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잡초였네.
(2025. 07. 28. 해 뜨는 일두들)
"두 번은 없다 _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더라? 꽃인가, 아님 돌인가?
야속한 시간,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두려움을 자아내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루 다를지라도. "
귀향 후 지난 2년간 문전옥답 2천 평에 고추를 심었더니 고추 농사가 힘에 부쳤다. 그래서 대체 작물을 고민하던 중, 슈퍼 도라지를 심으면 2년간 손이 덜 간다고 어떤 블로그에 쓰였길래, 그래 저 슈퍼 도라지를 심어야겠다고 선택했다. 마침 그때, 어떤 유통업체의 발주로 도라지청을 생산하고 있었고, 도라지 청 수요가 많길래 도라지를 미래의 전략 작물로 밀고 나가 봐야겠다고 막연하게 푸른 꿈을 우물가 숭늉 마시듯 들이켰다.
농사가 단순하고 쉬운 일이었으면, 손 덜 타고 소득이 높으면 모두 도라지를 했겠지, 이런 의심을 그 푸른 꿈을 꿀 땐 몰랐다. 지금 보면 저런 단순함으로는 그 무엇도 성취할 수 없는데, 농촌 겨울의 한가로움이 안일한 자세를 만들었고, 고추를 피해야 한다는 강박에 슈퍼도라지를 선택하게 되었다. 특히, 슈퍼 도자지가 그럴듯해 보였던 것은 따로 파종하지 않고 피복 비닐에 씨가 붙어 있어, 늦 봄 비닐을 피복만 하면 도라지가 잘 자라서 큰 힘 들이지 않고 혼자서도 3천 평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강원도 화천군에 살고 있는 씨비닐 판매 업자가 말해주었다.
아마 나 스스로가 순진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 보면 근본 없이 너무 큰 선택을 쉽게 해 버렸다.
공교롭게 올해 초 2월, 산림소득 도비 보조사업의 테마로도 '도라지'를 선택했다. 망하자고 작정을 했던 것인지 고추 기피가 앞 선 것인지, 도라지 청 제조가 뒷 선 것인지 모르겠으나 '도라지'에 '슈퍼'까지 수식되어 있으니 뭐가 돼도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알아보자고 했더라면 인근 지역에 도라지 농사를 2천 평 경작한 선례가 있었는지, 왜 자투리 땅에 조금씩 소일거리 삼아 경작하고 있는지 그 연유를 파악했더라면 슈퍼 도라지 씨 비닐을 선뜻 선택해 거금 4백만원 주고 구매하여 직접 씨도라지 비닐을 피복하지 않았겠지.
늦봄이 되니 농업이 주 산업인 지역에 노동력 부족 현상이 발생했고, 시기는 더 늦출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안되면 직접 하겠다는 의지로 가족 노동력을 빌어 없는 재주로 직접 씨비닐을 피복했다. 처음 하는 농사에 보고 들은 바는 블로그 몇 페이지, 유튜브 몇 분이 전부였지만, 전문 노동력을 구하지 못한다면 직접 하지 뭐, 무식해서 용감했고, 용감해서 온몸은 누더기가 되었다.
고생도 고생이거니와, 씨비닐 구매 비용 4백만원, 도라지밭 평탄화 비용 120만원 등 비용도 적잖이 소비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슈퍼도라지는 2년 경작이었는데, 2년 내내 도라지 보다 잡초 걱정을 하게 생겼다. 요즘 어딜 가도 도라지밭의 잡초가, 잡초 밭의 도라지가 심란한 걱정거리였다.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예초기로 2차 풀베기를 실시하였다. 새벽부터 이어지는 작업 내내 비생산적인 이 노동에 왜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 스스로 책망하며, 지금의 노동은 내 안일한 태도에 대한 형벌로서 수행하는 자세로 본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우악스러운 작업 태도에 돌이 튀어 정강이가 터지고, 왼쪽 눈으로 파편이 튀어 연신 눈물을 흘려가며 땀에 젖어 누더기가 되어 돌아왔다. 며칠간 아침저녁으로 잡초 밭의 도라지를 살펴가며 풀베기를 할 것이다.
돌아와 겪은 실패 가운데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실패이자 낭패였다. 2년간 잡초 밭을 무의미하게 유지하는 것도 마음고생이고, 그렇다고 지금 와서 거둬들이는 것도 가뭄에 콩 나듯 있는 도라지가 아까워 그럴 수가 없었다.
저 뼈 아픈 낭패를 겪으며,
'아, 어쩌면 내가 잡초였네, 도라지가 아니라."
여러 교훈을 실시간으로 남기고 있었다. 농사가 결코 절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손 덜 타고 잘 되는 농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헛된 기대에 부풀어 과감하게 도라지 농사를 지으며 잡초밭을 길러 내고 있었다. 도라지 밭의 슈퍼 잡초였는데, 올 가을에라도 일부 도라지를 캐내고 다시 근처에 흔히 볼 수 있는 고추나 사과 농사를 해야 할는지, 아니면 농사 잘 짓는 이웃 형님께 임대를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했다.
그 외에도 매일 벌어지는 작은 전투에서 번번이 패배하는 중이었다. 패배가 습관이 될까 두렵지만 패배는 결코 선택이 아니라 결과여서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할 수 있는 반전의 계기가 절실했다. 농사 말고도 벌여 놓은 일들이 많아서 도라지 재배가 안되면 도라지 제조라도 잘하고, 제조가 안 되면 기획 일을 맡은 다른 회사의 일이라도 번성하도록 나는 갈아 넣어야 했다.
그 와중에도 일두들은 화창했고, 여름은 여름답게 이글거렸다.
두 번 살 수 없는 삶이었고, 그래서 무엇이라도 썰어 보자고 꺼낸 칼로 도라지 밭, 아니 잡초 밭의 도라지를 사수하고 있었다.
그 실패는 온전한 나의 실패여서, 내가 도라지가 아니라 잡초로 자라고 있었다.
학 씨. 나였다. 내가 잡초였다.
하루에 하루씩. 잡초밭의 도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