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진 Jul 20. 2022

자두의 계절

내 친구, 원기야

오늘, 집으로 택배가 왔다. 집사람이 주문한 자두인데, 사실 자두 맛을 지는 근 3년 만이다. 


원래 자두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 아니다. 자두의 과일향은 더할 수없이 좋기는 해도, 막상 한입 베어 물면  단맛보다는 시큼한 맛이 강해 일부러 사서 자두를 먹은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러다가 4전쯤, 의성으로 귀농(歸農)해서 자두 농사를 짓던 초등학교 친구가 보내 준 자두를 박스채로 맛보고선 그때부터 엄청 즐겨 먹는 계절 과일이 되었다.


원기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공부도 곧잘 했던 이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리 상으로 가깝지는 않지만 바로 이웃한 동네에 살아서 가끔씩 길을 오가다 만나면 반갑게 부를 나누곤 했었다. 그러다 대구 반대 편으로 이사를 가면서 서로 소식이 끊어졌지만, 초등학교 동기회가 결성되면서 서로 소식이 다시 이어졌다.


이 친구는 대구에서 목욕업하다가 서울로 이사를 가서 그곳에서도 계속 목욕탕을 운영했는데, 듣기로는  건물에 피트니스 시설까지 갖추고 있을 만큼 규모가 제법 컸다고 한다. 자식 농사도 잘 지어 아들과 딸을 의사와 약사로 키웠으니, 그야말로 일찌감치 남부러울 것 없는 노후가 보장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10여 년 전, 원기로부터 느닷없이 걸려 온 전화를 받고서 잠시나마 황망해했 기억이 난다. 중앙고속도로를 경유해서 안동을 막 지나고 있는 중인데, 의성 가까운 곳에 농사지을 만한 땅이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아마, 내 안태 고향(安胎 )이 의성인 것을 기억해 내고서 물어 온 것일 테지만, 적어도 이에 관한 한 번지수를 잘못짚어도 한참을 잘못짚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까지 땅 한 평조차 사거나 팔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바로 그 자리서 답 수 있는 그런 물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원기의 말을 빌자면, 당시 전화를 끊고는 바로 의성 톨게이트로 빠져나왔다고 한다. 국도로 얼마쯤 무작정 달리다가 땅을 전매(轉賣)한다는 표지판을 보고 전화를 했는데, 마침 그 땅이 자두 농사를 짓던 땅이었고, 그래서 그날 이후부터 자두 농사꾼 한 명이 그곳, 의성에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원기는 처음 지어보는 자두 농사를 두고 시작부터 진심이었던 것 같다. 가족을 서울에 남겨 고 혼자 의성에서 생활하며 본격적으로 자두 농사를 배운 모양인데, 사람 좋은 그에게 이웃한 농부들이 물심양면 도움을 주어, 원기는 자신이 바랬던 그림대로 순조롭게 귀농살이의 첫걸음을 던 것이다.


우리 반 친구들이 원기의 자두 과수원으로 놀러 간 것은 2018년 6월 무렵이었다. 아마 농사를 시작한 지 이미 3, 4년 정도 지났을 때인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오랜만에 본 원기는 완연한 시골 농군(農軍)의 모습이었다. 처음 농사를 지었던 자두밭에다 또 다른 자두밭을 사서 농사를 지은 지가 벌써 이태를 넘었다는데, 우리가 찾은 곳은 바로 두 번째 자두밭이었다. 마침, 조립식 간이 화장실을 주문해 둔 것이 도착해서 농막(農幕) 귀퉁이에다 함께 힘을 모아 설치를 마치고 나니 막 점심때가 지나고 있었다.


농막 안에서 친구들이 둘러앉아 준비해 온 삼겹살을 굽고 있는데, 원기가 산삼주 한 병 내어왔다. 산양삼(山養蔘)이 아닌 천연삼(天然蔘)으로 담근 산삼주라 해서 일부러 한 모금 입에 댔는데, 알싸한 인삼향이 입안에 가득 도는 것이 정말 참아내기 힘든 유혹이었다. 아무리 산삼주라 해도, 음주 운전을 할 수는 없으니 그저 자리가 끝날 때까지 참고 견딜 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돌아가며 몇 순배씩 마시자 쑥쑥 줄삼주는 이내 바닥을 드러냈는데  이를 옆에서 줄곧 지켜보고 있자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날로부터 보름 정도가 지나서, 원기는 자두밭에서 수확한 첫 자두를 우리 반 친구 모두에게 한 박스씩 보내주었다. 날, 고마운 마음에서 이에 관해 써 둔 글이 있다.

자두

내 초등학교 친구 원기는
고향 땅 의성에서
자두 농사를 짓는다

어느 날 들려온 소문에,
서울서 살다 귀농한 그는
영락없는 대구 토박이인데,
서울로 갈 때는 바람처럼
훌쩍 고향을 떠났었다

오늘, 그로부터
자두 한 상자 택배로 왔다
진작부터 부친다
기별(奇別)을 들어선 지
동네 과일가게 지날 때마다
요놈의 자두,
입맛을 많이도 홀렸다

볼그스레, 살포시 익다만
연 노란 자두에
진홍빛으로 속으로도
한껏 익어가는 자두,
상자 속 손 가는 대로
한 놈 집어 들고
한 입 냉큼 베어 먹으니
상큼 달콤한 자두 맛
입 안 가득히 고인다

농사지은 이,
이젠 영락없는 촌놈일진대
이 자두 맛 예사롭지가 않다
수년간 노동으로 일구었을
정성과 땀방울이
옛 친구들 입에서
이야기 꽃으로 활짝 피어나
이제 또 누군가의 귀농살이에
거름 될 수도 있겠지

그 옛날 내가 알던 오얏이
다름 아닌 자두였음을,
연분홍 어린 시절
그토록 날 설레게 했던
그대들 역시,
하나같이 붉디붉은
오얏이었음을
이젠 알겠더라, 정말 알겠더라

오늘,
붉게 물든 노을 아래
한 입 가득 베어 문 자두는
그래선지 참 고운 맛이 난다

정녕, 그리움의 맛이다!

이듬해 6월에 간다는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했다. 그 사이에 친구들 자녀의 혼사가 있어그랬는지 몰라도, 그저 소식을 주고받는 것으로 서로 보고 싶은 아쉬움을 달랬었다. 그러다 거짓말 같이, 또 한 해가 흐른 2020년 바로 6월 말에 원기로부터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기 안사람으로부터 뜻밖의 요청이 온 것인데, 원기가 마지막으로 친구들 얼굴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서둘러 가니, 얼핏 보아도 너무나 병색이 완연하여 얼굴에 핏기 하나 없이 수척해진 몰골의 원기가 병상에 누워 있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원기를 보고는 무슨 부터 건네할지 도무지 생각나질 않았다.


입맛을 잃어 곡기(穀氣)를 끊은 지 오래이고 이제는 미음마저 삼킬 수  없다 하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함께 간 반 여자 친구가 비타민 드링크를 따서 뚜껑에 따라 조심스럽게 입속에다 몇 방울 흘려 넣으니, 그저 눈을 껌벅이며 애받아먹으려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10년 가까이 몹쓸 병을 몸에 달고 있었으면서도 친구들 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진심이었던 원기는, 모진 병마와 맞서 고통스러운 싸움을 하면서도 우리들에겐 힘들어하는 내색조차 보이질 않았다. 지금도 가슴이 할퀸 아린 것은, 자두밭 농막 안에서 매일을 하루같이 홀로 냈을 안타까운 10년 세월 동안 우리가 원기에게 보여준 이런 못무심함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무슨 말로 그를 위로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손을 잡을 땐, 저마다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마주 쥔 손에서 살짝 기운과 온기가 돌았다고 했다. 병실을 나서며 마주친, 물기로 젖은 원기의 잿빛 눈빛이 어쩌면 마지막 보는 모습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몇 번이고 되돌아보곤 했지만, 원기는 미동조차 없이 이런 우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병실을 다녀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원기는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날은 원기와 둘도 없는 친구 세찬이의 아들 혼사가 있던 날이었다. 식장에 들러 축하를 해주고는, 바로 돌아서서 비통한 마음으로 원기를 보러 갔다. 한사코 말렸음에도, 세찬이는 혼사를 마치자마자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한달음에 장례식장으로 달려왔다. 말은 안 했지만, 자리를 함께 했던 그 누구보다도 애통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내 친구, 원기야

원기야
늦은 밤, 영정(影幀) 속의 넌 멀찍이서
우릴 보고 빙긋 웃고 있더구나

좀처럼 소리 내어 웃은 적 없던 네가
오늘, 하필이면 그곳에서 웃는 웃음이
마음속에서 그렇게 슬픈 울림 되어
눈물 젖게 할 줄 누가 알았겠니?

지난 목요일,
생의 마지막 끈을 끝내 놓지 않고,
넌 옛 동무들을 기다려 주었더구나

머리 가눌 힘조차 없는 너에겐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를 곳에서
문득 들려왔을 목소리가
몹시 그립고도 낯익었을 테지

간절한 마음으로
가득 따라 네게 건네 진
고작 한 뚜껑의 음료조차도,
단 한 번의 목 넘김은
네겐 죽을힘 다 해야 할
생사의 고비였음을,
우린 뒤늦게야 알았구나

옛 동무의 우정,
한 방울도 소홀히 할 수 없어
그토록 애써 꾹꾹 눌러
속울음 삼켜가며
마지막 삶을 이어가려 했구나

고맙다, 원기야
진정으로 고맙구나, 원기야!
네 아내, 사랑하는 아들 딸
네가 있어, 거두고 일궈 놓은 가정
이토록 반듯하기에,
너를 영원히 떠나보내며
미안하지만
한 마디만 하련다, 원기야

네 부은 종아리 풀어주던
성일이와 효순이 손길
부디 잊지 말아라

황망스런 마음 가누지 못해
돌아서 애써 삼킨
종애 지희 정희 눈물도
잊지 말아라

먼 곳에서,
너의 마지막 가는 길
마음으로 나마 함께 한
옛 동무들 우정도
부디 잊지 말아 다오

이제 6월이 다 가고
너의 삶은 끝이 났구나
의성, 이름 모를 산자락서
애지중지 가꿔 온 자두밭
그리고 주인 잃은 자두들,
네 마지막 흔적이 되어
곱게도 영글겠지

원기야
이젠 모두 내려놓고
편히 쉬도록 하렴
네 손길 곳곳 묻어 있는 곳,
그토록 꿈꾸던 보금자리에서
부디 아프지 말고
빙긋 웃음 띤 얼굴로
우릴 맞이해 주렴

너와 함께 한  6월의
한 자락을 추억하면서
우리, 마음껏 웃어도 보고
슬퍼도 할 수 있도록
부디, 이 6월 다 할
그날까지라도
우릴 지켜보아 주렴

줄곧 만남을 이어 온 원기의 느닷없는 죽음은 슬프면서도 선뜻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 또한 있는 게 사람의 삶이라지만, 61년의 삶에서 겨우 하루만 넘기고 급히 떠나버린 원기못내 야속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직도 너무 그립다.


원기가 세상을 떠나던  늦가을부터 코로나가 세상을 덮치면서, 변명 같지만 그동안 정말 경황이 없었다. 아버지가 1년 가까이 환(患) 중에 병상에만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고, 지난해 나는 37년의 교직 생활을 마감했다.


돌이켜보니, 원기가 생전에 보내온 자두 말고는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자두를 입에 댄 적이 없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어 과일 가게 앞을 지나다가 진열된 자두를 보면 늘 원기 생각이 난다. 그리 크지도 은 올망졸망한 자두가 너무 맛있어, 따로 보내온 상자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모두 먹었었는데, 원기가 죽은 이후로는 웬일인지 굳이 자두 쪽으로 눈길이 가질 않았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올해 정년을 앞둔 세찬이가 자기가 살고 있는 울산을 마다하고 의성에 땅을 마련해서 텃밭을 가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속 깊이 간직한 친구를 잊지 않는 것, 어찌 보면 요즘 세상에서 우리들처럼 살아가는 것을 이젠 더 이상 흔히 볼 수 없게 되었지만, 함께 추억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은 여전히 고마운 따름이다.


아마 지금쯤은 냉장고 속에 재워  자두가 시원하게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원기네 자두와는 품종이 다른 것인지 몰라도 크기가 훨씬 굵고 색깔도 노랗게 붉은빛이 돌지 않는 것이 거의 황도(黃桃)에 가깝다. 박스를 뜯다가 슬쩍 맛을 보았는데, 단맛보다는 신맛이 강해서 내 입맛에는 사실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아삭한 식감은 나무랄 데 없이 싱싱한 자두여서 그런대로 청량(淸凉)맛은 있었다.


이제 장마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7월이 다 가기 전, 세찬이가 텃밭을 일구고 있는 의성을 한번 다녀와야겠다.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고, 주말마다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자주 있는 편이라 말을 앞세우진 못하겠지만, 반 친구들 모임을 조만간 가지려 마음을 먹으니 벌써부터 친구들이 그립다.










작가의 이전글 젊은 날의 내게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