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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ul 12. 2024

그리운 아버지

뇌간(腦幹)으로 이어지는 혈관이 막혀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기 전까지 아버지는 거동을 하시는 데 큰 불편 없었다. 간간이 가슴을 옥죄 극통(極痛)으로 진작부터 협심증을 의심하긴 했으나, 혈관 조영술로 혈관상태와 병변(病變) 검사하는 과정에서, 혈관에 스텐트를 끼워 혈류를 정상화하기에는 심장으로 이어지는 동맥이 너무 좁아져 있어, 결국 우측 종아리 혈관을 떼어내어 건강한 핏줄의 통로를 확보하는 심장 관상동맥 우회술을 시술하기로 다.


당시 연세로 일흔 후반의 고령이었 아버지는 목숨이 경각을 다투는 네댓 시간의 수술을 용케 견뎌내시고, 죽음과도 같았던 오랜 마취로부터 깨어나셨다. 그날로, 우리는 섬망(譫妄)이란 낯선 의학적 용어와 함께 경증 치매라는 의료적 상황과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되었지만, 노령에 겪은 대수술이었음에도 아버지는 신체적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육신의 건강을 회복하셨다.


아버지는 오랜 세월 당뇨를 고생하고 있었지만 퇴직 전후로 20년 넘도록 꾸준하게 노후 건강관리를 하셨던 탓인지, 심장수술을 받고 나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건강해 지신 듯 보였다. 이전 같으면 중간중간 몇 번이고 쉬어 가야 했을 꽤 먼 거리의 산책길을, 오히려 어머니를 성화(成火)를 돋아가며 앞장서 이끌곤 했으니 말이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수술 이후 우려했던 섬망 증세가 경증 치매라는 행동 양상으로 본격적으로 현실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좀처럼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선잠 자다 깨기를 거듭하다가 결국 수면제를 상복(常服)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무렵부터였다. 이전에 들었던 내용을 머릿속에 제대로 담아두지 못해, 했던 말을 자꾸 되풀이하거나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상대방이 질릴 때까지 묻는 일도 잦아졌다.


건망증처럼 미리 예상했던 기억력 감소나 굼뜬 행동 같은 행동패턴의 변화보다도 줄곧 우리들의 우려를 샀던 것은 바로 아버지의 저하된 인지 능력이었다. 이 말은, 두 분이 앞으로 꾸려나가야 할 일상생활에서, 중심축이 되어야 할 가정 경제의 핵심인 아버지가 정상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전까지, 은행 업무를 포함해서 모든 잡다한 돈관리는 평생 아버지가 도맡으셨고, 실제로 옛 직장에서 다루었던 주 업무도 회사의 살림살이를 담당하던 총무 책임자였으니 말이다. 무력해진 아버지를 보필하면서, 이제부터 어머니가 넘나들어 할 삶의 파고(波高)가 얼마나 높을 것인지, 닥쳐올 세파나 풍랑은 어느 만큼 지난(至難)할지는 아버지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미리 속단(速斷)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눈을 감고 생전의 아버지를 떠올리면, 지갑을 넣어서 불룩해진 티셔츠의 왼쪽 앞가슴 주머니가 우선 머릿속에 그려진다. 못다 들어갈 만큼 지폐를 잔뜩 넣어 반으로 접은 지갑은 그 넉넉한 부피만큼 아버지의 마음을 풍족하게 만들어 준 듯하다. 더 이상 지갑 두께를 감당하지 못하고 셔츠 주머니 테두리가 해질 정도로 너덜너덜해지면 당연 어머니의 면박(面駁)이 뒤따랐지만, 결국 그 지갑에서 나온 지폐가 날마다 어머니 손을 거쳐 그날그날 먹거리로 바뀌곤 했다. 어미새가 주는 모이를 기다리 듯, 마음 내키는 대로 지갑에서 끄집어낸 지폐의 종류나 매수(枚數)를 보고, 할아버지 앞에 조아리고 앉은 손주들 눈빛이 금방금방 달리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아버지의 놓칠 수 없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늘 그러했다. 지갑 부피가 줄어들면 그날로 바로 은행에 들러 그 줄어든 부피만큼 지갑을 채우시곤 했다. 명절날, 자식들 용돈으로 가득 채운 지갑을, 명절 선물로 사드린 티셔츠 주머니 속에다 갈무리할 때는 숨길 수 없는 환한 미소가 얼굴 만면에 그득했다. 어머니는 지갑의 부피가 자식들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줄어들도록 아버지를 채근(採根)하시곤 했는데, 두 분이 아옹다옹 다투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 또한 어디 비할 데가 없었다.


러던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바뀌었다. 아니, 어머니의 지적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여전히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일들이 이미 벌어지던 중이었다. 아버지의 지갑이 어느 순간부터 티셔츠 주머니 속을 벗어나기 일쑤였던 것이다. 동네 현금인출기에서 출금한 돈으로 아버지 지갑을 채우는 일은 불가피에게 이제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아버지가 손수 건네주기는 했지만, 손주들의 용돈을 주는 일도 먼저 어머니의 입을 거쳐서 아버지에게 낱낱이 전달되어야만 했다. 원래, 자신의 몫을 벗어난 재물에는 평생 일 푼의 욕심조차 없었던 분이었지만, 이젠 자기 몫의 재화(財貨)에도 영영 관심의 끈을 놓아버린 무욕의 경지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경증이긴 하지만 치매가 진행되고 나서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문안인사가 정말 간결해졌다. '아버지, 접니다. 별고 없으세요?'라고 안부를 여쭙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부터 먼저 찾으시곤 했다. 아마, 날마다 아침 이맘때 올리는 문안인사에 일일이 대꾸하기가 힘듦을 어느 순간 스스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붙들고 몇 마디라도 말을 더 계속 이어가 보려 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본가(本家)로 여동생들을 포함해서 온 가족이 모였을 때도, 옹기종기 둘러앉아 식사할 경우를 제외하면 아버지의 시선은 오로지 TV에만 머물러 있었다. 다만, 식사 자리를 물리고 나서 평소 아버지가 좋아했던 고스톱 판을 벌리면, 그때만큼은 가족들 모두 박장대소하며 함께 행복해했던 그 시절로 성큼성큼 잰걸음으로 되돌아오셨다. 정신이 온전하던 여느 때처럼 점수 계산도 어김없이 명확했고, 고스톱을 치며 사이사이 드나드는 말의 추임새에도 여전히 재기와 유머러스함이 넘쳐났다.


하지만, 외줄 타기처럼 아슬아슬했던 아버지의 삶의 행보는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일순 중단이 되었다. 심장 관상동맥 우회술을 시술한 지 7년 가까이 지난, 코로나의 암운이 본격적으로 온 세상을 막 뒤덮기 시작할 바로 그 무렵이었다. 이후, 여동생이 살고 있는 광명의 요양병원으로 옮겨서 보살핌을 받은 지 1년이 지나 운명하실 때까지 두어 차례의 면회만이 가족들에게 허용되었다.


눈을 감으신 채, 여명(餘命)만을 가까스로 붙들고 있는 육신과 차디 찬 의료기기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생명줄은 아버지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한 사람 씩 번갈아가며 찾아뵐 수 있는 병상에서의 마지막 면회날, 아버지께 올린 마지막 문안인사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아무리 떠올려봐도 안타깝게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처럼, 나이 60이 넘어서도록 은혜를 베풀고 보살펴 주신 아버지에게 근사한 작별인사조차 올리지 못했으니 이런 불효한 자식이 또 어디 있겠는가.


공교롭게도 아버지 나이에 훨씬 이르기도 전에, 한때 아버지를 힘들게 했던 협심증으로 인해 나 역시 하루하루 심적으로 불안하고 위축된 생활을 하고 있다. 단 하루라도 빼먹지 말아야 할 처방약을 평생 달고 살아야 하고, 힘들고 귀찮지만 가벼운 운동조차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가려 먹어야 할 맛있는 먹거리들이 눈앞에 지천으로 널려있는데도 딴 곳으로 애써 눈길을 돌려야 할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이태 전에는 폐렴과 그에 이은 코로나 합병증으로 한 달 가까이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요즘 들어선 아버지가 몹시 그립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때도 있다. 마치, 삶의 지혜를 잃어버린 수술 이후의 아버지처럼,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먹먹해질 때가 적지 않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게 있어 지혜롭지 않던 아버지는 단 한순간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힘들 때마다 종종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아버지의 그윽한 미소조차 삶의 지혜로움을 되살리는 단초(端初)가 될 때가 많다. 하물며, 마지막 면회에서 마주 잡은 아버지의 손을 통해 전해진 온기가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머물고 있는 이상, 아버지가 마지막 남은 온기를 통해 나에게 전하려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이젠 가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내게 있어서 그건 분명 삶의 용기에 관한 것일 거다! 평생을 지혜롭게 살으신 아버지가 마지막 손의 온기로 내게 남기려 한 바로 그 말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이루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내게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그리웠고, 또 아버지의 마지막 잡은 손의 온기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내 마음속에서 아버지의 온기가 떠나지 않는 이상 그 온기는 내 아이들에게도 이어질 것이다. 아마, 그렇게 인생은 유구하게 이어질 것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들이 면면이 이어가고 있는 삶일 테고.


아버지, 오늘은 아버지가 정말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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