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친화적 인간류
(2025.08.04 일두들 아침 7시)
내가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청송군 일두마을이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선택은 아니고 태어나 보니 일두마을이었다.
1984년에 태어났는데, 커서 국민학교에 걸어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마을 앞 도로는 비포장에 이태리포플러 나무가 가로수로 심겨 있었다. 아마 아른하게 기억나는 것은 내 유년시절의 어느 때까지는 아궁이 불로 식사와 난방을 해결했고, 나라는 한참 산업화 붐이 일어나던 시기라 그 여파가 뒤늦게나마 영향을 미쳐 연탄보일러가 도입되고, 어느덧 마을 앞 도로도 포장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IMF 사태가 터졌고 부족함 없이, 그러나 무엇 하나도 풍족했던 적은 없었던 우리 집에서도 금붙이를 내어놓았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2002년 월드컵을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 개최했고, 우리나라가 4강에 올라 고등학교 3학년 수능시험공부 보다 그 해 뜨거웠던 길거리 응원이 더 기억에 남아있다. 도시 못지않게 시골에서도 문화회관이나 강변에서 길거리 단체 응원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내 청소년 시절, 우리 부모님의 나이가 지금 내 40대의 어디 즈음을 지나고 있었을 것이다. 그저 자란 대로 집안 분위기대로 상황이 주는 변화에 순응해 성장해 왔다. 부모님께서 평생 농부로 생계를 이어왔던 이유로 나와 누나는 어릴 적부터 주말과 방학의 우선순위는 농사 일정에 따라 노동력을 제공하느라 따로 여름 방학이나 휴가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다. 부모님께서 특별히 농사일을 강요했던 기억은 없지만 나와 누나가 제외된 노동력으로는 집안 소농의 일이 늘 부모님께 버거워 보였던 까닭으로 우리는 별 반항 없이 순응해 간헐적 농부로 자연스럽게 커왔다. 주기적으로 작고 큰 병치레를 겪은 부모님의 일시적 부재의 순간도 간헐적 농부가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누나와 나는 각각 공주로, 춘천으로 각자 청춘의 한 때를 보냈다. 작은 산간 농촌 시골 마을에 자라면서 친구보다는 누나의 영향을 많이 받았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경영대학에 입학했지만 누나가 전공한 산림을 복수전공을 이행하면서 대학원 진학은 산림분야로 전공을 두었고, 그 길로 들어서게 되어 마지막 직장을 수목원에서 마치게 되었다.
정작 수목원에서는 전공보다는 기획과 예산 업무를 시종일관 맡아왔고, 거기서 잔뼈가 굵어 간이 배 밖으로 나오다 못해, 결국 한참 일 할 나이 40살에 고향으로 낙향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20살에 청송을 떠나 백령도 군생활 2년, 전역 후 막노동 생활을 하면서 1년간 전국을 떠돌아다녔고, 복학 후 10년을 춘천에서, 나머지 10년을 서울, 경북 봉화, 세종시에서 일상을 살아왔다. 춘천에서 보낸 10년간은 내 푸른 청춘을 감당 못할 만큼 탕진하느라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춘천은 호수 3개(의암호, 춘천호, 소양호)를 끼고 이고 있어서 풍광이 너무 좋아 따로 일두들을 그리워할 필요가 없었고, 노는 게 좋을 때라 시야 밖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산 세월이었다.
일두들을 본격적으로 그리워한 시기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전공이 산인데, 푸른 숲을 보는 가운데서도 업무는 숲이고 나무와 꽃이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서 그런 류의 푸르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부터도 좋은 사람은 못 되었던 게 아쉬움으로 많이 남아 있다. 어차피 떠나올 자리였다면 아쉬움이 남지 않게 더 좋은 사람이 되었어야 했었다고, 지금에서야 부질없이 한탄해 본다.
경북 봉화(2017-2019)에서는 틈만 나면 옥상과 정원을 거닐었던 기억이 난다. 답답하면 풍광 좋은 곳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날들에서 종종 남겨둔 사진이 있었다.
마지막 도시 생활을 했던 세종시(2020-2023)에서는 새벽마다 세종 호수 공원을 걸었다. 머물던 숙소가 호수공원 바로 옆이라 운동하고 산책하기 좋았다. 새롭게 들어서는 신도시라 쾌적했지만 성냥갑 속에 갇힌 것처럼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풍광은 나름대로 서는 곳마다 운치가 있었다. 성에 차지 않긴 했지만.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돌아와 버렸다. 오늘 아침 일두들은 맑았고, 오후 일두들은 여름 하늘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일두들에 길들여진 채로 밖에서 겉돌다, 약속한 것처럼 지금 다시 돌아와 있었다. 순응의 결과 이자, 자연친화적 인간류가 있어야 할 자리는 따로 있었던 것일까.
하루에 하루씩. 2025년 8월 일두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