었다면 분명히 나에게 쿠데타를 당했을 것이다.
'대대'형은 장례의 마지막날 둘째 아들인 '민민'만을 데리고 왔다. '할머니의 축복을 받은 증손녀 '윤윤'은 오지 않았다. 증손녀와 형수는 할아버지의 장례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대'형은 너무 늦게 나타났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축복을 받은 '윤윤'과 다이아반지를 받은 형수가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무척이나 화가 났고, 나의 분노 또한 정말 마피아스러운 것이었다.
Scarpa는 대각선을 좋아한다. 비스듬한 것을 신경 쓴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날들이 일 년에 3~4번 정도 있었다. 추석과 설날, 그리고 할머니생신 할아버지 생신이었다. 추석과 설날은 큰집이나 우리 집에서 보통 가족모임을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생신에는 좋은 호텔 레스토랑에 방문해 식사를 했다. 좋은 레스토랑의 낮은 조도아래 큰 테이블에 가족들이 모여 앉아있다.
큰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는 잘 들리지 않게, 할머니에게만 아주 작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쪽에는 잘 이야기해 두었고, 작은 아버지는 잘 타일러서 보석으로 빼드렸어요."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잘 들리지 않게 아주 작게 대답하셨다.
"그래 잘했다. 네가 잘했다."
할아버지 '도도'의 동생이셨던 작은할아버지 '홍홍'은 사소? 한 잘못으로 감옥에 가신적이 있다. 큰아버지가 작은할아버지 '홍홍'의 보석금을 내드렸다는 이야기다.
아주 낮은 조도아래 큰 테이블에 할아버지 '도도'는 이 이야기를 못 들은 척하셨고, 차남인 우리 아버지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딴청을 피우셨고, 고모는 할머니와 큰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번갈아 눈을 마주치며 근엄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우리 어머니는 딴청을 피우는 차남 아버지를 대신해 할머니와 눈을 마주치며 옅고 예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 모든 것이 참 마피아스러운 것이다.
Brion 무덤의 전경
이십여 년 전에 큰아버지가 가업을 이을 때의 일이다. 할아버지의 명예로운 업적에 반해 큰아버지로 세습되는 것이 절대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 우리 아버지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집요하게 괴롭히셨다. 지금이야 이렇게 글로 쓸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정말 큰 싸움이었다. 아버지는 크게 반대했다. 왜 그래야만 하냐고, 이건 아니라고, 말도 안 된다고. 할아버지의 얼굴에 먹칠하는 일일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욕할 일을 왜 해야 하냐고. 할머니는 그런 건 다 작은 의견에 불가하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일군 이 단체를 어떻게 남에게 이을 수 있냐.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세습이 아니고, 정말 중요한 선택을 이성적으로 한 것이다. 할머니는 세습이라는 소의보다 이 단체를 위한 대의를 선택하신다고 주장하셨다. 아버지는 아무리 잘난 대의라도 세습은 좋게 평가받을 수 없으니 길게 봤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 본분들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어필하셨다. 끝끝내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아버지는 세습을 막지 못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세습이라는 약점을 파고들어 시위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할아버지에서 큰아버지로 이어진 세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대파들이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강하게 해댔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큰아버지 모두가 미워죽겠으면서도 시위하는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멱살을 부여잡고 피켓을 던져버리셨다. 시위하던 사람이 당황해하며 '네가 뭔데 이러냐'라고 하면 아버지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뭐? 씨팔?' 하고는 멱살이나 한 번 더 잡으셨다. 가족들의 옳지 못한 선택 앞에서 최선을 다해 반대를 했어도, 시위자들의 논리가 인정이 되면서도, 아버지는 가족을 더 생각하셨다. 그것은 사랑을 넘어선 어떠한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아주 마피아스러운 것이다. 아버지는 특히나 마피아집안의 차남역할을 톡톡히 하셨다. 아버지가 시위자들의 멱살을 잡고 실랑이를 할 때, 강단 있는 우리 어머니는 내 손을 끌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가던 길을 가셨다.
Brion가족을 위한 추모 예배당 가는 길
Brion 부부를 위한 추모 예배당
추모 예배당 천장
추모 예배당 정문 입구
할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고 삼우제가 되어 가족들은 다시 할아버지의 묘지 앞으로 모였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끌던 회사 소유의 부동산이 몇 개 있었고, 그중 가장 의미 있고 상징적인 곳에 할아버지가 묻히셨다. 가족들이 모여서 아물지 않은 잔디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큰아버지에게 이사님들과 원로분들이 다가와 귓속말을 하셨다. 큰아버지는 그 얘기를 듣고 할머니 곁으로 가 말했다.
"아직 허가는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사님들이 구청 쪽 사람들하고 이야기 잘해서 해결하겠다고 하네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할아버지가 묻히신 곳이 장지로서 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아직 행정적인 처리들이 필요해 보였다. 할머니는 살짝 아버지의 눈치를 보시는 듯했다. 아버지는 인상을 팍 쓰시고는 먼산을 바라보셨다. 다 이유가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할머니와 아버지는 실랑이를 하셨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할머니가 정해두신 장지에 할아버지가 묻히시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곳이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다는 걸 아시기에 아버지는 별 불만을 크게 드러내진 않으셨다. 하지만,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묘비를 추모, 추념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씀하셨을 때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냥 사람들이 조용하게 왔다 갈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만 하는 게 세련되고 좋은 거예요!!! 뭘 또 그렇게 거창하게 하려고 하셔!! 그런 거 좀 그만하시라니깐!!! 딱! 간단하게 아버지 이름만 딱 써둬요!!!"
할머니도 지지 않으셨다.
"야! 야! 네 아버지가 그냥 아버지니? 사람들이 아버지를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게 명예에 맞게 해 두는 게 맞는 거지!!! 그리고 네 아버지이기 전에 내 남편이고 우리 회사의 리더셨다! 그걸 왜 네가 뭐라 뭐라 못하게 하니!?"
순간적으로 불같은 스파크가 튀었다. 할머니는 내가 어릴 적에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 많이 다니셨는데, 할아버지의 지금의 장지가 된 터에 가시면 항상 이곳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묘가 될 것이라고 설명을 여러 번 하셨었다. 할머니의 작은 소망이자 오래된 바람이셨다. 아버지가 그걸 못마땅해하는 걸 아시면서도 꾹 참고 진행했는데, 묘비를 어떻게 할지 상의하던 와중에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니 할머니도 이번엔 참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끓는 분노가 6 기통 엔진소리처럼 공간을 감쌌다. 하지만 이야기해도 소용없다는 걸 아시기에 그만두셨다.
할머니와의 실랑이 이후 아버지는 고모를 밖으로 불러냈다.
"너 엄마한테 똑바로 말씀드려. 어?! 아버지 묘비는 정말 간소하게 하라고 네가 꼭 설득해 알았지!"
고모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Brion 노부부를 상징하는 파란원과 붉은 원
다시 삼우제날로 돌아와서. 묘비는 할아버지를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멋지게 만들어지고 말았다. 고모가 할머니에게 아버지의 얘기를 전하고 말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피아 가족은 그런 것이다. 차남의 이야기는 잘 반영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묘비를 보고는 다시 한번 인상을 팍 쓰셨다. 행정적인 허가도 진행이 되지 않은 곳에 이렇게 거창한 묘비가 있으면 어떻게 하냐며, 작고 소중하게 간단하게 하는 것이 모두가 이롭고 외려 그게 세련된 거라고, 도대체가 왜 말을 듣지 않냐며, 짜증을 온몸으로 내셨다. 할머니는 뜻대로 일이 진행되었기에 아버지의 눈치만 살짝 봐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묘가 너무 예쁘게 잘 되었다며 뿌듯해하셨다.
할아버지인 Giuseppe Brion과 그의 헌신적인 사모님 Onorina Brion의 묘. 폰트가 인상적이다.
할아버지인 Giuseppe Brion과 그의 헌신적인 사모님 Onorina Brion의 묘. 둥근 지붕아래 두 분이 나란히 누워있다.
할아버지인 Giuseppe Brion과 그의 헌신적인 사모님 Onorina Brion의 묘, 옆모습
Brion 부부는 이탈리아의 스피커와 라디오로 유명한 회사 Brionvega를 설립한 사람들이다. 남편인 Giuseppe Brion이 죽자 아내인 Onorina Brion은 Scarpa에게 무덤을 멋지게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Scarpa는 본인이 죽으면 본인도 이곳에 묻히기로 약속을 받아내고 유리공예출신답게 정성껏 묘지를 건축했다.
Brionvega의 rr126. 우연하게 나의 집 거실을 장식하게 된 제품.
Scarpa의 계단 디자인은 운명적이었다. 센다이에 출장을 갔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죽고 말았다.
Scarpa는 Brion Tomb에 비스듬히 묻혔다.
계단과 대각선을 좋아하던 사람의 운명적인 생 마감이다.
Carlo Scarpa의 비스듬한 묘
Scarpa가 지은 Brion 부부의 무덤을 보며,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마피아 같던 우리 집안을 생각했다.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렇게 멋진 곳에서 누군가에게 기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것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준비한 할아버지의 묘는 이와 버금갈 정도로 아름답고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싫어하시지만) 정말 근사한 묘지를 보고 있다.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죽거든 장례식 같은 건 하지 말고 나랑 친했던 사람들하고 좋은 식당에서 좋은 음식 먹고 화장해서 금오도 앞바다에 몰래 뿌려줘."
금오도 앞바다에 썰물이 되어야 보이는 판판한 돌덩이 하나가 있는데, 그걸 아버지 묘비 삼아 기념해 달라고 하신다. 나는 아버지와 생각을 달리한다. 나의 아버지 또한 누군가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 많은 업적이 있으시다. 학자로서 작가로서 남긴 작품들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바꾸기도 하셨을 텐데, 너무 천연자연 같은 묘비는,, 아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쉬운 일이 아닐까. 묘지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건축가 작곡가 예술가의 무덤이 없을 때가 있는데, 그때 정말 아쉬운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버지의 뜻이 그렇다면 나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한다. 마피아집안의 장남이기 때문이다. 재벌이 된 내 동생은 아버지의 묘가 근사해야 한다며 내게 신경질을 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의견에 어머니가 은근하게 따라갈 때가 많으신데, 어머니의 장례는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치러드리고 싶다. 어머니는 나무가 참 어울리는 여자다. 어머니의 묘에는 좋은 나무 한그루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묘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실까.
이전에 다니던 회사이름이 Epitaph였다. 묘비명을 뜻하는 Epitaph. 회사 이름에 맞게 명함에 본인의 묘비명을 적어야 했다. 그때 적어둔 나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가만히 있으려다 망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내 성격이 나의 생을 잘 꾸며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이뤄놓거나 실패한 흔적들을 묘비명에 재치 있게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피아 같은 집안들이 있다. 큰 사업을 하거나 가업이 있는 집안들은 거진 다 마피아 같을 것 같다. 가족이 곧 동료일 때가 있다. 나는 참 재미있는 집안에 태어난 거 같아 감사하다. 나 또한 나만의 마피아가족들을 꾸려보고 싶다. 가족이 곧 동료고 동료가 곧 가족이길 바랄 때가 많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할아버지 옆에 묻히실 거 같다. 할머니의 장례 또한 우리 가족만의 장례는 아닐 확률이 높다. 할아버지에 버금가는 장례식이 치러지고, 큰아버지가 장례절차와 장지, 묘비를 할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진행시켜드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