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해서 내가 미니멀리스트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가로 저을 것이다.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미니멀리즘을 좋아해서 몇 번이고 시도해봤지만 거의 다 실패했다. 그러니 미니멀리스트라고 할 수 없다.
처음에 미니멀리즘을 접한 건, 책과 TV를 통해서였다. 사사키 후미오 씨가 나오는 다큐를 보았고,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를 읽고나서 꽤 감명을 받았다. 미니멀리스트들의 이야기와 영상, 사진, 글들을 보면 기분이 좋았고, '나도 깔끔하고 소박하게 살겠어'라고 결심을 하기도 했다.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는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책 다섯 권 중에 한 권으로 꼽힌다.
하지만 나란 인간의 결심이란 얼마나 가벼운지. 미니멀리즘을 실천한답시고 이것저것 버리고 치우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머지 않아 불편함이 밀려왔다. 미니멀리즘 책에서는 가능하다면 하나의 물건을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추천한다. 즉, 집에 가위는 하나만 있어도 되며, 접시도 많이 필요하지 않고, 테이프나 마우스 등도 집안에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가위를 하나만 쓰려고 노력하려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불편을 느꼈다. 집이 넓지는 않지만, 작업방에서 서류 작업을 하다가 가위를 꺼내러 주방까지 가야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주방 가위와 문구용 가위는 구분해서 쓰는 편이 좋다. 그래서 주방 가위 하나, 문구용 가위 하나만을 꺼내어 놓고 쓰려고 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꺼내놓은 문구용 가위의 사이즈가 크다보니 택배를 뜯을 때 적합하지 않았다. 물론, 택배를 뜯을 때는 눈썹 면도칼 같은 게 제격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가위가 필요할 때도 종종 있다! 너무 큰 가위는 택배를 뜯을 때 불편하다. 그래서 나는 택배와 문구용 겸용 거실용 가위를 하나 더 꺼내놓았고... 그렇게 나는 미니멀리즘에서 멀어져갔다.
물티슈도 마찬가지였다. 물티슈를 많이 사용하는 편은 아니지만,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물티슈를 거실에 둔다고 칠 때, 작업방에서 작업을 하다가 책상을 닦고 싶어지면 굳이 물티슈 한장을 꺼내기 위해 거실까지 갔다와야한다.(그거 몇 걸음이나 된다고) 그러면 일하려던 마음이 흐트러져서 산만해진다.(생각해보면 미니멀리스트들은 물티슈를 안 쓸거 같긴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넓은 집이 아닌데도 그러하다. 나는 미니멀리즘을 하기에는 너무 게으른 인간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지 못하는 나지만, 여전히 미니멀리즘은 좋아한다.
어째서 미니멀리즘을 하지 못하는데도 미니멀리즘을 좋아하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기분이 좋거든요.
유튜브나 글로 미니멀리스트들의 영상과 글과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정갈하고 깔끔한 느낌을 받는다. 미니멀리즘 정리 영상 한편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화된다. 맑고 깨끗하며, 하나하나의 물건을 소중하고 예쁘게 다루는 모습에 기분이 좋다. 나는 미니멀리즘이 아니지만, 타인이 미니멀리즘을 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은 것이다... 어라, 이거 조금 변태같은데. 아무튼 미니멀리즘에 관한 글과 영상을 본 직후에는 나도 정갈하고 단정하게 살겠다는 결심도 종종 하니,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치고 싶다.
아마 내가 실패한 것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조금 해보았는데,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물욕이 많아 쇼핑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물욕을 드러내지 않는 미니멀리스트들의 모습이 감탄스러우며 존경스럽다.
머릿속으로는 자원을 아껴야하며 지구를 위해 쓸데없는 물건 구매와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나름 노력하고는 있지만, 때때로 흐트러질 때 미니멀리스트들의 영상이나 글을 보면 의욕이 다시 솟기도 한다. 환경 운동 의욕 고취의 방면에서 미니멀리즘은 특히 효과적이며, 쇼핑 자제에 있어서도 조금의 효과가 있다. 물론 그 효과가 계속 유지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