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아이의 아빠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느린 아이(자폐 스팩트럼)와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보통 속도의 아이와는 또 다른 고충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바로 훈육에서 나오는 고충입니다.
보통 속도의 아이는 훈육이 대화로 가능하게 되기까지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데 느린 아이는 이 기간이 매우 길어집니다.
몸은 점점 크고 반항기가 찾아오는데 언어적 훈육이 안 되는 것이죠.
여기서 마찰이 발생합니다.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의 피해를 주는 상황은 보통속도의 아이보다 강하게 훈육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아이가 겪는 감정은 분노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했다는 이유이죠. 보통 속도의 아이라면 상황을 설명하고 대화를 통해 감정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속도가 느린 아이는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만 밖으로 표출하고 그 외에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훈육은 필요합니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아이가 화내고 울어도 강경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결국 아이는 행동을 멈추고 돌아갑니다.
상황은 해소되지만 그 뒤에 아이가 다시 웃으며 노는 모습을 보면 아빠로서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됩니다.
저 아이는 우리 가족인 것이 행복할까?
내가 아빠인 것이 행복할까?
저 아이의 행복은 무엇일까?
그러다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제 품에 앉아 책을 펴서 읽어달라고 하면 그 맑은 모습이 더 날카롭게 마음에 박히고는 하였습니다.
항상 훈육이 필요한 상황만 지켜보며 훈육을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기회가 되는 경우 아이와 둘이 외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며 아이와 저 모두 마음의 상처를 조금 치유해보려 하는 것인데요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제가 더 치유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이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그 권리를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념일 외에도 아이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가지고 싶다는 표현을 하거나 어디를 가고 싶다는 표현을 하면 기억해 두었다가 되도록 해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표현하는 부분도 성장의 증거라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찰은 계속 발생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반항도 점점 거세집니다.
그렇지만 훈육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훈육이 아이에게 적절한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책이나 자료를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이론일 뿐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100명이면 키우는 방법도 100가지이다"
라는 말처럼 모든 아이는 다릅니다. 그리고 관련 영상을 보더라도 댓글에는 이렇게 해도 안된다 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 달리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들은 저에게 좌절감을 주기도 합니다.
아빠로서 다시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느린 아이들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인데 관련된 자료나 정보, 시설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뉴스에는 부모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는데 나아지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이가 사랑스럽지만 과연 내 사랑은 무한한 지속성이 있는 것인가, 사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사랑이 누수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미래는 신경 쓰지 말고 지금의 사랑에 집중하자라고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과거에도 이런 생각을 했었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현재의 나는 여전히 아이를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아빠도 훈육이 괴롭습니다.
아빠도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아빠도 자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아빠도 화목한 가족을 만들고 싶습니다.
훈육할 때 아이가 펑펑 울며 나를 바라보면 그 모습이 제 가슴에 깊은 상처를 냅니다. 반드시 필요하다는 명목하에 진행되는 것이고 저도 그렇게는 생각하고 있지만 마음에 상처가 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호소하며 감정을 분출하고 어느 정도는 해소합니다.
그런데 아빠는 이렇게 난 상처를 치유할 곳이 없습니다.
아빠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이라는 무게와 아빠라는 무게가 발을 짓누릅니다.
저도 불행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제가 불행하면 가족이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깥으로 표출은 하지 않은 채 여행도 자주 다니고 가족들과 많은 경험을 공유하고 즐거울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상처는 남아있습니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과 죄책감, 자괴감이 상처가 낫는 것을 방해합니다.
사실 상처를 만든 것도, 낫는 방해하는 것도 저입니다. 제 안에서 여러 생각들이 저를 괴롭히며 상처 내고 있던 것이었죠.
이걸 조금 해소하기 위해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주로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데 어찌 보면 지금 해소할 수 없는 내 상황보다는 어느 정도 방법이 있는 것을 택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확실히 도움은 되는 것 같습니다. 소액이었지만 전체 기부금이 잘 쓰였다는 후기를 보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행복감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모든 부모님이 그러시겠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저도 아이의 아빠로서 깊이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맞는 것인지, 어디까지가 적절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려고 합니다. 아이의 훈육은 그 아이가 올바른 행동과 선택을 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저는 아빠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미움받을 용기를 내려고 합니다. 괴롭고 아프지만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나가려 합니다.
그게 지금 제가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느린 아이가 있는 부모님들 모두 고충이 다 다르실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감히 고충을 이해한다라고는 못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느린 아이를 가진 부모님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가족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꼭 찾으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제 아이도 "느리지만 행복한 아이"가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