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원기야
자두
내 초등학교 친구 원기는
고향 땅 의성에서
자두 농사를 짓는다
어느 날 들려온 소문에,
서울서 살다 귀농한 그는
영락없는 대구 토박이인데,
서울로 갈 때는 바람처럼
훌쩍 고향을 떠났었다
오늘, 그로부터
자두 한 상자 택배로 왔다
진작부터 부친다
기별(奇別)을 들어선 지
동네 과일가게 지날 때마다
요놈의 자두,
입맛을 많이도 홀렸다
볼그스레, 살포시 익다만
연 노란 자두에
진홍빛으로 속으로도
한껏 익어가는 자두,
상자 속 손 가는 대로
한 놈 집어 들고
한 입 냉큼 베어 먹으니
상큼 달콤한 자두 맛
입 안 가득히 고인다
농사지은 이,
이젠 영락없는 촌놈일진대
이 자두 맛 예사롭지가 않다
수년간 노동으로 일구었을
정성과 땀방울이
옛 친구들 입에서
이야기 꽃으로 활짝 피어나
이제 또 누군가의 귀농살이에
거름 될 수도 있겠지
그 옛날 내가 알던 오얏이
다름 아닌 자두였음을,
연분홍 어린 시절
그토록 날 설레게 했던
그대들 역시,
하나같이 붉디붉은
오얏이었음을
이젠 알겠더라, 정말 알겠더라
오늘,
붉게 물든 노을 아래
한 입 가득 베어 문 자두는
그래선지 참 고운 맛이 난다
정녕, 그리움의 맛이다!
내 친구, 원기야
원기야
늦은 밤, 영정(影幀) 속의 넌 멀찍이서
우릴 보고 빙긋 웃고 있더구나
좀처럼 소리 내어 웃은 적 없던 네가
오늘, 하필이면 그곳에서 웃는 웃음이
마음속에서 그렇게 슬픈 울림 되어
눈물 젖게 할 줄 누가 알았겠니?
지난 목요일,
생의 마지막 끈을 끝내 놓지 않고,
넌 옛 동무들을 기다려 주었더구나
머리 가눌 힘조차 없는 너에겐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를 곳에서
문득 들려왔을 목소리가
몹시 그립고도 낯익었을 테지
간절한 마음으로
가득 따라 네게 건네 진
고작 한 뚜껑의 음료조차도,
단 한 번의 목 넘김은
네겐 죽을힘 다 해야 할
생사의 고비였음을,
우린 뒤늦게야 알았구나
옛 동무의 우정,
한 방울도 소홀히 할 수 없어
그토록 애써 꾹꾹 눌러
속울음 삼켜가며
마지막 삶을 이어가려 했구나
고맙다, 원기야
진정으로 고맙구나, 원기야!
네 아내, 사랑하는 아들 딸
네가 있어, 거두고 일궈 놓은 가정
이토록 반듯하기에,
너를 영원히 떠나보내며
미안하지만
한 마디만 하련다, 원기야
네 부은 종아리 풀어주던
성일이와 효순이 손길
부디 잊지 말아라
황망스런 마음 가누지 못해
돌아서 애써 삼킨
종애 지희 정희 눈물도
잊지 말아라
먼 곳에서,
너의 마지막 가는 길
마음으로 나마 함께 한
옛 동무들 우정도
부디 잊지 말아 다오
이제 6월이 다 가고
너의 삶은 끝이 났구나
의성, 이름 모를 산자락서
애지중지 가꿔 온 자두밭
그리고 주인 잃은 자두들,
네 마지막 흔적이 되어
곱게도 영글겠지
원기야
이젠 모두 내려놓고
편히 쉬도록 하렴
네 손길 곳곳 묻어 있는 곳,
그토록 꿈꾸던 보금자리에서
부디 아프지 말고
빙긋 웃음 띤 얼굴로
우릴 맞이해 주렴
너와 함께 한 6월의
한 자락을 추억하면서
우리, 마음껏 웃어도 보고
슬퍼도 할 수 있도록
부디, 이 6월 다 할
그날까지라도
우릴 지켜보아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