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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Aug 30. 2022

어머니, 말벌에 쏘이다

벌초

말벌은 벌목 말벌과에 속하는 곤충들 또는 말벌과의 한 종으로 몸길이가 1~3cm이며, 대부분 노란색과 검은색 또는 흰색과 검은색의 복잡한 무늬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말벌과 유사한 장수말벌, 좀말벌, 털보말벌 등 다양한 종류들이 서식하고 있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볼 수 있으며, 말벌은 다른 벌뿐 아니라 메뚜기, 파리, 딱정벌레 등을 모두 잡아먹고 죽은 동물의 근육을 떼어가는 등 청소 기능도 한다. 무엇보다 나방 애벌레를 사냥해 산림해충의 대발생을 막아준다.
《출처 : 다음 백과》


이른 새벽, 눈을 뜨자마자 마음이 급해졌다. 7시에 도리원 삼거리에 모여 예초기(刈草機)를 미리 손 보고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으므로, 10분 전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시쯤에는 일어나야 했는데, 그만 늦잠을 자고만 것이다.


어머니가 좀 더 주무시도록 소리 죽여 모든 볼 일을 마치고 나니, 주위를 오가며 부스럭대는 소리가 성가신지 그제야 어머니가 눈을 뜨고 시간을 묻는다. 늦게 깨웠다고 잠시 잔소리를 늘어놓더니만 돌아서니 벌써 집을 나설 채비를 마쳤는데, 오랜만의 고향 나들이에 마음이 몹시 설레셨던가 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두 번째 하는 벌초(伐草)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쉬고 계시라는 말은 처음부터 귀담아듣지 않으셨다. 서둘러 집을 나서 집 앞 사거리에서 삼촌과 숙모를 태우고 나니 막 여섯 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칠곡에서 50여분 거리의 도리원은 봉양면의 옛 지명이다. 도리원 버스 터미널 입구 왼쪽에는 두 개의 시비(詩碑) 자리 잡고 있어 도리원이라 불리는 연유(緣由)를 짐작하게 하는데, 조선 전기(前期) 문신(文臣)강희맹의 시에서도리원(都里院)이라 하였으며 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도리원(桃李院)이라 하여 각각 한문 표기(表記)가 다르다. 당대의 문장가들이 이곳을 노래했을 만큼 각별한 곳이나 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시를 쓸 때의 서정(抒情) 역시 마찬가지로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어렸을 부터 도리원은 고향인 현산 마을에 버금갈 정도로 나에게 특별난 곳이다. 출산을 앞두고 난산(難産)의 기미가 있었던 어머니가, 도리원에서 급히 모셔 온 송(宋) 의원의 도움으로 내가 이 세상 햇빛을 볼 수 있도록 했으니 그 어찌 각별하지 않겠는가. 비포장(非鋪裝) 십리길을 단박에 달려오기에는 당시라 하더라도 쉽지 않은 발걸음이었을 텐데 고맙게도 8월 무더위를 무릅쓰고 달려와서는, 태반(胎盤)에 자리를 잘못 잡아 출산에 어려움을 겪던 어머니 자궁 속에서 나를 무사히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날 두고 도리원 송 의원 아들이라고 주변에서 쑥덕이던 소리를 흘려듣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런 연유에 의해서였다. 좀 더 자라서는, 대구에서 출발한 시외버스가 꼭 도리원에서 길게 한 번 정차(停車)한 다음 고향 마을로 향했는데, 잠깐 쉬어가는 사이 버스에 오른 장사치로부터 삶은 달걀이나 김밥을 사거나 급히 용변(用便)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이곳은 간절한 기다림의 장소에 다름 아니었다. 바로 이 무렵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고향의 선산(先山)으로 처음 벌초를 다니기 시작한 때가 아니었던가 싶다.


한 해에 한 번 쓰는 예초기가 고장 나서 지금껏 애를 먹은 적은 없었지만, 올 해는 무뎌진 날을 갈기로 했다. 시동을 걸어 본 모터 소리가 기운찬 것이, 윙윙 힘차게 돌아가는 새 칼날의 예기(銳氣)  싹둑 잘려나간 잡초들이 마치 허공으로 비산(飛散) 하는 듯했다. 네 대의 예초기 주변으로 모여든 일가친척들이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에서도, 집안 웃어른인 어머니의 건강이 단연 최우선 관심사였다. 올해만 하더라도 또 한 분의 집안 어른이 건강 문제로 인해 벌초에 참석지 못한 을 마냥 세월 탓으로 넘기기에는 시절이 수상(殊常)한 것이다.


도리원에서 선산이 있는 현산 마을까지는 십리길이다. 샛강을 끼고 나 있는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삼촌 말에 의하자면, 군위군을 끼고 들어 설 예정인 대구 통합 신공항 활주로가 놓일 부지와 가까운 곳이란다. 그런데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이, 7시 반을 막 지나는 이른 아침이긴 해도 강변(江邊)의 물안개가 너무 자욱해서 시계(視界)가 불분명한 것이 과연 통합 공항으로서 제기능을 다하기에 부족함이 없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고향 마을 어귀에서 1차로 내린 벌초꾼들을 뒤에 남겨두고, 우리는 차를 더욱 깊숙이 몰아 못 안쪽 산길로 들어섰다. 증조부와 증조모, 집안 어른들을 모신 선산은 더 이상 장지(葬地)로 사용하질 않는다. 어머니와 의논해서 아버지를 대구 가까운 공원묘지로 모시고 나서는, 앞으로 길일(吉日)을 택해 이곳에 남은 묘지들을 마저 정리할 예정이기에, 어쩌면 올해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벌초여서인지는 몰라도 뭔가 감회(感懷)가 새로웠다.


어머니와 숙모님을 차에 남겨 두고, 산자락을 길게 돌아 산길로 올라가는 곳의 초입()에 이르니 산주(山主)의 허락도 없이 표고버섯 종묘장(種苗場)이 들어서 있는데, 종균(種菌)배양(培養)참나무를 장작더미처럼 길게 쌓아두어 아예 산 입구를 완전히 막아 버렸다. 어쩔 수없이 좀 더 깊숙이 걸어 들어가 잔 나뭇가지를 쳐내가며 길을 내었는데, 새로 난 길을 따라 얼마쯤 더 올라가니 여기저기 베어 낸 참나무 그루터기에 제법 큰 상황버섯이 군락(群落)이루고 솟아올라 있었다. 마침, 버섯 다려낸 물을 상복(常服)고 있는 삼촌이 허겁지겁 상황버섯을 따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슬금슬금 웃음이 배어났다. 형제지간이 아니랄까 봐, 건강을 염려하는 모습이 돌아가신 아버지와 쏙 빼닮았기 때문이었다.


선산에서 벌초를 마치고 나서 마을로 돌아와,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생가(生家) 터 뒷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전쟁 당시에 병환으로 급사(急死)하신 할아버지를 마을 뒷산에다 임시로 모신 것인데, 오래전 묘터를 새로이 단장한 이후로 차일피일한 것이 그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선산으로 이장(移葬)을 하질 못했다. 결국, 선산의 묘를 정리할 때 할아버지 묘소도 함께 정리해야 하기에 어쩌면 이곳에서의 벌초 역시 마지막 벌초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산세() 가파르지 않기에, 어머니와 숙모님은  함께 산에 올라 시아버지 묘소 벌초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다가 성묘를 했다. 양지(陽地) 바른 곳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일 년 새 잡풀이 너무 무성하게 자라서 여기저기 손볼 데가 많았다. 예초기로 잡풀을 초벌로 쳐내고 있는데 귓전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디선가 말벌이 날아와 왼쪽 어깨에 들러붙곤 이내 따끔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양손으로 예초기를 들고 있었으므로 고스란히 벌침을 맞을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옆에는 베어낸 풀을 갈쿠리로 끌어모으고 있는 삼촌이 놀란 눈으로 멀뚱멀뚱 지켜보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칫, 예초기를 손에서 놓아버리면 큰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이었다.


런데, 아래로 기울어진 언덕배기 위쪽에 서 있던 어머니 입에서도 '꺄악'하는 외마디 비명소리가 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급히 예초기의 시동을 끄고 달려가 보니, 어머니의 정수리를 사이에 두고 반  길이 양쪽과 오른쪽 팔꿈치 뒤편에 말벌이 금방 쏜 흔적으로 벌건 핏물이 주변으로 배어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는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계시는 지라, 마침 벌초를 다 마치고 나머지 정리를 하던 차여 급히 성묘를 하고 벌초까지 마무리지었다. 말벌에 쏘인 왼쪽 어깨 죽지에서 빨간 핏물이 배어 나오면서, 마치 코로나 백신을 맞고 난 후의 압통(壓痛) 같은 통증이 밀려오는데, 통증의 세기는 그 보다 훨씬 더해서 절로 신음이 나올 정도였다.

  

일단, 어머니를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서둘러 차에 올라 각자 할당(割當) 묘터에서 벌초를 마무리하고 있을 친척들에게 전후 사정을 알리고 급히 자리를 떴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말벌에 쏘였을 경우 나타나는 아나필락시스 쇼크의 전조(前兆) 현상인 두드러기나 경련이 일어나고 있지 않는 점이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여서 먼저 내 몸의 현상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면서 추후 조치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하필이면 오늘은 대부분 병의원()이 노는 일요일이기도 해서 응급실을 찾는 일이 아니면 달리 취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이른 점심까지 먹고 나서 삼촌과 숙모님을 집 앞까지 배웅해 드리고 나서 집에 돌아오니, 오후 한 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걱정한다고 어머니가 극구 만류(挽留)하긴 했지만, 추석이 다가올 때까지 며칠간이라도 어머니가 막내 여동생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모셔 드리기로 약속이 되어 있기에 여동생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알릴 도리밖에 없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중학교에 다니는 예쁜이 둘째 조카가 그만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와 어머니가 계속 칠곡 본가(本家)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급히 휴일 지킴이 약국부터 수배(手配)를 해서, 상비약(常備藥)이라도 손에 넣고 나니 적으나마 안심이 되긴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정되리라 기대했던 통증은 쉽게 가라앉질 않고 오히려 그 주변으로 통증 부위가 넓어지는 것이, 정말이지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고 나서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심한 압통과 근육통에 비견할만했다. 어머니는 속열까지 나서 머리가 온통 지끈거린다는데 여차하면 응급실로 모시고 갈 요량까지 하고는, 각기 약을 나누어 먹고 환부(患部)에 연고까지 바르고선 이내 잠자리에 들었다.


왼쪽 어깨를 모로 뉘고 잠을 자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쉽게 잠을 이룰 수도 없었거니와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좀체 잠이 오질 않았다. 얼린 물병을 수건으로 감싸서 오른쪽 팔꿈치에 덧대거나 얼음물로 식힌 수건으로 이마를 찜질해 주어도 어머니의 통증이 쉽게 가라앉질 않았고, 내 왼쪽 어깨 부위의 통증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결에 끙끙 앓으시기까지 하는데 참으로 난감(難堪)했다. 몇 번인가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어머니의 동태(動態)를 살피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이번엔 오줌이 마려워 눈을 떠보니 새벽 네시가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그런데, 왼쪽 팔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어 크게 원을 그리며 돌려봐도 그렇게 쑤시던 통증이 거의 느껴지질 않았다. 말벌에 쏘인 부위를 위에서 바로 누르면 그때서야 아릿하게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곤히 주무시는 어머니를 망설임 끝에 깨우고 말았다. 걱정스러우면서도 상태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눈을 뜨자마자 첫말로 내뱉으시는 말씀이 '이젠, 괜찮다'라는 말이었다. 단지 오른쪽 팔꿈치 뒤쪽의 홍반(紅斑)이 좀 더 커져 있었고, 그곳이 무척 가려운 모양이었다. 약국에서 처방해준 상비약은 가려움증과 두드러기, 알레르기 전문 치료제인 것으로 미루어, 말벌에 쏘이고 난 후의 부작용을 완화시키는 성분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약을 드시도록 하고, 알약과 함께 처방해준 연고를 환부에 골고루 발라주었다. 베란다 건너편 동쪽 하늘이 볼그스레한 것으로 미루어 이미 날은 밝은 듯했다.


나란히 누웠다가 깜박 잠에서 깨어나 보니 일곱 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새 다시 잠이 든 모양인데,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켜서 카톡을 확인해 답장을 주고는 큰 여동생부터 일일이 전화를 걸어 걱정하고 있 여러 사람들 마음을 안심시켜 드렸. 서로 몸상태를 확인하고 난 후 거실에 누운 채 다시 잠이 들었다가 어머니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 시간은 거의 열한 시가 다 되어서였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으므로 서둘러 동네 의원으로 모시고 가 진료를 받고 영양 주사까지 맞고 나니 이미 두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비로소 벌초와 이로 인한 한바탕 말벌 소동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함께 TV를 보고 있는데, 엊저녁부터 말벌로 인한 사망사건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작년 이맘때 심혈관에 스탠트를 시술하신 어머니나 협심증을 앓고 있는 나와 같이 지병(持)을 달고 있는 사람들은 말벌에 쏘일 경우 자칫하면 생명까지 잃을 수 있다고 한다. 전화기 너머에서 당장 응급실로 가라고 채근(採根)하던 막내 여동생의 안타까움이 실린 목소리가 이제야 가슴에 절실(切實)하게 닿으니 여전히 나는 쓸데없는 만용(蠻勇)부리거나 철이 덜든 오빠일 뿐이다.


소파에 누워 TV를 보다가 지금은 등받이 쪽으로 몸을 돌려 곤한 잠에 빠져 있는 어머니의 가녀린 어깨가 오늘은 왠지 모르게 왜소(矮小)해 보여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사뭇 애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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