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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Aug 08. 2022

3학년 4반, 세 번째 이야기

The First Day of Homecoming

지난밤은 무척 더웠다. 일찍 잠자리에 들긴 했지만, 졸음이 쏟아지기 전까지는 한참을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여야 했다. 마치 처음 신어 본 신발처럼, 뭔가 모를 불편함으로 어느 쪽으로 돌아눕던 눕는 족족 신경에 거슬렸다.


설핏 잠이 들었었나 보다. 도로 노면 청소차의 경보음 때문에 깜박 눈을 뜨니 전날 맞춰 두었던 알람보다도 두 시간이나 이른 새벽 5시였다. 선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침대를 내려서는데 의외로 몸은 가벼웠고 정신을 맑았다. 거실에서 바라본 동쪽 하늘은, 층층이 겹쳐있는 두터운 구름 탓인지는 몰라도 동이 틀 때의 붉은 기운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안팎이 다르지 않은 습한 열기가 어쩌다 한 번씩 불어오는 미풍에 실려 이 방, 저 방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옷가지 몇 개와 세면도구를 샌들과 함께 보스턴백에 챙기고 나서 서재로 건너와 컴퓨터를 켜는데, 그새 이마로는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있다.


열한 시에 태우러 온다던 약속은 한 시간이나 앞으로 당겨졌다. 지난 밤늦게 영일대 해수욕장에 들러 포스코 야경과 함께 영일만 밤바다의 정취에 흠뻑 취했던 병준이와 재윤이는 자정을 넘어서야 임곡의 펜션에 도착던 모양이다. 장해가 따로 잠자리를 마련해 두었지만, 펜션 앞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바닷가에 넓게 쳐 둔 그늘막 아래에다 가져온 텐트를 따로 치고 나서, 곧장 바닷물에 발을 담그곤 밤이 다할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러다 둘 다 깜박 든 동틀 무렵에 이미 난 잠에서 깨어나 있었으니, 오늘 새벽만큼은 서로 시간을 거꾸로 보낸 셈이었다.


병준이가 포항으로 내려오는 길에 죽도시장 순찬이에게 미리 문어를 주문해 둔 것이 있어서 함께 이를 찾으러 갔다. 77번 경매인이면서 어시장에서 문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순찬이는 동기생들에게는 친구이면서, 특히 타향살이를 하는 이들에겐 고향과 같은 존재이다. 친구들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팔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는 데다, 후덕한 몸매만큼 마음 씀씀이도 넉넉해서 죽도시장을 들릴 땐 순찬이를 찾지 않을 동기들이 드물 정도이다. 또한, 졸업을 하고나서부터는 동창회에도 깊이 관여해서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리저리 발 벗고 나서는가 하면, 모교 발전을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동문들 사이에서도 훈훈한 미담(美談)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순찬이가 사무실로 쓰고 있는 냉동창고를 구경하고는, 어시장 내 '운하 회 대게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물회를 먹었다. 이곳 역시 졸업생이 운영하는 곳인데, 물회와 함께 나오는 매운탕과 밥식해, 가자미 구이, 간장 게장과 새우장 등 푸짐한 밑반찬이 회 그릇을 가득 채운 참가자미 물회의 풍미(風味)와 더불어 그 맛이 유별났는데, 최근 먹어 본 물회 가운데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별미(別味)였다. 점심이라도 먼저 계산을 하려 하니, 냅다 달려온 병준이가 한사코 막아서면서 하는 말.


"선생님! 이번 나들이에선 선생님은 십원 한 장 쓰지 마이소!"


그런데, 이 말속에 깃든 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어쩔 수 없는 마음 한 구석은 짠하기만 하다. 나 역시 평생을 월급쟁이 선생 노릇을 해왔는데, 이들 형편인들 어찌 그리 넉넉할 수 있겠는가! 몇 해 전, 순찬이도 그랬다. 그때도 이렇게 셋이서 죽도시장엘 왔었는데, '엽이네 회식당'에다 미리 회와 함께 대게와 대하(大蝦), 소라 등 다른 해산물을 넘칠 만큼 준비를 해 두어 멀리서 온 친구들을 위해 마음 한쪽을 넉넉히 비워놓았다. 선생 된 입장에서 제자들 사이의 이 같은 우정을 지켜보는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흐뭇했지만, 그때도 순찬이에게 드는 짠한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바로 헤어질 수가 없어서, 순찬이 손에 이끌려 시장 안 커피숍에서 결국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한잔 마시고 난 후에야 오늘 하루를 묵게 될 장해의 어촌 마을 펜션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고마운 것은, 저녁때가 되면 순찬이가 14회 동기회장인 용석이와 다른 몇몇 동기들과 함께 이번 3학년 4반 동기회 모임을 축하해주러 온다는 것이다. 순찬이가 초임(初任) 동기회장으로 동기회의 초석(礎石)을 다지고 나서, 여러 헌신적인 동기회장들을 거치면서 14회는 그 기반(基盤)이 더욱 공고(鞏固)해졌다. 졸업한 후 40년 가까이 연륜(年輪)이 쌓여가고 있지만, 이들 동기회로부터는 그 어떠한 불협화음(不協和音)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의 학창 시절 3년을 온전히 함께 한 나로서는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장해는 벌써 친구들을 맞이할 준비를 끝내 두고 있었다. 우선 오는 순서대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로 하고, 잠깐 숙소에다 짐 정리를 하고 난 뒤 마당가 식탁에 자리를 폈다. 며칠 사이 물속에서 고생해서 잡은 전복을 성둥성둥 잘라, 얼음 속에 잘 재어 둔 맥주로 시원하게 입가심하며 맛을 보는데, 양식 전복 크기에 못지않은 자연산에다 이런 자리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귀물(貴物)이어서 그런지 맛이 각별했다. 우리들끼리 순배(巡杯) 돌리자마자 바로 뒤를 이어 마당으로 들어선 차에서 종억이가 내린다.


키가 껑충한 종억이는 흥해 촌놈이다. 재수(再修)를 해서 성균관대에 들어갔는데, 합격 소식을 뒤로하곤 지금까지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고 3 때, 공부를 독려(督勵)하면 싱긋이 농담 삼아하는 말이 자기는 애써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데, 자기네 땅을 딛지 않고서는 흥해 쪽으로 얼씬도 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나중에 선생님 팔자도 편케 해주겠다는 싱거운 소리를 듣고 나무라다 그만 피식 웃고만 기억이 난다. 뜨겁게 한 번 안아주고 나서 그때의 일을 되물으니, 머릿속에 그런 일이 있었는 것 같기도 합니다라며 한 발 물러서는 시늉을 하며 능청을 떤다. 자식 농사를 잘 지어 딸아이가 올해 7급 공무원으로 경북도청에 임용(任用)되어서 벌써 일하고 있다니, 마치 나 자신의 일인 듯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었다.


뒤를 이어 승대가 왔는데, 승대는 울산시의 고위공무원이다. 앞서 이야기 한, 솜뭉치로 엉덩이에 난 종기의 피고름을 닦아가며 고 3 온 여름 내내 공부와 씨름한 불굴의 의지를 가진 장본인이기도 하다. 졸업을 한 이후로도 줄곧 소식이 닿아 있던 중에, 공교롭게도 내가 3년 간 담임한 후배를 자신의 매제로 맞아들인 또 다른 각별한 인연이 있다. 3년 터울의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둘 다 3학년 4반이기도 했는데, 앞으로 이어질 글 속에서 둘 사이에 얽힌 소중한 인연을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네시 가까이가 되니 포항 공항으로 마중을 나간 병준이와 함께 동한이가 마당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동한이는 한국외대 법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군에서 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그동안 얼굴 본 지가  까마득했다. 다음에 글로 쓸 기회를 따로  마련하겠지만, 동한이 와도 재학 시절 잊지 못할 추억이 잔뜩 쌓여 있기에 항시 보고 싶어 하던 제자이기도 했다. 사실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조금 전 종억이를 맞을 때와 마찬가지로 동한이를 가슴속에 품으며 오랜만의 인사를 나눌 때는 일순 마음속을 울컥 치밀어 오르는 그 무엇이 있었다.


이때부터였지 싶다. 오늘 행사를 대비해서 병준이가 마련한 고출력 스피커를 설치하고, 무대 공연용 마이크와 함께 휴대폰을 이용한 반주기까지 설치하니 여느 바닷가 버스킹 무대 못지않았다. 해병대 출신답게 전투수영을 한 기억을 되살려 물속에 몸부터 담그고 나온 승대와, 오랫동안 바디빌딩으로 몸매를 다져 온 병준 선생님, 펜션 주인장 장해, 초등학교 교감선생님 재윤이, 건설회사 부장님 종억이와 내가 오순도순 햇빛을 피해 테이블을 옮겨가며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는데, 초등학교 선생님 영성이와 함께 앞서 말한 순찬이와 용석이, 동기회 사무국장 재현이가 잇달아 도착을 해서 술자리에 합류()했다. 문어를 내어와서는 순찬이가 따로 준비해 온 가자미를 즉석에서 튀기고, 참소라와 가리비찜, 전복을 버터로 구워 안주로 함께 내어 놓으니 술안주로 이 이상 가는 별미는 없었다. 


기억 속, 학창 시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돌아가며 하다 보니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먼바다부터 까맣게 어둠 속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멀리 포스코와 포항 시가지의 불빛이 가물거리고 있는데, 마치 파도 소리의 리듬에 휩쓸리며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날이 더운 데다 취기가 올라와서인지 온 몸이 땀투성이가 되었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통을 벗었다. 마당 안 간이 무대에서는, 교사 밴드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병준이가 Eric Clapton의 'Wonderful Tonight'을 연주하며 잔잔하게 노래를 하는데, 아닌 말로 정말 원더풀 한 우리들 만의 밤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났을 때가 떠오른다. 당시, 지방학교로는 드물게 밴드까지 꾸려 갔는데, 밤에 여관 마당에다 베이스와 세컨드 일렉트릭 기타, 전자올갠을 기본 구성으로 해서 드럼을 설치하고 난 뒤 악기끼리 서로 음을 조율(調律)하기 시작하면, 여관 주위로 수학여행 온 타지의 여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선생님들이 늘어서서 학생들끼리 안팎을 서로 넘나들지 못하도록 견고한 울타리를 칠 때쯤이면 오프닝 곡을 막 연주하곤 했는데,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건아들이 부른 '젊은 미소'란 노래였다. 사실, 급조한 밴드이고 연습한 기간도 짧아 리듬이 쉽고 경쾌한 김수철의 '젊은 그대'나 휘버스의 '그대로 그렇게' 정도만 겨우 연주할 수준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내 여관 안팎에서 떼창이 시작되었고, 흥을 못 이긴 몇몇 노는 녀석들이 마당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고고나 디스코 스텝을 밟기 시작하면 숫기 없는 녀석들도 슬금슬금 무리 속에 끼어들더니 곁눈질해 가며 친구들이 추는 춤을 어설프게 흉내 내곤 했다. 선생님 몇몇은 소심한 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도록 무리 속으로 밀어 넣다가 오히려 반별로 어울려 노는 원(圓) 속으로 끌려들어 가 어설픈 춤을 추느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지금, 그때의 학생들과 선생님이 삼십 년도 훨씬 넘는 세월을 지나 웃통을 훌훌 벗어젖힌 채 맨몸으로 그 노래들을 이어가며 부르고 있다. 병준이의 능란한 연주에 블루투스로 전자올갠의 연주까지 입혀지니 실물(實物) 밴드가  바로 옆에서 반주를 해 주는 듯했다. Saturday  Night's Fever!, 그야말로 토요일 밤의 열기가 깊어가는 바닷가의 밤을 활활 달구고 있었다.


문득, 모든 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치밀어 올랐다. 그 옛날 이들의 담임선생님이었던 시절처럼, 이 나이가 되도록 가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던 발걸음을, 이들과 함께 한 발짝 앞으로 내딛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들 말고 사위(四圍)는 고즈넉했고 어둠이 짙은 밤이었다. 반바지를 벗고 팬티바람으로 먼저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닷가에 살면서도 바닷물에 몸을 담근 것이 20년도 훨씬 지난 일인 듯싶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난날 교사로서 스스로를 단단한 각질(角質) 속으로 가두었던 나로부터 홀연히 벗어나 있는 듯한 생각도 들었다. 여전히 마당 무대에서는, 지난날 우리들이 함께 목놓아 불렀던 노래와 귀에 익은 올드 팝과 구성진 트로트, 간드러진 발라드가 끊김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취기를 식히고 끈적한 바닷물도 헹굴 겸 샤워를 하러 욕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발아래로 핏자국이 흥건했다. 깜짝 놀라 이곳저곳 주변을 둘러보니, 왼발 복숭아 뼈 아래쪽이 살갗이 길게 갈라져 있고 바로 거기서 피가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샌들을 신고는 있었지만 암초의 예리한 곳에 살갗이 미끌리며 마치 칼에 베인 듯 살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우선, 휴지로 지혈을 하고 나서 대수롭지 않은 듯 상비약을 찾았는데 마침 밴드와 소독액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드러난 상처 부위에 비해서는 통증이 크지 않았고, 이내 지혈이 되어 마음이 놓였다. 괜히 분위기를 망칠까 싶어 염려스러움이 앞섰지만, 상처가 깊기는 해도 혈관을 다치지 않고 피부만 뜯겨 나간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우선은, 위문 차 온 순찬이와 용석이, 재현이와 함께, 내일 아침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영성이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흥이 불타 오르기 시작한 것은 승대가 느닷없이 해병대 군가인 '곤조가'를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인데, 뒤를 이어 귀에 익숙한 다른 군가들이 줄을 이었다. 전반기 쇼타임을 지배했던 종억이는 현역 건설사 부장님답게 밤업소를 누비며 실전(實戰)으로 익힌 화려한 노래솜씨를 뽐내며 온 몸을 하얗게 불태우더니 연기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고 난 직후의 일이었다.


후반기를 지배한 이 밤의 진정한 황제는 승대였다. 생각과는 달리, 흐트러질 듯하면서도 원곡(原曲)의 맛과 리듬을 제대로 살리면서 노래를 이어가는 승대의 가창력도 대단했다. 다만,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잔을 구별하지 못하고 맥주잔에다 위스키인 커티 샥을 가득 채워 놓은 것을 멋모르고 원샷하고 후로는, 몸의 율동이 더욱 화려하게 흔들리는데 반해 노래의 발음과 리듬은 급속히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결국, 노래할 순서를 기다리다 잠시 자리에 앉은 승대가 저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면서 새벽 두 시 너머까지 온 밤을 이어오던 쇼타임이 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주섬주섬 주변을 대충 정리하고 방안에 들어오니, 오간 줄 모르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종억이가 세상모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To be continued>




1차로 도착한 병준, 재윤, 나, 펜션 주인장 장해
손수 장만한 자연산 전복으로 입 호강하고 있는 나
동해 바다로 지는 저녁 노을
승대와 나
기타리스트 병준 쌤! 오늘 많은 연주곡을 들었다.
밤의 황제들, 승대와 종억
용석 회장님과 수학여행 시절, 디스코 파뤼!
분위기를 위해 피워 놓은 불멍
앞 줄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순찬, 재현, 용석, 영성, 승대
모두들 사랑합니데이!
펜션 바로 앞 놀이터. 물놀이하기에 정말 좋다.

바다 쪽에서 바라본 펜션. 민가를 손수 리빌딩했는데 온 여름 내내 예약이 완료됨



추억의 노래》


 ● 건아들의 '젊은 미소'

https://youtu.be/hrnla3nVaCo

'Wonderful Tonight'  by Eric Clapton

https://youtu.be/UprwkbzUX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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