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시작하며
제주는 그냥 신혼여행지 아니었나요
제주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내 인생에서 이미지가 급변해온 곳이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제주는 나에게 부모님 세대의 신혼여행지라는 이미지 외 큰 감흥을 주는 곳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났을때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기억도 희미한 곳을 온종일 걷기만 하고
모종의 계약을 한것이 틀림없는 말고기 식당에선 피비린내 나는 말고기를 입에 우겨넣고
피부에 좋다는 말뼈가루를 강매당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 이후 가끔 노래방에서 제주도 푸른밤을 부르며 여행기분 내보기도 했지만
그때의 제주는 휴양지의 대표이미지였을뿐 독자적인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
대학교 졸업반때의 일이었다. 비영리재단에서 인턴을 하던 중 우연히 제주에 갈일이 생겼다.
행사를 지원하고 하루 반 정도가 남아 얼떨결에 자유여행을 하게 되었고
이왕 여행하는거 최대한 즐겨봐야겠다며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이름하야 '제주도 스쿠터 일주'.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수 있는 계획이었다.
제주는 생각보다 매우 매우 큰곳이다.
제주공항에서 세화나 성산 등 동쪽으로 가려면 적어도 2~3시간은 걸리고
다시 성산에서 서귀포쪽으로 가려면 마찬가지로 2시간은 걸린다.
그러니까, 최고 시속30km의 스쿠터로 제주를 일주하려면 (해안도로로 간다는 가정하에)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정도 꼬박달려야 가능하다는 것.
지도 확인 후 식겁해선 공항에서 성산까지만 갔다오는 것으로 계획을 급히 수정하였다.
그렇게 떠난 제주여행은 감격스러웠다.
달리다 지쳐 해안도로 근처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시킨 해물뚝배기는 따뜻하고 맛있었다.
소금기 가득한 습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해 지는 황금빛 바다를 따라 달리기도 하고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맨발로 걸어가는 해녀 할머니와 스치듯 눈인사를 하기도 했다.
나는 그제서야 생각했다.
'제주, 알고보니 엄청 따스한 곳이였잖아?'
그 후로 연차가 생길때면 꼬박꼬박 제주로 떠나곤 했다. 그래봐야 3일정도 턱없이 짧은 일정이었고
가도가도 가고싶은 곳이 자꾸만 생겨났다.
제주에 머물러보기로 결심하다
최근 몇년간, 제주에서 살아보는 것이 핫한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다.
각각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원하는건 같아보였다.
'아름다운 자연 가까이에서 즐기는 여유로운 생활'
당시 직장생활 3년차였던 나에게도 그런 생활이 절실했다.
내가 하게 될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던 숫자와 컴퓨터로 가득한 업무, 그리고 그로 인해 바싹 말라버린 생활.
월요일까지 남은 시간을 삼십분 간격으로 계산하며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휴일은 그만두고 싶었다.
펼쳐진 자연을 보며 끝도 없이 공상하고 사색하고 싶었다.
제주는 같은 한국이지만 왠지 다른 세계에 속한 것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온전한 나의 모습을 찾고 자유로울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퇴사 후 인생을 새로 쓰기에 좋은 곳이 아닌가.
결국 나는 제주로 떠나기로 했다. 아주 오랫동안.
알아보니 제주는 이미 살아보고자 하는 사람들로 수요가 높은 곳이었다.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였다.
1. 삶의 터전을 옮긴다.
- 너무 극단적이다. 집도 없고 직장도 없음.
2. 한달살기 숙소를 구해서 살아본다.
- 네이버 검색 시 큰 규모의 카페가 운영중이며 당장 한달살이가 가능한 숙소도 꽤 많았다.
비용도 혼자라면 30~50만원 선으로 그렇게 비싸진 않은편.
- 그러나 기약없는 백수 처지로 숙소비+식사비+여행비까지 지출하려면 타격이 좀 클 것 같았다.
원할때 떠나는 것이 가능하도록 비용은 최소화하고 싶었다.
3. 게스트하우스 스텝으로 일해본다.
- 제일 괜찮은 방법이었다. 숙식을 해결할 수 있어 지출이 적다.
보통 게하엔 스텝 여러명이 상주하므로 새로운 친구를 사귈수도 있어 외로움도 해결된다.
20대가 아니면 쉽게 도전하기도 어려운 일이었고
마침 회사를 그만둔 시점도 7월, 여행객이 많아짐에 따라 게하에서 스텝을 많이 뽑는 시점이기도 했다.
때문에 게스트하우스 스텝으로 일하며 살아보는 것으로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부럽다는 친구도 있었고 열정페이 아니냐는 친구도 있었다.
참고로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 스텝은 무급이다.
용돈개념으로 월 20~30만원을 지급하거나 돌아갈때의 비행기표를 대신 지불해주는 곳도 있지만
대체로 무급으로 숙식을 제공해주는 곳이 많다.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하고싶은 여행자의 니즈와 운영비용을 줄이고 싶은 사장의 니즈가 만나 생긴
제주만의 특별한 관행이 아닌가 싶다.
이 주제에 대해 관련 카페에서 여전히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론 무급도 괜찮다고 본다.
실제로 숙식비를 계산해보면 20~30만원과 맞먹는 비용이고
일하는 날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다가 돈을 받는 것보단 무급이 일하기에 마음 편하다.
이 이슈는 나중에 좀더 자세히 다뤄볼 예정이다.
게스트하우스 스텝을 하게 되기까지의 프롤로그가 꽤나 길었지만
내가 경험했던 스텝 일을 A부터 Z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고 싶다.
앞으로 연재될 브런치는 대충 아래 질문을 주제로 진행될 것 같아요. (갑자기 공손)
바뀔 수도 있으니 참고만 부탁드려요. (갑자기 공손2)
- 게스트하우스 스텝은 어떻게 지원하나요?
- 짐은 얼마나 싸야하는거죠..?
- 스텝 일은 도대체 어떤건가요?
- 게스트하우스를 옮기고 싶어요!
- 총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 그리고 등등..
그럼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