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는 눈이 좀 일찍 떠졌다. 7시 반~8시 사이에 일어나, 알차게 요가를 33분쯤 하고(동영상 길이가 33분이었으니) 복숭아를 깎고, 모닝 쌀빵도 먹고 싶어서 쌀빵도 굽고, 라테도 마시고 싶어서 라테도 만들어서 어떻게 보면 묘한 조합으로 아침을 먹으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6회,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장편소설 쓰기'를 읽었다.
이번 챕터에는 그야말로 하루키가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수정하고 검토하고 편집하고 펴내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었다. 매우 재밌었고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도 많아, 읽다가 4B연필을 오랜만에 커터칼로 슥슥 깎아서 밑줄까지 쳤다. 누구와 책을 함께 보는 것도 아닌데 책에 밑줄 치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나중에 지우개로 지울 수 있게 소심하게 4B 연필을 힘없이 쥐고 밑줄을 쳤다.
이번 챕터에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들은 꽤 많았으나, 아무래도 번역에 대해 언급한 몇 줄에 대해 감상을 적어보고 싶다. 일단 그가 이번 챕터에서 언급한 번역 내용은 이러하다.
"(장편 소설을 쓰면서) 마감이 없는 번역 작업을 내가 원하는 페이스에 따라 동시 진행적으로 간간이 하기도 하지만, 이건 생활을 위해서라기보다 오히려 기분 전환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번역이란 기본적으로 테크니컬 한 작업이라서 소설을 쓸 때와는 그 사용하는 뇌의 부위가 다릅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근육의 스트레칭과 같아서 그런 작업을 병행하는 것은 뇌의 균형을 잡는 데 오히려 유익한지도 모릅니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47페이지-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하루키는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미국 문학 번역가이기도 하다. <위대한 개츠비>를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번역 작업을 꾸준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설마 '마감이 없는 번역 작업'을 간간이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마감이 없다'라는 부분인 것이다. 번역 작업에 마감이 없다니... 무명 번역가로 8년째 살아오는 내게 '마감이 없는 번역 작업'은 '그런 게 존재하기는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소한 것이기에 읽자마자 '헐'하고 속으로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나 되어야 가능한 일이겠지. 아마 출판사가 "언제가 되든 좋으니 선생님께서 여유되실 때 번역해주세요 ^^"라고 굽신거리며 의뢰하지 않을까. 어쨌든 책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글자가 박히는 것만으로도 세일즈 포인트는 대단할 거라고 추측해 본다. 순전히 내 추측일 뿐이지만! 사실 애초에, 하루키는 번역 작업을 생계 수단이나 돈벌이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취미로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이며 마감이 없어도 그다지 상관이 없는 거겠지. 내게 마감이 없다면 작업 시간이 여유로운 건 그렇다 치고, 돈이 들어오지 않아 무척 곤란할 거야.
그는 번역은 테크니컬한 작업이라 소설을 쓸때와는 그 사용하는 뇌의 부위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음. 내가 유명한 번역가나 소설가는 아니지만, 이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혹 친구들이 "번역은 창작이니 어려울 거 같아"라고 얘기하는데, 아마 출판 번역에서는 그런 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번역 전반적으로도 '원문과 의미가 같은 말을 만들어낸다'라는 측면에서는 창작의 영역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내 메인 필드인 산업번역은 테크니컬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강연에서 "하다보면 번역도 익숙해지거나 고민을 덜하게 되나요?"라고 누군가가 질문했던 거 같은데, 일단 10년을 못 채운 어설픈 산업 번역가인 지금의 내 위치에서는(경력을 쌓고 지혜를 얻으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밑밥) "익숙해지고 고민을 덜하게 될 때도 있지만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할 때도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하면 할수록 테크니컬한 부분은 처음보다 훨씬 익숙해지는 거 같긴 하더라. 예를 들어 play라는 단어를 번역한다고 치면, 게임 번역에서의 play는 AA, BB, CC으로 번역하면 된다든가 관광 번역에서 play는 OO, XX, QQ으로, 기계 매뉴얼에서 play는 EE, XX, GG'으로 번역하면 된다는 데이터가 쌓이는 느낌이 있다. 같은 play라고 해도 분야별로 다른 번역문이 머리에 탑재되며, 원문을 보고 분야와 맥락과 상황에 따라 머릿속에 있는 단어를 골라 퍼즐처럼 집어넣는 식인 것이다. 머릿속에 TM(Translation Memory)이 형성되는 느낌이다. 물론, 머릿속에 레퍼런스가 없는 원문이 나올 때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서 우리말로 표현해야 하지만, 일단 외국어를 한국어로 변환한다는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어떤 번역이든 테크니컬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번역을 창작이나 예술로 취급하는 일에 반대하는 건 절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일단 거기까지 생각하는 건 내 머릿속 얕은 지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며, '번역은 테크니컬한 작업이다'라는 하루키의 말에 내 나름대로의 고찰을 써보았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어떤 것이든 예술 100 테크니컬 0인 것은 없을 것이고, 테크니컬 100 예술 0인 것도 없을 것이다. 무엇이든 조금씩의 비율을 갖고 있지 않을까? 번역에도 테크니컬한 측면과 예술적인 측면이 함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번역의 예술적인 측면을 다루기는커녕 테크니컬한 측면만 소화하기에도 바쁜 번역가니, 일단 이 정도로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다.