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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ul 11. 2024

로션을 바르다가

요즘 나의 주된 관심사는 지난 세월, 오랫동안 쓰잘 데 없이 몸 안 구석구석에다 묵히고 쟁여둔  살덩어리를 줄이는 것이다. 이태 전, 폐렴으로 한 달 가까이 병원신세를 지고 나니 체중이 줄어면서 몸이 급작스럽게 허약해졌으나 아랫배는 여전히 올챙이배와 다름없었다. 종아리엔 그런대로 살집이 남아 통통하긴 해도, 만져보면 갓난아기의 말랑말랑한 볼살처럼 설핏 손아귀에 힘을 주어봐도 한 올의 근육조차 잡히질 않았다.


과연 생각한 대로, 토록 쇠약해진 몸으로 퇴원 후 처음 나선 바닷가 트래킹은 어김없는 고행길이었다. 겨울, 칼날같이 예리해진 바닷바람이 잔뜩 날을 세우고 이리저리 사방으로 짓쳐들자, 마치 축이 무너져 장력(張力) 느슨해진 지주(支柱)처럼, 이미 제풀에 힘이 풀려버린 사지 온전하게 몸을 지탱할 수 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안간힘을 써서라도 발걸음을 계속 이어가 보려 했지만 한번 삐끗해 버린 팔다리엔 더 이상 힘이 모아지 않았다. 그날, 되돌아오는 길 동네 다이소에, 진작부터 눈으로 곁눈질해 두었던 3kg짜리 아령 두 개와 스트레칭 밴드를  장바구니 속에다 담고 말았다.


근래, 다시 나름대로 원칙을 세우고 시작한 홈트레이닝, 이름하여, 홈트가 오래된 습관처럼 몸에 밴 지도 벌써 반년 가까이 흘렀다. 처음엔 유튜브에서 관련 동영상을 찾아 기본적인 아령운동과 스트레칭 밴드의 사용법을 한 동작 한 동작 따라 하며 몸으로 익혔다. 홈트라지만 몸이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가 크지 않은 단순 운동이기에 이내 싫증이 났고, 기대한 만큼의 운동효과를 몸으로 체감하기까지에는 다시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다만, 날씨에 온기가 더해지기 시작하자 어느 순간부터 하루가 다르게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정수리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이마를 타고 줄줄이 목덜미를 따라 흘러내리면 방금 물에 헹궈낸 듯 스포츠 셔츠가 흠뻑 물기를 머금는다. 제법 튼실해 보이는 가슴이 땀으로 찰싹 달라붙은 셔츠 위로 도드라지면 나도 모르게 양쪽 가슴으로 잔뜩 힘이 쏠렸다. 덩달아, 발끝으로만 오로지 체중을 실어 버티고 서면 종아리 근육이 위아래로 갈라지면서 보기 좋은 굴곡을 이루기도 한다. 허벅지는 또 어떤가? 말벅지는 아니어도 무릎 쪽으로 근육이  여러 갈래 울퉁불퉁 굴곡진 것이 근사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뙤약볕에 막 말라붙기 시작한 황토처럼 꾹 눌러보면 만만찮은 찰기마저 느껴진다.


특히, 오늘 아침이 그랬다. 체중계에 오르니 눈금이 지난주보다 2kg 가까이 줄어 있었다. 사실, 몸이 아프기 전에도 오늘과 거의 비슷한 몸무게를 유지한 적은 있지만 체형은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선 볼살이 목 아래까지 접혀 위아래로 경계가 불분명하고, 가슴 아래로는 불룩해진 배가 해산을 코앞에 둔 임신부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걷기를 위주로 해서 자전거를 타거나 간간이 골프를 치는 등 가벼운 운동과 함께 나름 식사량을 줄여가며 감량에 힘을 썼지만 그뿐이었다. 한번 덧씌워진 몸매에서 벗어나는 은 내게 있어 그저 앞날이 요원한 희망사항으로, 이후로도 무망(無望) 한 일일 뿐이다.


쓱, 벗은 몸을 아래로 훑어보니 줄어든 체중에 기분이 고무된 듯 스스로 생각해도 더 이상 꼴 보기 싫은 몸매는 아닌 듯하다. 샤워를 마치고 변화된 몸에 오일링을 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지만, 오늘은 얼굴에 로션을 바르다가 목덜미를 거쳐 내친김에 뒷목과 귀언저리까지 구석구석 로션을 발랐다. 일순, 목덜미를 질척하게 간질이는 듯한 낯선 느낌과 함께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런! 얼굴과 달리, 목덜미는 여태껏 내 몸이었지만 내 몸이 아니었구나.'

  

그저 한 번의 손놀림만으로도 소홀함을 벗어날 수도 있었던 목덜미지만, 아무리 되돌아보아도 오늘처럼 의도적으로 목덜미까지 골고루 로션을 발라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였을까? 눈앞으로 흐릿하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잔상이 이리저리 일렁거리며 나타났다. 아마도 내가 직접 가르쳤던 아이들이었을 것이기에, 우선 얼굴 생김새부터 또렷이 각인되어 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몇몇 그런 아이들을 지나서부터는 그저 아이들의 윤곽만 흐릿하게 그려질 뿐이었다.


'아! 내 품 속 똑같이 소중한 제자였어도, 알게 모르게 소홀했던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었구나.'


느닷없이 왜 이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알 길이 없다. 아니라고 말로는 되풀이하고 있지만, 교직 생활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여전히 내게 남아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미련보다는 후회에 가까울 것이다. 뼈를 깎는 자성 속의 반성과 그로 말미암은 후회. 특히, 아이들 진로지도에 서툴렀거나 무지했던 교직 초창기 시절을 되돌아보면 얼굴이 확 붉게 달아오른다.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의 몇몇 명문대에 진학한 아이들 숫자에만 매몰(埋沒)되어 알게 모르게 외면해 버린 훨씬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이 아직도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있기에.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것이, 낯선 감각이 나를 겨누면서 날을 세우고 있는 듯하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나의 목덜미가, 여전히 내게 머물러 있는 흐릿한 잔상의 아이들에게. 되돌아 다시 한번 얼굴에 로션을 바르면서 몸치장을 끝내고 나니 비로소 제대로 현타가 오는 듯했다. 결국, 지난날 볼품없던 몸매의 나나 자뻑하고 있는 현실 속 몸매의 나 역시 다른 사람일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순간, 시차를 두고 오버랩되고 있는 두 몸매의 틈새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념이 그래서 불쑥 돌기를 드러냈을지도 모를 일이고.


로션을 바르다가 문득 희한한 생각이 떠오른,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희한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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