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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Sep 20. 2022

감추고 싶은 이야기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의 심리적 기저(基底)에 따라 거짓말이 여러 가지 갈래로 나눠진다 말하지만, 대충 악의적인 거짓말과 선의의 거짓말 두 가지로 분류한다. 남을 속여서 스스로를 옹호하거나 진실을 호도(糊塗)하여 사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쪽이 악의적인 거짓말이라면, 선의의 거짓말은 말하는 사람이 좋은 뜻으로 상대방에게 희망을 주거나 격려를 하기 위해, 혹은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하는 거짓말을 일컫는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바로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싶을 때'이다. 사람들에게는 흔히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싶은 상황이 있는데, 당장 속내가 드러남으로써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두려울 경우와, 부끄러운 마음으로 인해 속내를 감추고 싶을 때이다. 거짓말에 빗대자면 전자가 악의적인 거짓말에 가까운 반면에 후자는 선의의 거짓말에 가까운 경우로써, 다른 점이 있다면 감춰짐으로써 지켜지고 보호받을 대상이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고 이로 인한 이해관계가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나에게도 감추고 싶은 속내가 여럿 있다. 우선 떠오르는 것이, 마음속 깊은 곳에 여태껏 꾹꾹 눌러두었던 초등학교 6학년 다닐 적 부끄러운 일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책상을 앞뒤로 려 늘 함께 도시락을 까먹던 친구들이 있었다. 당시는 도시락은 벤또라 불렀는데, 늘 벤또와 함께 찐빵과 볶음김치를 밑반찬으로 싸 오는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맛이 신 김치에다 설탕을 뿌려 식용유로 살짝 데쳐 유리병 속에 넣어 온 볶음김치가 어찌나 맛이 있던지, 친구는 입에도 대지 않는 김치를 도시락 위에 잔뜩 덜어내어 거의 덧밥으로 만들어 비벼 먹던 기억이 난다. 친구 집이 찐빵가게를 했기에 한 끼 먹을 정도로 네댓 개의 찐빵을 날마다 갖고 왔는데, 이는 아침 조회를 하기도 전에 일찌감치 친한 친구들 뱃속으로 사라졌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늘 용돈도 풍족해서, 쉬는 시간 틈틈이 여학생들 눈을 피해 학교 앞 문방구로  친구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군것질을 하곤 했다. 여학생들의 고자질 때문에, 군것질하지 말라는 담임 선생님의 훈시(訓示)를 어겨 혼이 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친구가 교실 복도 사이를 장난치며 이리저리 돌아다닐 때면 주머니 속에서 동전끼리 부딪쳐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그럴 때마다 아침에 등교할 때 전통에서 엄마 몰래 동전을 한 움큼 씩 훔쳐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곤 했었다.


하루는, 군것질을 하고 되돌아올 때 자꾸 신세만 지는 게 미안해서 정말 진심 어린 말로 고마운 뜻을 전했다. 그때였다. 잠시 뭔가 딴생각을 하면서 한참 동안 시선을 한쪽으로 두더니, 내 손을 슬그머니 잡고 운동장 구석진 곳으로 데려갔는데, 마침 수업종이 울리고 수업이 시작되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철봉대 주변엔 아이들이 보이질 않았다. 친구는 눈을 아래로 깔더니 재빨리 양발로 모래더미 속을 이리저리 뒤적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발아래 파헤쳐진 모래 사이로 십 원짜리 동전이 살포시 드러나 있는 게 보였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철봉대 아래서  원짜리 동전과 십 원짜리 동전을 각각 몇 닢씩 주웠던 것 같다. 그제야 이 친구가 자주 쉬는 시간에 지각을 하고 교실로 들어와서는 화장실 핑계를 댔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시간을 틈 타 철봉대를 축으로 몸을 위아래로 뒤집으며 놀 때, 알게 모르게 수많은 동전들이 주머니 속에서 떨어져 모래밭 속으로 감쪽같이 사라졌으리라. 친구에겐 철봉 아래 모래밭이 바로 바닥이 뚫린 돼지저금통과 다를 바 없었다. 은밀한 기밀(機密)을 공유하고부터 나서 그 친구와 난 예전보다 더 둘도 없는 친구이자 사업상의 동지가 되었다.


친구는 1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인근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한 학년만으로도 열다섯 학급인 데다 정원이 최소 70명을 넘는 과밀(過密) 학급의 학교여서, 학교로부터 거리가 먼 학생들부터 인근에 새로 생긴 학교로 아이들을 재배치한 탓으로 인한 부득이한 전학이었다. 남다른 모범학생이었던 나는 수업 사이사이 잠시 쉬는 시간까지 지각의 핑계를 대며 수금 업을 이어갈 수는 없었으므로, 새로이 영업시간을 3단계로 나누었다. 즉, 이른 아침 남보다 일찍 등교를 해서 전날 아이들이 하교 전까지 철봉대 아래에 마구 뿌려놓은 동전을 1차로 회수하고, 점심시간에 한 번, 그리고 또 수업 마칠 때까지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놀며 흘려 놓은 잔돈푼까지 하굣길에 모조리 긁어모았던 것이다.


수입이 좋았던 날은 백 원 가까이 이르거나 이를 넘어설 때도 있었다. 큰돈이긴 했지만,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흘려놓은 코 묻은 돈이었기에 이를 따로 되돌려 줄 방법이 없었고, 솔직히 말해 그럴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난 이후로는, 종종 낯익은 얼굴들과도 마주칠 때가 더러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들 역시 소문난 동전 사냥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두고두고 마음속으로 꼭꼭 감춰둬야 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늦은 가을, 살포시 서리가 내려 축축하게 젖은 모래밭을 발로 툭툭 차는데, 새벽 공기의 싸한 냉기로 인해 입김이 뿌옇게 눈앞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사실, 동전 줍는 재미도 이젠 시들해졌고, 약간의 죄의식마저 느끼고 있던 터라 시린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건성으로 툭툭 발길질을 하고 있자니 금방 운동화 코로 물기가 스며들었다. 그런데, 발끝으로 뭔가 비벼지는 느낌이 나더니 꼬깃꼬깃 접힌 종이돈이 눈에 쏙 들어왔다. 서둘러 허리를 굽히고 는데, 금세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며 나도 모르게 주위부터 살폈다. 오백 원 자리 지폐였다. 얼른 주머니에 넣고 교실로 돌아왔는데, 그때부터는 수업이고 뭐고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바른생활이라면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도 늘 백점이었지만, 사실 이전까지 바른생활을 어겨가며 학교를 오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평소였다면 바로 선생님께 달려가 이실직고(以實直告)하고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으나, 그만 그날을 넘기고 나니 주머니 속 지폐도 여느 날 주은 동전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스며들었다. 하지만, 며칠간 고민한 끝에 가까운 친구에게 그간 있었던 사실을 털어놓자, 공돈에 금세 마음이 혹해진 친구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그럴싸한 돈의 쓰임새를 생각해냈다. 토요일 방과 후 남자아이들끼리 편을 갈라 축구를 하고, 귀갓길에 그 돈으로 학교 앞에서 납작 만두 파티를 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돈의 출처는 비밀이었고, 내가 통 크게 한 턱 낸 것으로 하는 것이 함께 궁리한 끝에 이끌어낸 묘책()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지독한 꿈을 꾸었다. 아마 중학교에 다닐 적의 일인 성싶다. 참고서를 사서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하필이면 생물시간이었다. 생물 선생님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모든 학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고, 수업시간에 준비물을 지참하지 않고 과학실로 들어가는 것은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날 참고서를 사야 할 돈 오백 원을 그만 등굣길 7번 좌석버스 안에서 잃어버린 것이다. 꿈속이었기에 오히려 선명한 것이, 버스 정류소 앞 가판대에서 일간 스포츠를 려고 바지 주머니 속에서 돈을 꺼낼 때 주머니 속 오백 원 지폐를 손으로 만져 확인을 했고, 신문을 사고 나선 이를 둥글게 말아 교복 주머니 속에 넣었는데, 차 안에서 신문을 꺼내다가 그만 바지 밖으로 함께 쓸려 나온 것이다. 마치 생시(生時)인 듯, 파노라마처럼 눈앞에서 지난 행적(行跡)펼쳐지는데, 정말이지 버스에서 잃어버린 돈 오백 원은 나에게 있어서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날, 비록 꿈 속이긴 했지만 죽음 같은 공포 속에서 자다 깨다 선잠을 되풀이하며 생물 선생님을 마치 저승사자인 듯 식은땀 흘리며 현몽(現夢)으로 맞았다.


이후로도, 이 감추고 싶은 마음속 비밀은 죄의식과 부끄러움으로 잔뜩 물 머금은 솜뭉치가 되더니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부풀어 올라 그 부피만큼의 무게로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다만, 대학교 다닐 적에 초등학교 동아리 모임을 하며 졸업생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모교를 위해 축구공과 배구공, 배구 네트 등 체육교구를 기증함으로써 마음속에서 조금이나마 덜어 약간의 죄스러움을 씻어낼 수 있다.


사람마다 감추고 싶은  또 다른 속내가 있는데, 이는 가슴 한 곳에 묻어 둔 첫사랑 이야기 같은 것이다. 스럼없이 입 밖으로 드러 낼 만한 사랑 이야기라면 그건 진정한 첫사랑일 수가 없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 그래서, 감춰진 이야기일수록 속이 더 은밀하고 사사로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저 입 밖으로 꺼내기 부끄럽거나, 오히려 때 묻지 않고 너무 맹탕이어서 잔뜩 기대했다가 듣고 나면 헛웃음만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말을 하는 입장에선 오히려 속내를 감추고 심정이 될는지도 모른다.


내게도 여즉, 그 같은 말 못 할 이야기가 하나 있긴 하다. 그 일이 있었던 당시는 어리기도 했거니와, 이 일 속에는 누구에게라도 터놓고 말하지 못할 사연이 간직되어 있기도 다.


초등학교 4, 5학년 같은 반 친구인 H와 P가 우리 집으로 나를 찾아온 것은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치르고 나서 겨울 방학을 눈앞에 둔 중학교 3학년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4, 5학년을 따로 분반하지 않아 2년 간을 한 반에서 친하게 지내기는 했어도, 다니던 중학교가 달랐고, 사는 동네도 약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기에 그동안 서로 사이가 소원(疏遠)해져 있었다. 다만, H와 P는 우리 동네에 있는 탁구장 주변에서 노는 아이들과 어울렸고, 길을 오가다가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본 적은 있어도, 모른 척 지나치며 그저 눈인사나 나눌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둘 다 인성이 나쁘지 않아 다른 아이들 돈을 뺐는다거나 함부로 행패를 부리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어둠이 까맣게 익어가는 어느 날 , 이들 둘이 느닷없이 날 찾아온 것이다. 대문을 열자 나를 골목길 전봇대 불빛 아래로 이끌더니, 대뜸 여학생 K1의 집을 알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하지만 묻는 자신들이나 나나 서로 모를 수가 없는 것이, 당시 한 반으로 우리들과 함께 친하게 지냈던 남학생 K의 집이 바로 K1의 집과 서로 골목을 마주하고 있었기 문이었다. 의아한 마음으로,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만 끔뻑거리고 있으니 말주변 좋은 P가 나서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P의 말에 따르면, 연합고사 이후로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겨울방학을 포함해서 3개월 가까이 시간이 남으니, K1과 절친인 K2까지 불러내서 함께 모여 공부도 하며 같이 놀자는 것이었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여학생과의 만남에 관해 말 한마디 못할 만큼 숙맥이었던 내게 이들이 이런 제안을 한 것은 가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다만, 어릴 적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 남모르게 간직해 두었던 K2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이들 입에서 K의 이름이 거론되자마자 걱정되는 마음부터 불쑥 솟아났던 것이다. 전날, 컴컴한 골몰길에서 이들과 어울려 놀던 여학생들 사이로 K2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같은 방향의 노선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갈 때 K2를 곁눈질하며 가슴이 두 방망이질하던 순간이 불현듯 떠올랐다.


결국 이들의 부추김으로 인해, 마음 한쪽에는 나도 몰랐던 대범함이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K1의 집으로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쳐들어가서는 대문의 초인종을 누른 것인데, 미리부터 마음 졸였던 것과는 달리  K1이 다소곳이 문을 열고 우리를 맞아 주었던 것이다. 세월이 다르긴 해도,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 듯싶다. 말까지 더듬거리며 장황하게 집을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는데, 뜻밖에도 K1은 순순히 K2를 바로 불러냈고 그 이후 K1 집 옆 어린이 놀이터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누었지만, 그때 나눈 이야기들의 자세한 내용은 더 이상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그 시절, 우리들 모두는 너나 할 것 없이 연분홍 사춘기로 막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끼리의 이 모임은 더 이상 이어지질 못했다. 그날 이후 한 달 가까이 지나 막 겨울방학이 시작된 어느 날 저녁, K1과 K2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는데 둘 다 상당히 격앙(激昻)되어 있었다. 사실, 두 번째 만남을 은근히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이 둘이 보인 뜻밖의 반응은 몹시 놀라웠다. 사연인 즉, 우리들끼리 처음 보고 난 바로 다음으로 맞은 주말, 함께 모인다 해서 나가보니 내가 없더란다. 모임의 취지도 처음 이야기한 것과는 다르게, 시종 H가 K2를 이성적으로 좋아해서 사귀자는 쪽으로 흘러갔고, 알고 보니 P나 K1은 이를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실상을 알고 보니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이고. 그래서 K1은 그날 이후로 전화가 와도 받지 않거나 받아도 사사로이 만나는 것을 일절 거절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대문 초인종을 누르고 달아나거나 심지어는 K1 방으로 돌멩이를 던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참다못해, 이 일의 또 다른 원인 제공자인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는데, 듣고 보니 뭐라 변명할 말이 없었다. 정말 눈앞에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욱이, 못내 마음속으로만 꼭꼭 눌러두었던 K2가 바로 눈앞에서 화를 삭이고 있지 않은가!


다음 날, H와 P를 불러내어 그동안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듣고 나니 참으로 황망했다. H 역시 어릴 적부터 K2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인데, 닭똥 같은 눈물까지 흘리며 K2를 향해 한결같은 마음을 쏟아내는데 정말이지 말문이 막혔다. 그야말로 한낱 실낱처럼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우정이긴 해도, 이렇게까지 내심을 절절하게 토해내는 H 앞에서 어떻게 K2를 향한 속내를 낱낱이 털어놓을 있단 말인가! 화사한 웃음과 함께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K2의 단아한 모습이 고개 숙인 나의 뿌연 시야로부터 차츰차츰 멀어져 갔다.



다시, 마음속에다 감춰 두었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가운데 앞 선 이야기는 죄의식으로 인해 감춰두고 싶은 이야기이고, 서로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제로 누군가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즉, 악의의 거짓말에 가까운 이야기인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극히 개인적인 일로서 부끄러움으로 인해 스스로 감춰두고 싶은 이야기이다. 수십 년이 흐른 후, K1과 우연히 만나서 한바탕 웃음으로 지난 이야기를 큰 얼굴 붉힘 없이 넘겼다. 하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 또 다른 모임으로 동아리 활동을 오래 함께 했던 K2에게는 내 속 마음을 한 번도 솔직하게 드러낸 적이 없다. 감춤으로써 피해를 주고받은 사람이 없기에 이는 굳이 말하자면 선의의 거짓말과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끝내, K2에게는 속내를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없었기에 어쩌면 내게 있어 이는 첫사랑이자 짝사랑이었을지 모른다. 물론 무턱대고 처음 찾아간 그때, 나만 믿고 순순히 만나러 나왔다는 K2의 말을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 한쪽이 콩닥콩닥한다. 어릴 적 그때의 K2와, 조금 더 자라서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함께 했 K2 동일한 사람지만, 어떤 면에서 보자면 다른 사람이랄 수도 있겠다. 마치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서 아사코를 두고 한 말에서처럼 말이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나야 좋았을 것이다.

분명, 때를 달리해서 세 번이나 만났지만 만난 사람은 아사코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감정이란 때를 달리하면 같은 사람이라도 한결같은 감정으로 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건, 피천득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K2와 관련된 이야기는 마음속으로 여태껏 감춰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늦은 태풍에 휩쓸려 여름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자연의 섭리(攝理)그런 것 같다. 몸속의 수분을 다 쥐어 짜낼 듯 후텁지근하던 열기가 한바탕 소슬바람에 휩쓸리더니, 이제 계절이 완연한 가을로 바뀌면서 지나간 여름 이야기들을 조금씩 망각(忘却)의 시간 속으로 밀어내고 있다.


마음속에서 홀연히 빠져나간 옛날이야기는 남 이야기를 처음 대하 듯 낯설고, 그래서인지 오늘 내 마음은 더욱 허전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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