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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Aug 10. 2022

3학년 4반, 네 번째 이야기

The Second Day of Homecoming

지난겨울, 하룻밤을 보낸 장소가 오늘과 다르긴 해도 이곳에서 새벽을 맞은 적이 있다. 거센 바람에 크게 파도가 일렁이는 동해 바다의 일출(日出)을 기대했지만 이는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다. 포항시를 뭍으 밀어내며 길게 만곡(灣曲)을 이룬 영일만 반대쪽인 이곳은 눈앞의 수평선이 아닌 등  언덕배기로부터 해가 솟아오르기 때문인데, 마침 오늘은 날이 잔뜩 흐려있어 어느 쪽으로든 애초부터 일출을 보기란 글렀다. 밖에서 두런대는 소리로 미루어 누군가 일출을 보려고 첫새벽부터 부지런을 떤 모양인데, 지난밤 미리 귀띔이라도 해둘 걸 하는 생각이 어슴프레 들었다.


잠시 화장실에 들러 술냄새 풍기는 입을 양치질로 헹구고 나서 문밖으로 나왔다. "선생님!" 하며 몸을 던지며 달려드는 사람이 있어 엉겁결에 끌어안으며 마주 내미는 손을 잡고 보니, 종갑이다. 지난밤에 위문(慰問) 오기로 약속했지만 사정이 있어 오지 못한 두 사람 가운데  명인데, 졸업한 이후로는 정말 처음으로 얼굴을 직접 보았다. 종갑이는 학교 운동부인 조정부(漕艇部) 출신인데 종목의 특성상 체구가 엄청 크고 힘이 좋았다. 서로 반갑게 포옹하는 우릴 보고 누군가 옆에서 싱겁게 한마디 한다.


"종갑이 니는 운동부라서 공부와는 거리가 먼 데다 담임선생님도 아닌데, 어째 우리 선생님하고 이리 친하노?"


이 말을 듣고 빙긋이 사람 좋은 웃음을 입가로 흘리며, 종갑이가 뜻밖에도 닭살 돋는 대답을 다.


"박 선생님은 학창 시절 운동부라 해서 막 무시하거나 그러지 않고 우릴 너무 잘 대해 주셨잖아. 시합 나갈 때마다 따로 불러서 격려도 해 주시고, 그기 참말로 고마웠데이!"


학교에서 엘리트 운동부로 육성하는 종목은 검도부와 조정부였는데, 당시 두 운동부는 나름대로 각각 전국을 제패(制覇)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88 올림픽과 맞물려, 정책적으로 시도(市道) 불문하고 집중 육성 중에 있었던 조정 종목은, 전국체전을 눈앞에 두고 우승을 위한 경쟁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했는데, 아침에 등교를 하고 나면 조정부를 승합차에다 태워 곧장 형산강으로 연습을 하러 가곤 했다.


학교 체육관 입구의 넓은 여유 공간에는 근력()을 집중적으로 키우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웨이트 시설을 갖춰 놓았는데, 월요일 예배 조회를 앞두거나 형산강에서 배를 타지 않을 때는 조정부 학생들이 이곳에서 근력을 다지는 훈련다. 산(山) 만한 체구를 가진 아이들이 100kg를 훨씬 웃도는 중량(重量)을 쉽게 밀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 틈나는 시간 기구(器具) 에다 슬쩍 몸을 뉘고 안간힘을 다 해 중량 실린 발판을 밀어 올려 보았지만 아예 요지부동이었다. 코치 선생님이 바로 옆에 붙어 서서 잠시라도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웨이트 기구 사이를 번갈아 내돌릴 때, 헉헉거리며 불평 한마디 않고 훈련에 매진하는 운동부원들을 지켜보면서, 이들 또한 교실에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는 일반 학생들과 다를  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했었다.


사실 종갑이 남다른 사연이 있어, 얼굴을 맞대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시간이 필요하기는 했다, 지금, 교감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는 김 선생님이 바로 종갑이의 매제(妹弟)가 되는데 김 선생님이 신입교사이던 시절, 문과와 이과 특설반 파트너로 나와 함께 학생들을 지도한 적이 있을 만큼 각별한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새벽 댓바람에 전화를 받은 김 선생님이 깜짝 놀란 듯 안부를 되물어오기에 바로 현재의 상황을 빠짐없이 이실직고(以實直告)했다. 안 그래도 지난밤 형제모임에서 얼핏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인지 놀란 마음을 이내 가라앉히기는 했지만, 이토록 이른 시간에 김 선생님 집을 몰래 빠져나와 이곳으로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고맙게도, 숙취(宿醉)해소(解消)할 수 있도록 비싼 컨디션에다 고급 커피 음료까지 잔뜩 사들고 왔는데, 장모님과 점심 약속을 미리 해 두어 이후 일정을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종갑이가 포항으로 돌아가려 할 즈음에 지난밤 약속대로 영성이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왔다. 아침 겸 점심으로 구룡포의 '함흥 복집'에서  복지리탕을 먹어보자고 미리 의견을 모아  것이 있어, 서둘러 힘을 합쳐 주변 청소를 하고 난 뒤에 펜션을 나섰다. 한 시가 되면 새로운 손님을 받아야 하기에 숙소의 청결(淸潔)이나 위생상태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야 했으나, 몸이 재바른 주인장이 새벽부터 수고를 아끼지 않은 탓에 지난밤 치열(熾烈)했던 주취(酒醉)의 현장은 이미 말끔하게 정리가 끝나 있었다.


먼 길을 가야 하는 친구들이 있어 구룡포로는 각자 타고 온 차를 운전하도록 해, 아쉽지만 그곳에서 바로 헤어지기로 했다. 장해가 1시까지 펜션으로 되돌아와야 했기에 영성이가 다시 이곳으로 태워주는 수고를 기로 하고, 펜션을 나서 구룡포로 출발한 시간은 아침 열 시를 넘어서고 있을 때였다.


구룡포 여름휴가를 즐기러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포항을 중심으로 확진자 수가 천명을 훌쩍 넘어섰는데도 경계심을 일순(一瞬) 풀고 난 후의 혹독한 대가(代價)인 듯, 불어난 물이 제방 둑 넘나들 듯 거칠 것 없이 코로나가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만연하고 있다. 마스크를 코 위로 추슬려 올리고 복집 안으로 들어서니 아래층은 이미 손님들로 만석(滿席)이다. 사장님 안내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 가 자리에 막 앉으려는데, 바로 뒤를 따라 10여 명의 손님들이 올라오더니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네댓 살의 아이까지 서너 명 포함된 대가족인데 다소 시끄럽긴 해도 보기가 너무 좋다. 그래! 이게 바로 사람 사는 맛인 걸.


여덟 명이 뜨거운 복지리탕을 앞에 두고 열심히 속을 식히고 있는데, 종억이의 표정이 영 마뜩잖다. 어제, 낮부터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술로 인해 속이 거북해서인지 한두 술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입 속으로 넣다 말고는 이내 고개를 젓는다. 말은 안 해도 그 심정 잘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들 말이 없다. 건설회사 고참 부장님이라 하면 술자리도 만만치 않게 잦을 터인데, 오랜만에 친구들과 해후(邂逅)자리라 밤늦도록 열심히 달리고 달린 탓인지 본인도 모르게 그만 오버 페이스를 하고야 말았다.


국물까지 말끔히 비울 때쯤, 냉수를 한 잔 시원스럽게 들이켜고 난 후 속이 제대로 풀리기 시작했는지 종억이의 언변(言辯)이 다시 화려하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럴 땐 말이 더 이상 길어지기 전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KTX로 예매해 둔 시간에 맞춰 동한이가 포항역에 도착하려면 지금 급히 서두른다 해도 시간이 빠듯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온 영성이가 지난밤 자신이 한 약속대로 점심을 샀는데, 사실 서둘러 아침에 온 이유가 친구들에게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음을 어찌 우리들이 모를 수 있겠는가?


구룡포 하면 우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적산가옥(敵産家屋)이 여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일본인 거리와 영덕 대게와 쌍벽을 이루는 구룡포 대게(사실은 둘 다 동해안 최대 어장인 대화퇴에서 잡아들인 것이다), 11월부터 해풍(海풍)에 얼려가며 말린 구룡포 과메기, 갓 잡은 해물을 소라 등 패류(貝類)와 섞어 얼큰하게 끓여 낸 모리국수,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심심찮게 방송을 통해 보도된 바 있듯 옛날 방식 그대바닷바람에 널어서 말린 해풍 국수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해풍 국수는, 지인들이 포항을 방문해 함께 구룡포 시장을 들릴 때마다, 비닐 포장이 아닌 종이띠로 둘레를 묶어 포장한 옛날식 국수를 맛이나 보라며 서너 타레 손에 들려주곤 했었다.


매스컴을 통해 얼굴이 널리 알려져 있는 주인 할머니 큰 아들은 나와 서로 호형호제(呼兄呼弟) 하는 사이이기도 한데, 우리 막내와 할머니의 손녀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맺은 인연이 20년 가까이 길게 이어졌다. 할머니와 큰 아들은 보이질 않고, 수년 전 자신의 형과 어울려 스크린 골프도 함께 친 적이 있는 이 집 막내아들이 마침 가게를 보고 있었는데, 희미한 기억 속에서 과거의 인연을 되살리기까지는 주저리주저리 지난 일을 또 들춰내야만 했다.


예전, 친구에게 국수를 박스 채로 선물했더니 양이 지나치게 많아 묵히거나 다른  나눠주었단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턴 서너 차례 먹을 양만큼만 지인들 손에 쥐어주곤 는데, 한 타레의 국수 양이 10인분 정도라 하니 한꺼번에 끓여 먹기에는 적은 양이 아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승대가 박스 채로 돌리려 해서 간신히 말리고 나니, 계산하라고 카드를 곧장 주인에게 건넨다. 국수만큼은 제자들 손에 하나씩 쥐어 보내고 싶은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서너 명이 달려와서는 승대와 나 사이로 병풍을 두른다. 괘씸한 녀석들 같으니! 그래도 이 순간, 겉으로 내보인 기색(氣色)과는 달리 속마음은 너무 흐뭇하기만 하다.


시장터를 둘러보며 주차장 쪽으로 빠져나오다가 병준이가 건어물상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올 겨울 함께 이곳에 왔을 때, 말린 오징어와 몇몇 건어물을 는데 그것이 무척 입맛에 맞았던 모양이었다. 만 원짜리 건오징어 세 마리 포장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승대가 불쑥 앞으로 나서더니 크기가 그보다 훨씬 선상(船上)에서 말린 열 마리 묶음의 오징어를 주인에게 내밀고 흥정도 없이 대뜸 가격부터 묻는다. 포장지 위에 분명한 가격 없이 '시세(時勢)'라고만 적혀있으니, 아마 부르는 게 값일 것이다. 얼핏 들으니 사만 오천 원이라고 부른 것 같은데, 진열되어 있는 상품에 보태서 여덟 개로 맞춰 가져오라는 소리를 듣고는 그때서야 친구들이 화들짝 놀라 승대를 한사코 말렸다.


승대는 지난밤부터 못내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다. 친구사이이기에 대놓고 말은 않았지만 숙소부터 술과 안주 등 모든 것을 준비해 놓은 장해와, 문어를 미리 준비한 병준이와 재윤, 비행기까지 타고 내려와 합류한 동한, 여러 가지 과일을 사 온 종억이와, 지난밤 별미(別味)의 음식들을 준비해서 위문 차 온 포항 친구들 마음 씀씀이까지 굳이 알려고는 하지 않았지만, 친구들 마음 하나하나가 무척 고마웠던 것이다. 처음엔 나부터 말리려 했지만 그 마음을 익히 잘 알고 있기에, 서로 옥신각신 오징어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모습을 흐뭇한 마음으로 모른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주차장에 이르러선 아쉬운 마음에 바로 헤어지지 못하고 서로 맞잡은 손을 놓을 줄 몰랐다. 뒤를 잇는 모임은, 한산도에서 섬 생활을 하고 있는 만호의 초청으로 그곳에서 다음 모임을 하기로 정해졌고, 강화도에서 텃밭을 하고 있는 동한이가 그다음 순서를 잇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장해도 이곳 어촌 마을 펜션을 친구들에게 열어두고 있을 테니, 시간만 미리 정해서 통보를 해주면 된다고 그 위에다 또 손을 얹는다. 다만, 건강이 서로 걱정되어 중년 사내로서 앞으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안부 삼아 돌아가며 당부를 하고는, 멀리 사는 순서대로 발걸음을 다. KTX를 타고 가려고 예약까지 해 두었던 동한이가 수원까지 병준이 차로 함께 가기로 했다니 마음속 짐을 한풀 내려놓은 듯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영성이 차에 올라 다시 장해의 펜션으로 되돌아오니, 울산에서 온 손님들이 한 시간 일찍 방에다 여장까지 풀고는 그 새 바닷속으로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머지 두 군데 펜션도 돌아가며 손님 맞을 준비를 서둘러야 했으므로, 장해를 뒤에 남겨 둔 채 의 시동을 거니 벌써 오후 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전교조 활동으로 잠시 해직까지 당한 적이 있는 초등학교 교사 영성이는 참으로 반듯한 선생님이서 자랑스럽기가 그지없다. 현직 교사로서 초등학교에 몸 담고 있는 재윤이와 영성이, 중학교 선생님 병준이, 이번에 자리를 함께 하진 못했지만 늘 안부를 여쭙곤 하는 고등학교 선생님 중현이, 경희대학교 지리학과 교수인 진무까지 포함해서 이들 다섯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숭고(崇高)한 길을 묵묵히 따르청출어람(靑出於藍)제자들이기도 하다.


한사코 뿌리치는 것을 마다하고 차에서 내려 아파트 현관 앞까지 가방과 짐을 들어주고 돌아서는 영성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모든 것을 끝내고 난 뒤의 짙은 여운(餘韻)이 머릿속에 남아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올해가 시작되 2월에 접어든 겨울 어느 날, 카카오 톡에다 3학년 4반 대화방이 만들어지면서 Homecoming Day의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저 이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이제 첫 번째 모임까지 순조롭게 마치고 나니, 앞으로 이 모임의 진정한 주인이 될  나머지 제자들 안부가 무척 궁금해진다. 서로 잘 나고 못난 것 없이 푸르던 지난 시절의 풋풋한 추억을 공유(共有)하며, 이들 사이에서 앞으로의 삶도 더욱 윤택해지기를 간구(懇求) 해 본다.


밤늦은 시간, TV를 통해 수도권을 강타하고 있는 물벼락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며, 어제와 오늘 이틀 간에 걸쳐 누린 호사(豪奢)가 괜스레 미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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