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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ul 01. 2022

젊은 날의 내게로

산행(山行)의 추억

'godam98'은 인터넷 상의 내 아이디이다. 아이디에서,  'godam'은 아호(雅號)인 '고담(枯淡)'을 알파벳으로 옮긴 것이고, '98'은 펜티엄 컴퓨터를 처음 집으로 들여놓은 해인 1998년에서 따온 숫자이다.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며 아이디를 만들 때, godam을 아이디로 쓰는 사용자가 중복(重複)되어 어쩔 수없이 뒤에 숫자를 붙여 조합(組合) 한 것인데, 처음에는 godam이란 아이디를 사람들이 왜 선호(選好)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DC 코믹스는 마블 코믹스와 함께 미국 만화시장의 양대산맥 ()을 이루는 회사인데, 이 회사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슈퍼 히어로는 슈퍼맨과 원더우먼, 배트맨, 왓치맨, 아쿠아맨 등이다. 이들 가운데서 배트맨은 단연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슈퍼 히어로가 아닐까 싶다. 바로, 배트맨의 무대가 되는 가상의 도시가 바로 '고담 시티(Gotham City)'인데, 고담은 'Big  Apple'을 애칭으로 갖는 뉴욕의 별칭이기도 하다.


사실, 내 아이디와는 알파벳상으로 철자가 다르지만 우리말 발음은 둘 다 고담으로 표기되는지라, 내 아이디를 처음 본 사람들 가운데는 바로 영화 속의 고담를 떠올리고, 하필이면 왜 고담을 아이디로 쓰고 있느냐고 대놓고 면박() 주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영화 속 고담시는 탐욕과 범죄로 가득 찬 악(惡)의 도시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쓰는 아이디 고담은 한자어를 알파벳으로 옮긴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에, 신라 향가(鄕歌) 연구로 학계에 큰 업적을 남긴 무애(无涯) 양주동 박사가 쓴 수필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글 속에 나온 '고담스럽다'란 말이 그렇게 마음에 와닿을 수가 없었다. 마를 (枯)와 맑을 담(淡)이 합쳐져, '예스럽고 속되지 않으며 담담하다'란 원래 의미를 갖는 말인데, 당시만 해도 깡마른 내 몸매를 '보기 좋을 만큼 해맑게 말랐다'라고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해 스스로 붙인 아호였다. 친구들끼리 아호로 부르는 것이 한 때의 유행이었는데,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후에, 생각지도 않게 godam(枯淡)98이 정말이지 내 평생의 '디지털 아호'가 되어버린 것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godam98'을 아이디로 삼은 이유를 설명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명을 다 듣기도 전에 피식 웃어버린다. 눈앞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몰골을 보고서는 도무지 '보기 좋을 만큼 해맑게 마른' 흔적의 깜냥조차 찾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럴 땐 답답해진 마음에서 말이 급해지기 마련인데, 말을 더듬기까지 하며 변명하는 모양새가 스스로 생각해도 꼴사납다.


스무여섯 살에 교직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제출한 신체검사표에 나온 체중이 54kg 밖에 되지 않는다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실실 웃으며 위아래를 살피다 사람들의 시선이 결국 배에 머물면 그만 할 말이 없어진다. 무려 30kg이나 더해진 몸무게의 대부분이 배 둘레로 몰려있으니 대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지금 이대로의 키에 몸무게가 48킬로였던 적도 있었던 젊은 시절의 고담을 그들에게 증명할 방도가 지금의 내겐 전혀 없다.


체중이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교직생활을 시작하며 술을 가까이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서른이 가까워지면서 동년배의 선생님들이 다 결혼하고 끝끝내 하숙집에 홀로 남게 된 것이 바로 나였다. 집을 떠나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 때문에 결혼을 서두르고 싶은 생각은 마음속에 일 푼도 없었다. 결국, 서른두 살 나이로 결혼을 할 무렵의 체중은 물경 85kg 가까이를 오르락내리락하던 때였다.

하루는, 정 교감 선생님이 저지난달 발족한 학교 산악회에서 기계면에 걸쳐있는 운주산 등산을 가기로 했는데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다. 개중에는 친한 선생님들도 몇 분이 회원으로 있는 데다, 무엇보다 동행하기로 초청한 외부인이 중학교 선배 박 원장님이라니 마음이 솔깃해졌다. 박 원장님은 내 몸 상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주치의이기도 한데, 안 그래도 병원에 들를 때마다 과체중에, 140을 넘나드는 혈압으로 인해서 내게 운동을 강권(强勸)하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결국, 토요일 점심때 불려 간 자리에서 등산 약속을 하고 말았는데, 모처럼 만의 산행이라니 적잖이 기대도 되고 마음이 설레었다. 그날 오후 퇴근길에 만나서, 점심을 함께 먹은 후 간단하게 한 잔 하자던 술자리는 그만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9시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는데, 그것도 내일의 등산을 감안해서 일찍 마친 것이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정 교감 선생님과 박 원장님, 그리고 홍 선생님이 내 차를 탔는데, 사실 나로서는 이번이 첫 산행이어서 준비할 것이 많았다. 여러 명의 김밥을 함께 준비하면서, 돼지 불고기도 넉넉히 양념에 재어두었고, 대구 본가에서 쓰던 화덕을 포항에서 쓸 일이 있다고 마침 지난달 가져다 두었기에, 트렁크에 이 모두를 함께 싣고 나니 마음이 절로 넉넉해졌다. 산행을 위한 만반(萬般)의 준비를 갖춘 것이다.


운주산 아래의, 인비리 마을 회관에 차를 대고 각자 가져갈 배낭부터 챙겼다. 곧장, 마을 골목을 따라 산등성이 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내 식은땀이 쏟아지면서 속까지 거북해졌다. 출정식(出征式)으로 어젯밤 마셨던 술이 너무 과했던 것이다. 능선을 하나 오르기도 전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서, 바로 오던 길로 되돌아 서고야 말았다. 박 원장님이 내 배낭까지 대신 들어주었지만, 들숨과 날숨이 어지러워지며 헉헉대는 꼴이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되돌아서 차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산행을 시작한 지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서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건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산에 올라간 사람들이 도무지 내려 올 생각을 않고 있는 것이다. 10시경에 등산을 시작했으니 오후 1시쯤이면 점심을 먹으러 내려와야 하는데, 모두 함흥차사인 것이다. 일단, 뒤집힌 속이 진정되고 나니 공복(空腹)에 시장기가 몰려왔다. 아내가 정성스레 싸 준 여러 명 분의 김밥 가운데 두 줄을, 맛있게 준비한 전(煎)과 반찬으로 우선 배를 채웠다. 화덕을 꺼내놓고 내려오면 곧 먹을 수 있도록 불 피울 준비까지 마치니 두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6월이 지나면서, 오후 두세 시의 여름 햇살을 밖에서 그대로 받고 있기에는 볕이 너무 따가웠다. 차에 에어컨을 켜 두고 잠시 잠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오가는 기척을 듣고 깨어났는데 벌써 4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속에서 부화가 확 치밀어 올라, 애먼 화덕에다 불을 붙이고 고기를 구웠다. 술을 준비하긴 했지만, 운전을 해야 했기에 가까스로 참아 넘겼다. 도대체, 산 아랫사람 기다리는 줄 알면서 이건 또 무슨 짓거리람! 누구라도 눈에 띄면 금세 입 밖으로 욕설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불판 위에 새카맣게 타고 있는 고기를 속상한 심정으로 보고 있자니, 이 무더위 속에 뻘짓 하고 있는 내 신세와 다를 바가 없었다.


5시가 다 되어 내려와서는, 땀범벅에다 숯 검댕이까지 묻은 내 얼굴을 보고선 모두들 포복절도(抱腹絶倒)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오늘, 진심으로 등산하러 온 것이고 난 선생님들 모처럼의 야유회 온 꼴인 것이다. 사실 저번 달만 하더라도, 등산을 하고 난 다음 날 출근해서는, 등산 이야기보다 하산주에 얽힌 이야기가 주 화젯거리였고, 운동 삼아하는 등산을 여태 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 미처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학 다닐 때, 팔공산 아래서 며칠씩 야영하며 산행을 한 적은 있지만 그 당시에도 우리끼리 하는 등산의 방점(傍點)은 산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노는 일에 있었다.

이후, 2년 가까이를 총무 자격으로 달마다 산행을 주선했다. 결국, 산을 오를 때의 호흡이 문제였는데, 산행할 때 어느 정도 숨을 고를 줄 알게 되면서, 포항 주위의 이름 있는 산은 대부분 올랐었던 것 같다. 몇 년의 공백기가 있었지만 무리 지어 산행을 하던 경험이 이후 MTB 모임으로 이어졌고, 한창  안간힘을 쓰며 이들 후배 선생님들의 뒤꽁무니를 쫒다 보니, 체중이 한때 70kg 가까이에 이르기도 했었다.


지금은 다시 체중이 원상회복되어 83kg에 이른다. 퇴직할 때만 해도 죽 80kg 미만을 유지했는데, 2년여 코로나가 미친 여파로 인해 모든 것이 그만 들쭉날쭉해져 버렸다. 몸무게가 그러하고, 내가 날마다 하는 운동 또한 그렇다. 동네 야산을 오르다, 며칠 비라도 내리면 그만 마음이 게을러져 두문불출이다. 자전거를 손질해 놓고 돌아서면 비가 내리니 또 며칠간 개장 휴업이고, 며칠 마음먹고 걷고 나면 뙤약볕에 얼굴이 새카맣게 탔다고 주변에서 난리다.


고담(枯淡), '보기 좋을 만큼 해맑게 말랐던' 젊은 날의 진면목(眞面目)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데, 암만 생각해봐도 지금으로선 요원(遙遠) 한 일이다. 하지만, 스멀스멀 마음속으로 솟구쳐 오르는 지난날의 오기(傲氣)를 이번만큼은 내치지 않고 두고 볼 요량(料量)이다.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닌, 마음 가는 곳에 몸이 뒤따르는 그런 젊은 날의 내게로, 성큼성큼 서둘러 뒤를 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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