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鳶), 연(連), 연(緣)

by 박상진

새해 들어 잠시 냉랭하던 날씨가 언 땅 녹듯 물러지더니 오늘은 된바람 속에서 약간의 온기마저 느껴진다. 불쑥, 머릿속으로 오랫동안 지워졌던 말 하나가 떠올랐다. 삼한사온(三寒四溫). 그렇다. 우리나라의 겨울 날씨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던 말이다.


한겨울, 우리 어릴 적 날씨가 정말 그랬다. 이틀을 마다하고 불어오는 삭풍은 살을 에일만큼 매서웠고, 눈 쌓인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은 날 선 창날처럼 서늘했다. 하지만, 이어진 사나흘은 바람 숭숭 지나가는 옹벽 아래 음습한 그늘마저도 잠시 머물러간 햇살에 냉기를 말리곤 했다.


이처럼 짓궂은 날씨 속에, 시린 발 동동 구르며 겨울나던 때를 추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은 이를테면 상꼰대일 것이다. 주지하듯이, 우리나라의 겨울날씨가, 기후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이다. 이곳 포항만 하더라도 조경수(造景樹)로 심어놓은 열대식물을 길거리나 공원에서 사시사철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물며, 삶의 환경이 지난시절과 비할 바 없이 풍요로운 오늘날에야, 추위로 인한 고통의 경험을 느낌적으로 아무리 생생하게 전달한들 요즘 젊은이들이 어찌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공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 해마다 겨울이 오면 어김없이 피는 꽃을 본다. 앙상한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피어난 꽃, 겨울 이맘때가 되어서야 볼 수 있는 겨우살이 꽃이다. 하릴없이 길게 꼬리를 드리우고 바람에 헤살거리며 빼족이 열린 꽃, 다름 아닌 꼬리연이다.


서너 해 전 어느 봄날, 벚꽃이 지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늦은 봄이었다. 꽃사슴 우리가 있는 동물원 비탈길에서 자지러지는 듯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바로 옆으로는, 젊은 아빠가 낭패스러운 얼굴로 우는 아이를 달래고 있었고. 아이가 가리키는 손끝을 바라보니, 키 높은 미루나무에 걸린 꼬리연이 마치 아빠의 심정처럼 바람에 마구 흩날리고 있었다. 연(鳶) 실을 놓쳐버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얼마나 구슬펐던지 공원을 산책 중이던 사람들도 가던 길 멈추고 함께 애달파했다.


여름 들어 나뭇가지 사이로 잎새가 무성해지면서 꼬리연이 온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장마에 연이어 태풍에 휩쓸렸거나 바람이 거세질 때마다 가지 사이로 볼썽사납게 휘둘리고 있는 연을 누군가가 거둬갔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렇게, 늦가을로 접어들어 나뭇가지가 듬성해질 때까지 꼬리연은 좀처럼 속살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헛헛하게 부는 바람에 지난 생각이 꼬리를 잇자, 봄날 목련이 그랬듯, 한송이 연(鳶) 꽃이 가지를 비집고 불쑥 도드라졌다.


그렇게 흘러온 세월이 꼬박 3년이다. 모질게 견뎌낸 세월만큼 바랜 꼬리연은 꼬리로 자신의 몸을 칭칭 감은 채 여전히 나뭇가지에 얽혀있다. 그 아래, 비탈진 공원길을 하릴없이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이 겨우살이 꽃, 볼품없는 연 꽃의 야윈 모습이 눈에 띄기는 할까? 서둘러 집으로 가는 해 질 녘, 인적 드문 공원풍경이 오늘따라 더욱 을씨년스럽다.


며칠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는 날씨 탓인지 아파트 상가 앞 거리가 한산했다. 뒤늦은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동네 커피숍에 들러 막 주문을 하려던 참이었다. 어디선가, 귀가 찢어질 듯 큰 소리로 짖어대는 개울음이 들렸다. 오래된 기억 속, 큰길을 무단횡단하던 개가 바로 눈앞에서 로드킬 당할 때 외마디 비명과 함께 들었던 바로 그 개울음이다. 몸이 들썩 위로 솟구쳤다가 이내 바닥으로 곤두박질하면서 울부짖던, 오래도록 마음속 여운으로 남은 슬픈 울먹임이었다.


오늘 들은 것은, 길 건너 가로수에 목줄로 묵인 채 발버둥 치고 있는 굉렬(轟裂)한 개울음이다. 간간이 내지르는 쇳소리 속에 슬픔이 배인 것은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탓일 것이다. 그런데, 저 자그마한 체구에서 어찌 이리도 앙칼진 소리를 내지를 수 있단 말인가. 무심코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가던 길을 멈춰 서기도 했다. 반바지 차림의 건장한 청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목줄에 적힌 전화번호를 용케 찾아낸 듯했다.


바로 그때였다, 커피숍 모서리 자리에서 때맞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설마 하니 뒤돌아본 귀퉁이 자리에는, 중년의 한 사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앉아 막 전화기를 꺼내 들고 있었다.


"마! 그냥 내비 두소. 다 지켜보고 있으이 끼네. 학생이 전화하는 것도 지금 보인다카이. 허허허. 글 마가 씰데없이 짓어대는 소리가 좀 별스럽긴 하지!"


귓전으로 스치는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머리끝까지 화가 솟구쳤다. 주인 된 사람이 어찌 이런 말을 농지거리로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목줄이 걸린 채로 가로수에 결박(結縛) 당한 건 무기력한 몸뚱이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목줄로 주인과 자신을 이어오던 면면부절(綿綿不絕)한 연(連)마저도 매 순간 절절이 토막 나고 있었을 것이다. 가슴을 짓누르는 기괴(奇怪) 개울음이 아릿한 통증으로 되살아나 머릿속을 심하게 헝클었다.


지난 주말, 호진이로부터 안부전화가 왔다. 12월 14일 부산에서 올린 결혼식을 보고 온 이후로 소식을 사뭇 궁금해하던 차였다. 마음속 아픈 손가락이었던 호진이는, 쉰을 막 넘어선 이른 나이에 유명(幽明)을 달리 한 큰 여동생의 맏아들이다. 10여 년 전 엄마를 여의고 나서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 취업에 이르기까지, 다섯 살 아래 동생과 함께 자신의 앞길을 꿋꿋이 헤쳐온 속 깊은 아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서른다섯의 나이로 부부의 인연을 맺은 신부가 뜻밖에도 일본여자인 아야나이다. 아야나는 후쿠오카가 고향인데, 연애의 출발은 펜팔을 통해 서로 친분을 쌓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본어를 공부할 수단의 하나로 일본인 펜팔을 구하고 있던 호진이가 처음으로 맺은 이성친구가 아야나였다. 아마도, 엄마의 부재(不在)를 대신한 아야나의 따뜻한 마음씀씀이가 호진이의 허허로운 심정을 살뜰하게 메워주지 않았을까 싶다. 모바일 청첩장을 통해 처음 본 아야나의 얼굴이 호진이와 썩 닮은 듯하니, 엄마와도 닮은 아야나를 호진이가 처음부터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 서로를 은애(恩愛)하는 마음이 깊어지자 아야나는 결국 부산의 한 대학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고, 이후 이곳에서 경영학 석사학위까지 취득을 했다. 그래서인지, 신부대기실에서 함께 사진을 찍으며 인사말을 나눌 때 처음 들은 우리말은, 유창함을 넘어 세련되기까지 했었다. 게다가, 부모님과 함께 결혼식을 보러 후쿠오카로부터 노령에도 먼 길 오신 조부모님과 그 밖의 친지들 어느 한분 예외 없이 기품과 교양이 몸에 배어 있었다.


결혼식에 이어진 식사를 마칠 때까지, 이 기쁜 자리를 함께하지 못한 동생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러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간신히 슬픔을 물리고 나니, 아야나와 함께 웃고 있는 동생의 고운 심상(心象)이 거짓말처럼 그 자리를 채웠다. 문득 지난날, 동생의 영안(靈顔) 앞에서 눈물로 썼던 글이 생각났다.

누이

절망의 끝은 또 다른 절망이 아닐 거라고
슬픔의 끝도 또 다른 슬픔이 아닐 거라고
누이의 이른 죽음 앞에서
아무리 용을 써봐도
성큼성큼 다가서는 절망과 슬픔
더는 멈출 길이 없구나

누이여
그저 말로 밖에 위로할 수 없는
암담한 이 현실 벗어나서
후세에서 티끌 같은 인연으로
다시 맺어질 수 있다면,
사랑하는 누이여
꼭 너를 찾으러 가마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부디
홀로 선 죽음 두려워 말아라
외로워도 말아라
같은 어미, 익숙했던 자궁 속
그 따스함 잊지 말고
이다음 세상에선
먼저 간 네가 누이 되어
나를 기꺼이 맞으렴

그땐,
서운했다 나무라도 좋고
미워했다 외면해도 좋지만
부디, 날 내치지는 말거라

너 없이 살아갈
하루하루가,
오늘은 이다지 눈물겹구나
육신마저 안온할 그곳에선
스스로 네 몸 탓했던 지독한 통증
모두 잊어버리고

누이여
속절없는 날일지라도
꼭 , 날 기다려다오
하루를 함께 살더라도
맨 살 다시 부대끼며
살아갈 그날을 위해서라면!

누이여, 내 누이여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랑하는 누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칠 전 어느 날 꿈에, 분홍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함박웃음 지으며, 내 동생 미정이가 오빠를 만나러 왔습니다.

하지만, 멀찍이 거리를 두고는 세상 편안한 몸짓으로 사뿐사뿐 추는 춤을 보면서, '내 동생 참 예쁘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까닭 모를 눈물이 함께 흘러 숨죽여 몰래 울다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서러웠습니다. 사실 그날은, 미정이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는 기별이 온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눈물로 눈앞을 가린 채 두서없는 글을 적습니다. 혼자서 삭이려다 함께 걱정해 주신 분들이 많았기에, 비통하고 애절한 마음을 감히 글로로 전하려 합니다.

그동안 염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세상에 다시없을 만큼 착하게 살다 간 동생이기에 마음으로라도 편히 보내고자 스스로 다짐하고 위로하며 이 글을 씁니다.

( 2015년 10월 어느 날)

사람의 연(緣)이라는 것이 그렇다. 아야나와 난 결혼식장에서 단 한번 보았을 뿐이지만, 동생 닮은 아야나를 통해 진작부터 내 동생을 만나고 있다. 10년 세월이 훌쩍 지나서까지 스스로 앞길 가늠할 줄 아는 당돌함이 엄마와 닮았기에, 아이들을 통해 살아생전의 내 동생을 지금껏 생생히 떠올려 왔던 것처럼.


이제 설이 가까워졌다. 해마다 인사차 외갓집을 들리던 아이들이 올핸 셋이 어울려 찾아올 테지. '오빠, 이제 우리 다시 만났지? 그렇지!' 문을 열고 들어선 아이들 뒤로 고운 웃음 띤 내 동생 미정이의 얼굴이 벌써부터 젖어오는 내 눈 속에 어려 들고 있다.


미루나무에 걸린 꼬리연
개주인에게 전화를 걸고있는 청년
아야나와 호진이의 결혼식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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