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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Aug 02. 2022

3학년 4반 이야기

Never-ending Story

벌써 일곱 달 가까이가 흘렀다. 몇몇 제자들과 어울려 어촌 마을 펜션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내며 8월에 시간을 내어 자리를 만들어 보자고 약속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유수(流水)라더니 정말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 흘러가는 세월을 생각 없이 무턱대고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8월이 얼른 오기를 오매불망(寤寐不忘) 기다리고 있자니 정말이지 기다림의 시간이란 생각보다 훨씬 더디게 흐른다.


1985년에 교직에 첫발을 내딛고 나서, 이듬해에 1학년에 입학해 인연을 맺은 아이들과는 졸업할 때까지 줄곧 3년을 함께 했다. 나에게 바로 첫 제자가  의미 있는 학생들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과분할 만큼 여러모로 뛰어난 인재들이 수두룩했다. 나이로는 나와 열 살의 차이가 나니 벌써 쉰셋의 중년에 이른 셈인데,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이들 얼굴을 떠올리면 고등학교 시절 머리 깎은 풋풋한 얼굴 모습부터 여전히 먼저 떠오른다.


다가오는 토요일까지는 아직 4일이나 남았는데, 벌써 가슴은 설레고 요동친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전, 네이버 블로그에다 있었던 감동을 글로 남긴 적이 있는데, 그때 쓴  '3학년 4반 이야기'를 다시 이 자리에 소환했다. 말 그대로 '네버엔딩 스토리(Never-ending Story)', 우리들 사연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은 제자들이 사회에서 왕성하게 일을 할 나이인 데다, 하필이면 이 시기에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릴 조짐이 있어, 자리를 함께 하려고 음부터 다짐을 해 두었던 몇몇 제자 참석이 여의치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뭔 대수인가? 이번 모임을 기화(奇貨)로 삼아 이들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만들어  스토리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이어질 인데, 그러면 되지 않겠는가!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의 마중물로, 지난 1월에 써 두었던 '3학년 4반 이야기' 글다시 물길을 내고자 한다. 누구에게든 학창 시절을 함께 한 그리운 얼굴들이 있을 것이고, 우리들이 이 자리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어쩌면 글을 읽는 여러분 자신들의 이야기이도 않을까, 한편으로 미리 조심스러운 생각도 해 본다.


이른 새벽 눈을 떴습니다. 창문 밖으로는, 환호공원 곳곳의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과 스페이스 워크가 제각기 불을 환히 밝힌 채 깊어가는 겨울 공원의 아름다운 야경(夜景)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넉넉히 10시쯤 만나기로 했으니 아직은 시간많이 남있어 1박(泊)의 외출 채비를 뒤로 잠시 늦추기로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으나 오히려 눈만 멀뚱멀뚱했습니다.


10시 가까이 되어 집 앞까지 데리러 온 병준이의 Jeep에 올랐습니다. 내가 앞자리에 앉으니 재윤이는 어쩔 수 없이 뒷자리에 누워 가다시피 하는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하는 차박(車泊)을 하려고 뒷좌석을 아예 잠자리로 꾸미고, 나머지 대부분의 공간에는 캠핑에 필요한 용품(用品)들로 가득 차 있어 부득불 편한 앞자리를 나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2시, 순찬이와의 점심 약속에 맞춰 죽도시장 안 '엽이네 횟집'에 도착하려면 여전히 시간이 넉넉해서, 환호공원을 잠시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요즘 포항의 핫플레이스인 스페이스 워크를 찾았는데, 열 시 개장(開場) 시간에 맞춰 온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강추위에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조형물 주변에서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餘念)이 없었습니다. 하필이면 때를 맞춰 강풍주의보가 발령(發令)되고, 실제로도 바람이 거세서 출입이 제한된 터라 사람들이 스페이스 워크에 직접 올라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뒷날을 기약(期約)하며 환호공원 둘레길을 둘러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제나 삶의 활기로 넘치는 곳, 죽도시장은 여전히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길게 이어진 대기(待機) 줄로 인해 공영(公營) 주차장 안으로의 진입은 엄 내지 못하고 시장 주변 헤매다 어시장(魚市場) 입구 횟집 앞 주를 했는데, 운 좋게도 주차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골목 맞은편에 사설(私設) 주차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 역시 사유지임은 분명한데, 주차안내 표지(標識) 조차 없는 것이, 아마 회센터의 수족관을 가득 채울 갖가지 활어(活魚) 하차(下車)를 위여유 공간인 듯이 보였습니다.


식당에 들어서서 얼마 되지 않아, 이곳으로 우리를 초대(招待)한 순찬이를 필두(筆頭)로 재현이와 여러 명의 낯익은 제자들이 속속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특히, 21회 졸업생인 영준이는 자신이 속한 로펌 사무실이 포항에도 개소(開所)되어, 앞으로 한동안 이곳에서 근무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순찬이가 경매(競賣)로 확보한 대구(大口)를 지리로 끓여 낸 대구탕은 그대로 진국이었습니다. 생태(生太) 대구탕은 냉동(冷凍) 대구를 재료로 쓰는 일반 대구탕에서 흔히 볼 수 있듯, 대구가 손질한 그대로 끓여지는 것이 아니라, 끓이는 과정에서 생태의 육질(肉質)이 물러져 탕(湯) 속에서 대부분 풀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술을 마시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식사 중에 소주라도 한 잔 느긋이 마시면서 서로 정담(情談)을 나누지 못한 게 무척 아쉬웠습니다.


오늘 하루를 묵을 장소자리 잡은 곳은, 고향인 도구에서 든든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리 반 부실장 장해 소유(所有)의 어촌 마을 펜션입니다. 바로 눈앞에 바다를 둔 민가(民家)를 쉬엄쉬엄 시간을 두고 취미 삼아 손수 리빌딩하고 리포밍(reforming) 한 것이 무려 세 곳이나 되는데, 혼자 힘으로 꾸민 것이라곤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겉으로 보이는 미관(美觀)이 그럴듯한 것은 물론, 직접 들어와 생활하기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오는 도중에 장해를 만나 마트에서 함께 본 장거리펼치니, 이 좋은 곳에서 네 명 만으로 하룻밤을 단출히 보낸다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급히 호출(呼出) 한 것이  전 점심을 함께 했던 재현이와 오후 장사 준비 한참 정신이 없을 현재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성원(成員)이 다 찰 때까지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가며 온갖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호출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급히 서둘러 온 것이 분명한데도 고가(高價)의 양주 한 병까지 챙겨 온 현재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살짝 아쉬운 것은, 새벽부터 식당의 주 메뉴인 육개장을 진국으로 우려내기 위해 함께 밤을 새지 못하현재를 위해 대리 운전을 의뢰(依賴) 해야 하는데, 포항을 한참 벗어난 외곽지(外廓) 어촌 마을로 대리 운전기사를 불러내기란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궁즉통(窮卽通)이라 했던가요? 학창 시절 검도부원이던 재만이가 투잡으로 대리를 뛰고 있는데, 요식업 특성상 대리 운전 정보에 밝을 수밖에 없는 현재가 마침 재만이를 떠올려서, 12시 이전까지 이 먼 곳까지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추장스럽던 모든 것이 해결되자 드디어 우리들끼리의 쇼 타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선생님과 친구들이 관련된 재미난 학창 시절 추억담이 쏟아지는데, 이는 더할 나위 없이 술맛을 돋우는 안줏거리였습니다. 그 지난(至難)시절을 함께 했 선생과 학생들이, 당시 한쪽은 몰랐었고, 설사 알고 있었더라도 서로 입장이 달라 도저히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이만한 세월이 흘러 상대방 관점으로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어찌 재미나지 않겠습니까?


비록, 스승과 제자 사이이긴 하지만 불과 열 살의 나이 차 밖에 나지 않는 데다 제자들 나이마저 이미 쉰을 훌쩍 넘겨, 어떻게 보면 같이 늙어간다는 말을 들어도 서로 섭섭지 않을 그런 나이에 접어든 우리들입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의 입장으로 지켜본 학창(學窓) 시절 자신들의 어릴 적 모습과, 부모님 사이에서 있었던 막후(幕後)에 가려졌던 이야기들이 이들에게는 무척 낯설고 신기했나 봅니다. 제자들 입장에서 들려주는 여러 선생님들과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나 억울하고 분한 심정으로 애꿎게 맞았던 이야기, 야간 자율학습이나 성적에 얽힌 갖가지 이면(裏面)의 말 못 할 사건사고들은 지금 같으면 들어서 당장 모골이 연해질 이야기들입니다. 이와 더불어, 아직까지 여전한 모교 사랑 등 여태껏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여러 이야기들과 함께, 쫄깃쫄깃한 우리들 말의 성찬(盛饌)은 밤늦도록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습니다.


안주로 사 온 대방어회, 문어숙회와 함께 장해가 손수 고안(考案)해 장만한 항아리 화로에서 삼겹살이 거의 익어 갈 즈음엔 한껏 취기가 올라왔습니다. 준비성 많은 병준이와 현재가 준비한 휴대용 스피커와 반주기를 통해 학창 시절 즐겨 불렀던 애창곡과 팝송이 블루투스 기능을 빌어 연주 는, 도저히 그 흥 주체하지 못해 모두  일어나 함께 춤추고 목청껏 노래했습니다. 사실, 현재가 가져온 싱글 몰트(single malt) 위스키와 적지 않은 소주를 맥주와 함께 급하게 마시다 보니, 새벽부터 설쳤던 잠과 함께 취기(醉氣)가 물밀 듯 몰려왔습니다. 항아리 삼겹살이 어찌나 맛있던지 급히 몇 점을 욕심내어 먹고는, 조심해 가라는 말로 현재에게 미리 양해(諒解)를 구한 다음 제자들이 안방에 마련해 놓은 잠자리에 먼저 몸을 뉘었습니다.


새벽 동해안의 바람은 여전히 거세어서 푸른 파도가 이를 타고 기세(氣勢) 좋게 밀려오고 있습니다. 주위의 경관(景觀) 잘 어울리는 장해의 어촌 마을 펜션은 하루를 묵었음에도 너무나 친근하고 익숙해져서 마치 내 집인 듯 편안했습니다. 다가 여름에 다시 찾을 기약(期約)과 함께 떠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구룡포로 향했습니다. 그리로 가는 도중에 장해의 제안으로 카카오 톡 대화방 함께 모일 공간(空間)을 마련해서, 저마다의 인연과 기억을 더듬어 우선 연락되는 친구들부터  사람씩 초대(招待)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해장으로 복지리탕을 먹는 자리에서도, 시장 거리를 오가며 해풍(海風) 국수와 건어물을 사는 자리에서도, 일본인 거리의 적산가옥(敵産家屋)을 둘러보면서 들린 커피숍에서도 친구 초대하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초대된 인원이 금세 스무 명을 훌쩍 었습니다. 특히, 바로 자신의 모습을 셀피(selfie)로 찍어 보내라는 챌린지에 바로 답장을 준, 한산도 섬 사나이 만호의 얼굴 사진이야말로 그중에서도 압권(壓卷)이었는데, 한참을 서로 웃으며 변치 않은 의 소탈(疎脫)스러운 성정(性情)과 여전히 사내다운 모습을 보며 마음이 즐거워졌습니다.


포항 물회를 반드시 먹고 리란 병준의 소망에 부응(副應) 코자 점심을 물회로 정하고 구룡포를 떠난 우리는 가는 길에 연오랑 세오녀 둘레길을 찾았습니다. 탁 트인 바다 기슭으로 도구해수욕장의 드넓은 모래사장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한눈에 들어오는 포항 시가지 풍경이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배경 삼아 가히 절경(絶景)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테마공원 둘레길의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남기면서 공원 안에 있는 누각(樓閣)에 오르는데 때맞춰 네 명의 숙녀들이 우리 뒤를 따르길래, 이곳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남길 목적으로 그중 한 명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포즈취하던 중 병준이가 우리 넷 가운데 누가 선생님인지를 가려보라고 농을 쳤는데, 뜻밖에도 가장 탄탄한 몸을 가진 병준이 자신을 지목(指目) 한바탕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과 어울려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는 까닭 모를 착각이 그녀의  한마디로 면죄부를 받은 것 같아, 당장 병준이 눈치가 보이긴 해도 슬그머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임곡 횟집'에서 가자미 물회를 맛있게 한 그릇씩 비우고 포항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장해의 마지막 배웅을 받은 후, 송도동에 있는 용석이 사무실을 거쳐 우리 집에 도착을 하니 오후 5시를 막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동지, 병삼이 와는 정말 오랜만에 통화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먼길 왔음에도 제자들에게 변변한 밥 한 끼 대접하지 못하고 오히려 1박 2일의 여정(旅程) 내내 짐만 된 것 같아 고마운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어제와 오늘을 함께하는 동반(同伴) 여행이 있었기에, 졸업연도 1989년 3학년 4반 제자들이 모처럼 만의 자리를 만들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다음 모임의 기폭제(起爆劑)가  것 같아 마음 뿌듯합니다. 아직 연락이 닿지 않은 제자들까지 포함하여, 어린 시절 맺었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서 이해득실 따지지 않고,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는 인간관계로 줄곧 이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병준이와 재윤이가 떠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며칠 전 산책길에 머릿속에 떠올라 메모해 둔 글귀가 생각납니다.


'눈이 맑지 앓으면 마음도 맑지 않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맑지 않으면 세상을 보는 눈도 맑지를 못하다.'


나는, 33년 전 눈과 마음이 맑은 아이들 쉰여덟 명을 제자로 두었고, 이 자랑스러운 아이들은 하나같이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모습들은 제각기 다를지라도, 오늘은 비록 몇몇 제자들 눈을 통해서만 바라보고 그 마음으로 받아들인 세상이었지만, 이 세상은 아직도 나에게 있어선 온 몸이 떨리도록 미칠 것 같이 맑고 아름답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정신적, 물질적으로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 상황 아래서, 힘든 내색 없이 전혀 이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이겨내고 있을 우리 3학년 4반 제자들에게 이 글을 통해 진심으로 위로(慰勞)와 격려(激勵)의 마음을 전합니다.


미처 연락 닿지 않는 제자들도 카카오 톡에 초대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속속 들려오기를 기대하면서, 3학년 4반 제자들의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와 앞으로도 이어질 무궁무진(無窮無盡)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계속 쉼 없이 이어지기를 간절(懇切)하게 소망해 봅니다.



수원에서 먼 길을 달려 온 재윤이와 병준, 둘 다 선생님이다.
스페이스 워크를 배경으로 한 컷
갖 경매한 대구로 만든 지리탕
펜션 바로 앞 바닷가
동해 바닷가엔 기암괴석이 많다.
마침내 성원이 되어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음주가무의 즐거운 한 때
장해가 편백으로 직접 꾸민 방
구룡포로 떠나기 전, 펜션 앞에서 찍은 기념 사진
구룡포. 조형물 앞에서. 좌로부터 재윤, 병준, 나, 장해
일본인이 생활한 적산가옥에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연오랑 세오녀 테마공원 안 둘레길에서 바라 본 바닷가 풍경
폭풍의 언덕에 선 듯 바람이 세찼는데, 멀리 포스코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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